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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재모 Dec 25. 2023

세로 화면비율에 관한 이론적 고찰(2/2)

미디어 계보학, 누벨바그 영화이론, 응용 미디어 미학의 관점에서

텔레비전 화면이나 극장 스크린(screen)은 다른 세상을 보여주는 창문이자 액자의 프레임이다.  

회화에서는 작품에 따라 캔버스의 크기와 비율을 작가가 자유롭게 정하지만, 반면 영상은 표준화된 크기와 비율의 조건을 따라야만 한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사진과 영상을 일상적으로 찍기 시작했고, 이제는 하나의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특히 소셜미디어와 숏폼 콘텐츠 플랫폼이 급성장하면서 기존 미디어 산업의 지각변동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Ross(2014)는 일반인들이 촬영하는 세로 화면비율의 사진과 영상은 전통적인 미적 관심사보다는 관찰 대상 그 자체에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에, 세로 영상의 유행은 새로운 미디어 기술이 어떤 ‘순간’을 포착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준 것이라고 보았다.  반면, Ulenius(2018)는 세로형 광고 영상이 새로운 모바일 세대를 위한 혁신적인 포맷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다분히 과장된 측면도 없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세로 화면비율에 대해서 이런 단순한 설명 외에 다른 심도 깊은 설명은 없을까?


다음 세 가지 이론적 접근은 세로 화면비율에 대해 좀 더 체계적인 이해를 돕는다.



1. 미디어 계보학의 관점


2010년대 초반부터 사람들은 세로 화면비율의 사진과 영상을 촬영하기 시작했고, 그러한 개인들의 행위는 소셜미디어와 숏폼 콘텐츠 플랫폼의 성장을 이끌어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회적 습관, 이른바 디지털 모바일 혁명으로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여러 해외 연구를 살펴보면, 이미지의 기계적 재생산이 시작될 무렵인 1800년대 초반부터 사람들은 이미 세로 이미지 비율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현재의 유행은 새로운 혁명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것이라고 한다.


미디어 계보학(고고학)은 미디어가 발전해 온 역사적 과정과 맥락을 연구해서 현재의 미디어가 갖는 본질적 속성을 분석하는 분야이다.  레프 마노비치(Lev Manovich, 1960~)도 이러한 미디어 고고학의 접근법을 취한다.  그는 저서 『뉴미디어의 언어(The Language of New Media)』(2001)에서 방직기술과 버려진 필름에 구멍을 뚫어서 데이터 입출력 장치로 사용했던 초기 기계식 계산기 등의 사례를 들어 이미지 기록의 역사와 디지털 부호의 시작으로 보고, 이것들이 전부 디지털 영상기술 발생의 전조(징조)라고 한 바 있다.


이런 역사적 관점과 맥락에서 세로 화면비율을 분석한 Ulenius(2018)와 Menotti(2019)의 연구는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유용하다.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다양한 이미지를 창작하고 즐겨왔다..

인간은 항상 수직을 지향해 왔고, 인류는 직립보행을 하면서 오벨리스크와 고층 빌딩을 세웠다.

주면을 둘러보면, 건축물의 탑과 기둥, 유리 창문, 조각품, 회화작품과 같이 세로 형태 예술 작품은 수 없이 많다.  

회화에서 세로 비율이 지배적이었던 장르는 초상화였고, 그 역사는 고대 그리스, 로마,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사진이 처음 개발되었을 때에는 세로 비율이었다.  1839년에 개발된 다게레오타입에서 사용한 플레이트의 비율은 3:4였고, 1840년 미국에서 처음 개발된 인물 사진용 카메라는 5cm×6.5cm 크기였다.  그리고 지금도 인물 사진을 비롯해서 신문, 잡지, 일반 문서는 모두 세로 형태이다.

1830년대에 발명된 페나키스티스코프(phenakistoscope)와 조이트로프(zoetrope) 같은 초기 영상 장치는 직립 보행하는 인물을 묘사할 때 세로 방향의 이미지를 사용했다.(세로 비율의 프레임이 갖는 장점은 피사체가 세로 형태일 때 이미지를 꽉 채워 넣을 수 있다는 점이다.)  

