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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Dec 14. 2023

졸업하고 18년 만에 만난 친구

어이 ㅋ


새벽에 문자가 왔다. 물론 난 뻗어 자는 중이었다.

다음 날 아침 확인하고 시간을 맞춰 보자며 급히 답장을 보냈다. 연일 일하던 중이라 따로 날을 잡을 수는 없지만 다행히 마드릿에서 출퇴근하며 보내던 때라 한 두 시감 정도 가능했다.


생각해 보니 이 친구와는 졸업 후 처음 본 셈이었다. 나는 슬로바키아를 거쳐 스페인으로, 이 친구는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지냈다. 그런 와중에 타이밍도 묘하게 내가 삼성에 있을 때 이 친구도 삼성에, 그리고 엘지로 갔을 때 엘지로 옮겼다.


내가 죽을 정도로 괴롭고 힘들었다면

그는 두 번이나 쓰러져 앰뷸런스가 올 정도였다.


내가 상사와 대인관계 스트레스로 공황장애를 겪을 때

그는 새벽 2시 회의를 8개월간 홀로 지속하며 감당했다.


둘 다 정상이 아닌 상태를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당연하게 여기며 보냈던 30대의 스산한 기록.

씹고 뜯으며 토해내며 넋두리를 풀었다.


저마다의 레이스를 달리며 허들을 넘고 넘어

이제는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을 보내는 중년의 두 아재.


하나는 애를 셋이나 두고도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이베리아 반도를 누비고 있고,

다른 하나는 뜻이 맞는 사람들을 찾아 회사를 창업해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는 컨설팅 기업 대표가 되었다.


중간중간 연락을 하며 지내서 그런지 졸업 후 처음으로 만났는데도 어색함이 없었다. 그 친구를 통해 다른 친구들 소식을 듣다 보니 밀린 소식이 잔뜩 쌓아놓고 못 쓴 글감과 같았다.


서로의 스타일도 비슷해서 정장, 커프스, 만년필, 와인 등 잡다한 것에서부터, 프랑스 문학, 예술, 공연 등. 하루 종일 얘길 나누어도 대화소재가 끊이지 않았을 거다.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택시를 태워 보내며 조만간 다시 보자고 했다. 손에는 녀석이 아이들 주라고 산 빨간 초콜릿 상자백이 쥐어졌다. 샴페인도 샀는데 오는 길에 깨졌다며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다음에 다시 들려 사 오겠다고 한 친구. 마, 다음에는 내가 가족 데리고 파리로 갈 거야. 몸 건강 살피며 기다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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