32살 아직도 취업준비 중입니다.
나이 25세
인서울대학 법학 전공, 경영학 부전공
학점 4.08
토익 910점
한국사 1급
대기업 인턴 경험 유
대기업 대외활동 경험 유
공모전 수상 경력 유
동아리 경험 유
봉사활동 경험 유
그러나 그해 겨울 최종 합격한 기업은 한 군데도 없었다. 뭐 대한민국에서 그리 놀라운 결과는 아니다.
'내가 너무 눈이 높았나?', '공채는 처음이었으니까', '자기소개서 쓰기가 너무 막막했어', '내년 상반기에는 미리 준비해야지' 다짐했다.
주말마다 취업 스터디를 나가며 자소서 첨삭과 면접 연습을 했다. 그러나 상반기도 그야말로 우수수 떨어졌다. 일단 대기업은 서류통과 자체가 안됐고, 공기업, 공공기관은 간혹 서류통과가 됐지만 필기에서 떨어졌다.
나와 함께 인턴을 하고, 대외활동을 하고, 취업스터디를 했던 사람들은 하나 둘 원하던 회사에 입사했다. 혹은 약간 눈을 낮췄지만 그래도 번듯한 회사에 들어갔다. 나만 제자리였다. 문제를 찾아야 했다. 사실 나는 나의 문제를 알고 있었다.
전공은 법학인데,
인턴은 인사업무를 했으며,
대외활동은 마케팅 활동을 했다.
또 공모전은 다시 법학 전공을 살려 분쟁조정 경연대회에 나가 우수상을 수상했다.
동아리는 음악 동아리를 했으며,
봉사활동은 교육봉사를 했다.
자격증은 뜬금없이 한국사...
이어질 듯 이어지지 않은 다 따로 노는 경력을 한 방향으로 꿰맬 수가 없었다. 분명 다 열심히 하긴 했는데 하면서 가슴이 뛰고 두근거리고 열정에 불타오른 일은 찾을 수 없었다. 그냥 다 고만고만하게 하고 싶어서 한 일이었고 무난 무난하게 활동을 마쳤다.
인사팀에 지원할 때는 최고의 인사팀 직원이 되겠다고 썼다. 그러다가 마케팅팀에 지원할 때는 대한민국 최고의 마케터가 되겠다고 썼다. 간절한 마음으로 썼지만 사실 한편으로는 내가 이 일을 잘할 수 있을까? 내 적성에 맞는 일일까? 다 자신이 없었다.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범생이긴 했는데 전략적이진 못했다. 목표점을 딱 잡고 그것만 보면서 경주마처럼 달리지 못했다. 열심히 뛰긴 했는데 '이번엔 이걸 해볼까?', '오 이것도 해보고 싶다!' 라며 이리저리 방향성 없이 뛰어다니기만 했다.
대학교 2학년, 대한민국을 강타한 책이 있었으니 <아프니까 청춘이다>였다. 후에 '아프면 환자지'라는 패러디로 청춘의 아픔을 당연시할 수 없다는 비판이 이어지긴 했지만, 책을 읽을 당시 나는 매우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돈은 중요하지 않아.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야지’라고 생각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취업이 된 이후에도 직업에 대한 나의 방황은 계속되었다. 여행업에 종사했다가 출판계로 이직했다가 다시 뒤늦게 전공을 살려 보겠다고 전문 자격증 시험을 준비했다. 지금은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있다.
내가 방황하는 동안 결혼을 해서 엄마가 된 친구도 많고, 법학과다 보니 ‘사’자 직업을 갖게 된 친구도 꽤 많다. 그중 한 친구가 요즘 뭐하면서 지내냐고 묻길래 아무것도 안 하고 넷플릭스만 보고 있다고 말하니, ‘그래도 좀 알차게 시간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라며 진심으로 조심스레 걱정하는 눈치였다. 부러워할 줄 알았는데 이런 반응일 줄은 몰랐다.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분명 알차게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의미가 글을 쓰라는 것은 아니었을 텐데 또 나의 열심 모드는 이상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렇다. 이 글은 열심히 살았는데도 왜 점점 뒤로 밀려나는 기분이 드는 것인지 나의 문제인 건지, 사회의 문제인 건지 나의 지난 커리어를 반추해보기 위해 쓰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