뤼미에르 형제가 사용했던 에디슨(Thomas Edison, 1947~1931)과 딕슨의 35mm 필름 포맷은 미국에서 특허를 등록한 방식이었고, 영화산업에서 미국이 시장 지배력을 확보하는데 기여를 했다.  그러나 이 필름은 4:3의 비율로 정해졌다.  그렇게 결정된 이유는 사람의 시야가 가로 약 200도, 세로 약 135도 정도로 대략 3:2 정도의 비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로 화면 비율이 19세기의 내러티브 회화작품에서 널리 사용되었고, 극장 무대 역시 수평 방향으로 긴 구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리학적으로 사람의 머리와 눈동자는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보다 좌우로 움직이는 것이 더 쉽다는 이유도 있다.  가능하면 시야를 꽉 채워 보는 것이 몰입감을 느끼기에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했던 이유도 있다.


하지만 소련의 영화학자 에이젠슈타인(Sergei Eisenstein, 1898~1948)은 아카데미협회 회의에서 영화의 촬영과 상영은 가로와 세로 비율을 모두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이젠슈타인은 스크린 비율을 하나의 표준으로 고정하는 것은 것은 창작자들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창작자들이 직접 화면 비율을 선택하고 작품의 구도를 스스로 구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충돌의 몽타주 이론을 펼쳤던 그는 ‘활기차고 활동적인 수직 구도’를 더 다양하게 활용하고 싶어 했기 때문에 영화에서 가로 비율의 필름 프레임만을 표준으로 삼는 것은 영화의 화면 구성에서 예술의 자유를 절반으로 제한해 버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한 모든 영화의 표현 형식을 역동적이고 포괄적으로 수용할 수 있으려면 필름은 정사각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이젠슈타인의 이러한 주장은 창작과 예술의 자유 이상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 수평 비율에 대해 처음으로 의구심을 제기했던 것으로 평가된다(Friedberg, 2006).  


하지만 에이젠슈타인의 주장은 미국이 영화를 ‘산업’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 하나의 표준으로 업계를 통합하고 효율적으로 상업화를 추구하기 위해서 암묵적으로 합의한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었다.

결국 미국의 아카데미 협회는 에이젠슈타인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1932년에 4:3 비율의 필름을 이른바 ‘아카데미 비율’로 결정했고, 이 규격은 텔레비전이 등장할 때까지 전 세계의 모든 극장과 필름 카메라에 표준으로 사용되었다.


존 로기 베어드가 최초 개발한 텔레비전의 형태


텔레비전도 최조 개발 형태는 세로 화면비율이었다.  

1925년 존 로기 베어드(John Logie Baird, 1888~1946)가 처음 개발한 텔레비전은 3:7의 세로로 긴 화면 비율이었는데, 그 이유는 텔레비전을 전화를 보완하는 대면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으로 사용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1926년에 베어드가 최초로 시연한 사람의 얼굴은 3:5~3:6 정도의 화면비율이었다.  그는 기존 라디오 주파수를 통해 텔레비전을 전송하려면 디테일이 낮은 이미지만 전송가능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서 인물을 1인칭 시점에서 클로즈업으로, 이상적으로는 미디엄 샷과 풀 샷으로 송출하고 싶어 했다.  즉 주파수를 이용한 텔레비전 송출에서 인물 외에 나머지 주변 공간은 ‘낭비되는 공간’으로 생각하고 굳이 보여줄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1927년 뉴욕의 AT&T 벨 연구소의 허버트 아이브스(Herbert E. Ives, 1882~1953)는 1927년에 텔레비전 송출을 시연했는데, 그때 사용한 화면비율은 2인치×3인치의 세로 비율이었다.  

