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별들 (2)
무더운 여름밤에는 어딘지 모르게 들뜨는 느낌이 있다. 그것은 문장으로 정확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해보자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느낌에 가깝다. 낮동안 쨍쨍하고 분명한 듯 했지만 이내 흐려지고 풀어진 자잘한 복선들, 캐치해내자마자 곧바로 허물어져버리는 습기들, 밤이 되어도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 마음들과 소음들, 맨살에 닿는 바람의 열기, 은밀하고 가볍게 여기저기를 구르는 수런거림들, 롤러코스터처럼 부드러운 곡선으로 흘러 얽히는 시선들, 그런 모든 것들이 한 데 담겨 설레듯 휘저어진 밤. 왜 그런 느낌이 드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더위 때문일 것이다. 몸에 열이 오르는 것은 죽음으로부터 정반대의 방향으로 내달리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인어공주가 몸을 던진 것이 더운 바다였다면, 인어공주도 물거품으로 변하며 취한 채 잠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각자의 밤이 서로 손을 내밀기란 쉬운 일은 아니어서, 들뜬 마음은 달래지지 못한 채로 아침을 맞곤 한다. 껍질은 생각보다 딱딱하다. 오래될수록 더 그렇다. 내부의 목소리가 몸을 뚫고 바깥에 도달하려면, 마음을 제외하고도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이름, 신분, 의도, 의심, 설명, 노력 같은 것들. 그리고 필요한 것을 모두 갖추고 시도하는 대화에는 더 이상 마음이 없다. 내가 그를 바라보면, 그는 나를 외면하고 그녀를 바라본다. 그럼 그녀는 그를 외면하고 또 다른 이를 바라보고, 그 다른 이는 그녀를 외면하고 새로운 이를 바라본다. 그것이 스스로를 쓸 데 없이 마모시키지 않는 방법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와 동시에 알 수 없는 파동에 직접 부딪쳐보지 않고도 타인을 몰래 나의 외로움에 담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선은 어긋나고, 단속적으로 끊기며,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이 상태는 언제까지나 평화롭게 유지될 수 있다. 다만 언제나 그렇듯 문제는 모두의 마음에 태어날 때부터 심어진 밤의 씨앗이 있고, 그것이 여름의 열과 습기를 받으면 깨어나고 싶어한다는 데에 있다.
그 날 사람들은 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아주 드문 일이었다. 여느 때처럼 덥고 들뜬 여름 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지만 귀를 기울이면 곧 알아차릴 수 있는 옅은 두런거림과 감미로운 낮은 노래들이 사방에서 끊이지 않았다. 간간이 작은 불빛들이 걸려있었고, 그보다는 훨씬 커다란 어둠이 와인색으로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더운 공기가 사람들 사이를 느리고 여유롭게 유영했다. 세상의 파장이 비슷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모두를 쾌활하게 했다. 일치감, 우울과 행복의 얼룩, 이미 잊어버린 죽음, 아직 잃지 않은 사랑, 태어나기 전의 기억, 인간에 대한 애정, 겨울의 잔상, 꿈 속의 열꽃, 이 모든 것들이 조용히, 점점 더 끓어올랐다. 외면한 시선에도 느껴지는 더운 존재들이 일제히 같은 곳을 향하고, 흘러넘치려는 순간,
광활한 여름밤에 그동안 애써 참았던 눈물 같은 불꽃이 터진다. 사람들은 서로를 마주보고는 탄성을 터뜨린다. 각자의 마음 속에 간직되었던 밤의 씨앗은 서로를 향해 꽃망울을 터뜨린다. "세상에, 정말 멋지지 않나요?" 그리고 그것은 사람이 사람에게 건네는 그 밤의 처음이자 마지막 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