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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윤 Sep 10. 2015

오늘도 변함없이 변한 사랑

오늘도 변함없이 변한 사랑




헤어지자 하는 말에는 이미 헤어짐이 없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이

술만 마시면 경박해지는 그가 나를 사랑해줬을 때

사랑해 자기야 했던 말에 헤어짐이 있었다

매운탕에 붕어가 있듯이


밤새 열한 번을 전화해서 너랑 자고싶다 말하는 사람이었어 별을 보고 싶다 하면 우주를 따다줄까 하는 사람이었어 객관적으로 라는 말에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이었어 태양을 향해 나를 가차없이 내모는 사람이었어 예기치 못한 시간으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아스팔트에 비를 새겨 나를 외롭게 하는 사람이었어 이를테면 존재를 일일이 되갚아주는 사람이었지


깊은 카페에 가라앉아 있는데 붕어들이 뻐끔대는 소리가 들리네

아껴뒀다 썩어버린 낱말들이 목소리를 잃은 채 찻숟가락에 고이네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웃으며 안녕 하고 인사해보고 싶었을 뿐인데

설탕시럽 한 통을 다 넣고도 쓰디쓴 이 원두는 누구의 맛인지, 아니면 어디의 맛인지, 아니면 언제의 맛인지,

평생을 인사해봐도 결국 안녕하지 못하다면 이제는 정말로 결혼을 해야 할까

검게 타다 만 입술에서는 생의 적막이 피어오르네

나를 통과하는 사람들은 차감된 안부와 사늘한 수심(水深)만을 남긴 채 멀어져가는데


사랑해 자기야 하는 말에는 사랑이 없다

안녕 하는 인사에 안녕이 없듯이

커피를 마시고 다정해진 그가 나를 사랑해줬을 때는

다문 입 속에 사랑이 있었다

전화벨 속에 안녕이 있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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