(존 로기 베어드와 마찬가지로) 통신회사 AT&T가 영상 전화기를 개발하면서 사용자의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 세로 화면비율을 선택한 것은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다.(실제로 AT&T는 비디오폰의 초기 버전인 양방향 텔레비전 시스템을 1930년에 처음 선보인 바 있다.)  

반면 AT&T의 라이벌인 제너럴 일렉트릭(GE)은 화상 전화기보다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더 집중해서 정사각형 화면을 설계했고, 1928년에 처음으로 TV드라마를 송출・방송한 바 있다.  

하지만 나중에 텔레비전은 헐리우드의 다양한 영화를 보여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필름과 동일한 4:3의 화면비율로 결정됐다.


초창기 컴퓨터 모니터(Zerox Alto)


텔레비전뿐만이 아니다.  

1973년에 처음 소개된 개인용 컴퓨터 제록스 알토(Zerox Alto)는 세로형 모니터를 사용했다.  그 당시 컴퓨터는 인쇄물 제작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모니터는 미국의 편지 용지(US Letter)와 동일한 비율의 8.5×11인치였다.  

애플이 1989년에 출시한 매킨토시 II 컴퓨터는 3:4 화면 비율의 640×870 해상도의 세로형 모니터를 사용했는데, 이유는 모니터가 A4나 US Letter 형식의 문서를 표시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애플은 이런 세로 형태의 모니터를 1992년에 단종시켰지만, 그 당시 다른 회사에서는 여전히 세로 화면비율의 모니터를 판매하고 있었다.  


특히 컴퓨터 모니터는 지금도 세로 방향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프로그래머(개발자)나 디자이너, 문서 작업자들은 작업의 편의성을 위해서 모니터를 세로로 세워서 쓰는 경우가 많고, 고급 제품일수록 모니터를 회전할 수 있는 피봇 기능을 가지고 있다.


게임도 마찬가지이다.  과거 아케이드 게임 오락실의 게임기는 모두 세로로 긴 형태의 모니터가 일반적이었고,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일본의 게임회사 타이토 코퍼레이션(Taito Corporation)이 개발한 게임 스페이스 인베이더(Space Invaders, 1978), 남코(Namco)의 팩맨(Pac-Man, 1980)과 갤러그(Galaga, 1981)를 비롯해서, 가정용 콘솔 게임기도 모두 세로 화면비율이었다.  

야구나 축구경기장의 대형 현수막도 세로 비율이다.  신문과 잡지, 책도 모두 세로 형태이다.


이렇게 지금도 우리 일상생활 주변에는 수많은 것들이 여전히 세로 비율의 형태이다.  


즉 인간은 가로 방향의 이미지를 선호하는 것이 아니라, (종류에 따라서) 가로와 세로 모두에 잘 적응되어 있는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로 방향의 스마트폰 사진과 영상은 결코 이질적인 것이 아니며, 어쩌면 인간의 시각 경험에 자연스러운 화면 비율이라고도 볼 수도 있다.


이러한 고찰을 통해서 Ulenius(2018)는 스마트폰의 사진과 영상은 전체가 아닌 ‘개별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즉 사람들이 선호하는 숏폼 콘텐츠는 사용자가 자신의 초상(셀피), 주변 환경, 삶 등 자신 주변을 촬영하고 시청한다는 점에서 ‘손거울’과 같고, ‘자기중심적’인 속성을 갖는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 주변의 어떤 ‘순간’에 즉각적으로 반응해서 기록(촬영)하고, 그런 개인적 콘텐츠를 인터넷을 통해 즉시 볼 수 있게끔 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행위는 ‘급격한 시간성’을 갖는다.  이동하면서 사용하는 매체이기 때문에 유목적(nomadic)이기도 하다.  

(다만 스마트폰용 세로 화면비율의 영상은 기술적・물리적 특성 때문에 대형 화면의 텔레비전이나 극장 스크린에 비해 몰입도는 상당히 떨어진다.  이 부분은 추가로 연구해 볼 필요가 있는데, 다른 형태의 ‘몰입’ 개념이 적용되지 않을까 싶다.)



2. 뉴 웨이브 영화이론의 관점


뉴 웨이브(New Wave)란 1960대 프랑스의 영화 운동 누벨바그(nouvelle vague)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다.  

내용과 주제, 영상 기술의 사용, 표현기법에서 파격과 혁신을 추구했던 이 영화운동은 당시 무너져가는 프랑스 영화 산업과 전통적인 예술계의 관습에 반동으로 형성된 문예 저항 운동이었다.  누벨바그 장르의 스타일상 특징은 작가들마다 접근방식과 감수성이 모두 상이하지만, 다음과 같은 공통점으로 정리할 수 있다(한국문학평론가협회, 2006).

 

당돌하고 비전통적이며 감상을 배제하는 인물

느슨하고 사실적이며 혁신적인 구성

소형 카메라와 간편한 장비를 사용해서 우연적이고 사실적인 스타일로 표현

스튜디오가 아닌 현지 촬영과 야외 촬영 선호

점프컷을 자유롭게 사용해서 불연속적인 이미지와 음향의 연결로 매체 자체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킴

영화적 공간과 시간 표현에 관한 실험

전통적인 스타일과의 단절을 통해 영화적 자의식을 표출

인간과 우주의 부조리함에 대한 실존주의적 감각


뉴 웨이브(누벨바그) 스타일은 당시 프랑스 영화계에서 이른바 ‘자격’에만 몰두하는 낡은 체제(관습)에 저항하고자 했던 작가주의 스타일에서 출발했다. (예를 들어 점프컷은 그런 기존의 숨 막히는 관습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다.)  


(앞서 살펴본) Canella(2018)의 연구에서 방송업계의 전현직 종사자들은 스마트폰으로 세로 화면비율의 영상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아마추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그들의 영상은 옳지 않은 것이며, 자신들이 전문가적 위치에 있다는 우월함을 드러내고 있음을 살펴본 바 있다.  

그리고 VVS 논쟁과 그에 대한 반동(또는 저항)으로 등장한 세로 영화 선언문(Vertical Cinema Manifesto)을 살펴보기도 했다.  그런 맥락에서 Ulenius(2018)의 연구에서는 영상산업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가로 화면비율의 표준을 일종의 역사적 억압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Miao(2023)의 연구는 뉴 웨이브 스타일이 현재의 숏폼 콘텐츠와 맥이 정확히 닿아있다고 분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뉴 웨이브(누벨바그) 작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의 창작’ 그 자체이지, 과정이나 방법, 도구는 그저 창작을 위한 과정일 뿐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누벨바그의 촬영과 편집 스타일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혁신적인 시각적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세로 화면비율의 숏폼 콘텐츠에는 기존 수평 중심의 미학 패러다임이 적용되지 않으며, 비전문적인 창작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에 대해서 뉴욕 타임스의 전 프로듀서 제나 바라캇(Zena Barakat)은 “사람들은 비디오가 어떤 형식으로 만들어졌는지 신경 쓰지 않고, 그저 보기에 편한지에만 관심이 있다”고 했다(Slade-Silovic, 2018; Miao, 2023).  즉 숏폼 콘텐츠 시청자들은 가로와 세로 화면비율 같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온라인에서는 더 이상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 구분이 의미 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제 숏폼 콘텐츠의 시청자들은 단순히 사용자 위치에만 머물러있지 않고, 직접 창작자로 뛰어들고 있다.  그런 콘텐츠에 대해서 이제는 상업 대자본이 개입하기도 한다.  


숏폼 콘텐츠의 사용자와 창작자는 플랫폼이 강요하는 규범에 얽매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다른 사용자, 창작자들과 상호작용하며 더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게끔 동기를 부여받기도 한다.

그러한 세로 화면비율의 영상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냈고, 유명한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일반인들은 방대한 분량의 콘텐츠를 자신들 스스로의 비용으로 생산해서 플랫폼에 공급하고 있다.  


이런 세로 화면비율의 숏폼 콘텐츠에는 프랑스 뉴 웨이브(누벨바그) 영화의 서사 미학이 보여줬던 네 가지 특징인 (1)실제 장면 (2)비전문 배우의 등장 (3)자유로운 카메라의 사용 (4)제4의 벽을 깨기가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뉴 웨이브(누벨바그)의 작품들은 ‘카메라를 거리로 가지고 나가자’라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Neo-Realism)의 슬로건으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그러한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미학을 계승했다.  

수많은 사용자 제작 콘텐츠(UGC; User Generated Contents)들은 전문 스튜디오에서 촬영하지 않고, 영상 구성의 미학보다는 콘텐츠 제작 그 자체에 노력을 기울이면서, 한정된 비용(제작비)으로 어떻게 잘 만들 것인가를 고민한다.  

‘간단하게 카메라를 들고 나가자’는 당시의 슬로건처럼, UGC 제작자들은 길거리에서 스마트폰 하나 만으로도 쉽게 콘텐츠를 만든다.  정교하게 설계된 세트에서 멋있고 아름답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현실에서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  즉 카메라를 무대가 아니라 실제의 삶으로 위치시키고 현실 그대로를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이 가공된 이야기가 아닌 실제의 삶을 바라보게끔 만든다.


프랑스 뉴 웨이브(누벨바그)가 영향을 받았던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에서는 ‘서민으로의 귀환’이라는 슬로건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뉴 웨이브(누벨바그) 작가들은 잘생기고 예쁜 배우보다는 비전문 배우를 캐스팅해서 배역을 맡겼다.  그 결과, 비전문 배우들은 연기를 전문적으로 훈련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훨씬 더 진지하고 역동적인 표정과 눈빛을 보여줬고, 짜인 대사나 동선이 없었기 때문에 좀 더 진솔하고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었다.  지금의 숏폼 콘텐츠 제작자들도 그렇게 모두 비전문가들이다.


‘제4의 벽(the Fourth Wall)’이란 연극에서 나온 개념인데, 연극 공연장에서 무대와 객석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가상의 벽이 있고, 관객들은 그 벽을 뚫고 무대를 볼 수 있지만 배우들은 관객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척하며 연기를 한다는 뜻으로 정의한다.  이것은 연극과 영화에서 불문율처럼 지켜지던 법칙이었고, 그래서 배우는 (특별한 효과를 위한 장면을 제외하고) 절대로 카메라를 직접 응시하지 않는 것이 철칙이었다.  이 법칙이 깨지면, 관객은 배우가 카메라를 인식하고 있다고 느끼고 관객 자신은 영화를 보고 있다고 각성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기법은 요즘 수많은 콘텐츠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댓글과 같은 상호작용 보조 수단이 더해지면서, 시청자는 콘텐츠 제작자들과 직접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주변에 존재하는 사람으로 느끼게 된다.


이처럼 프랑스 뉴 웨이브(누벨바그)의 스타일과 철학은 온라인 환경의 숏폼 콘텐츠 플랫폼을 통해서 부활하고 있다(Miao, 2023). 




3. 응용 미디어 미학의 패러다임


미디어에 관한 연구들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 중 하나가 ‘미학(aesthetics)’이지만, 구체적인 의미나 지칭하는 대상이 불분명한데도 무엇인가 그럴듯한 것이 있는 것처럼 설명하고자 할 때 무분별하게 남용되기도 한다.


미학은 예술에 관한 철학의 하위 학문이고, 그 자체로 상당히 까다로운 영역이다.  일반적으로는 ‘아름다움’에 관한 철학적 논쟁의 영역인데, 넓게 보자면 보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사물・이미지 내의 그 어떤 ‘무엇’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그래서 예술 철학과 연결 지어 살펴보기도 한다(Janaway, 1995).


하지만 『영상제작의 기본적인 미학적 원리와 방법(Sight Sound Motion: Applied Media Aesthetics』을 저술했던 Zettl(2005)은 전통적인 미학의 개념에서 조금 벗어나(아름다움의 의미와 진리의 개념에 대한 질문보다), ‘예술과 삶은 상호의존적이고 상호연결된 것으로 간주하고, 감상하는 주체가 영상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와 상호작용하는 방식, 그리고 그에 대한 감상자의 지각 반응을 연구하는 것'으로 ‘응용 미디어 미학’의 개념을 정의했다.


오랜 세월 동안 텔레비전과 컴퓨터 모니터는 극장 스크린이 전해주는 기술적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이제는 UHDTV와 스마트폰의 고해상도 디스플레이가 디지털 영사기의 화질에 육박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다. (이상적인 8K UHDTV의 시청환경이 되기 위해서는 화면 높이의 0.75배 거리에서 시청해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조건이다.  최신 애플 아이폰의 레티나 XDR 디스플레이나 삼성의 퀀텀닷 디스플레이는 육안으로 픽셀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해상도가 높지만, 절대적으로 좁은 시청 시야각은 극복할 수 없는 한계임이 분명하다.)


이런 한계로 인해, 스마트폰으로 <반지의 제왕(he Lord Of The Ring)>이나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 시리즈와 같은 대작의 스펙터클한 시각적 감동의 경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스마트폰용 세로 화면비율의 콘텐츠들은 제4의 벽을 과감하게 파괴하고, 빠르게 연결되는 클로즈업 장면이나 점프컷을 사용해서 시청자로 하여금 눈을 떼지 못하도록 하며, 깊이 생각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은 채로 창작자의 메시지를 강렬하게 주입하는 표현 방법을 쓰는 경우가 많다.(그로 인해서 이른바 ‘중독’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처럼 숏폼 콘텐츠들은 전통적인 영화나 텔레비전의 관습을 따르지 않는 파격성 그 자체가 큰 매력과 흡인력을 갖고 있어서, 내러티브와는 무관한 ‘어트랙션 콘텐츠(attractioon content)’의 속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Ryan(2018)의 연구는 스마트폰의 세로 화면비율 숏폼 콘텐츠가 ‘스마트폰 미학’이라는 새로운 시각적 패러다임을 보여준다고 하면서, ‘응용 미디어 미학’의 패러다임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스마트폰은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May & Hearn, 2005).  이 능력으로 사용자는 일상의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도 사회적 감각을 활성화시키고 자발적인 방식으로 공유할 수 있는데, 이전의 미디어에서는 불가능했던 기능이다.  

또한 사진과 비디오, 인터넷을 넘나들면서 새로운 연결 고리를 구축한다.  스마트폰에서는 미디어의 형태 구분이 모호해지고, 소비자(시청자)와 창작자의 역할도 혼재한다.  이렇게 스마트폰에서의 경험은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된다.  이것은 아마추어스러운 것도 아니고, 하지 말아야 할 규범을 위배한 것도 아니다.  ‘스마트폰 미학’이라는 전혀 새로운 시각적 패러다임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조금 더 나아가서, Manovich(2006)는 사용자(인간)와 스마트폰의 상호작용 자체가 미적 사건(aesthetic event)이라고 했다.  즉,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즐거움의 일부이며, 사진을 찍는 그 순간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서, 그 순간을 찍는 행위 자체가 감각과 경험을 전달할 수 있는 즐거움이라고 했다.  

따라서 ‘사용자가 촬영 행위에서 얻는 즐거움’과 그 ‘스마트폰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지, 스마트폰을 가지고 어떤 화면비율 방향으로 촬영하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보았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세로 영상 증후군이라고 조롱했던 사람들(전문가들)은 새로운 기술과 변화된 미학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혁신에 관행이 충돌하고, 스마트폰 때문에 전통적인 방식의 영상 보기에 부조화를 일으킨다고 여기는 사람들인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아기가 첫걸음을 떼는 순간을 포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세로 화면으로 전신을 촬영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노비치는 오히려 ‘세로 비디오 증후군’을 수용하는 것이 올바른 접근법일 수 있다고 보았다.


그렇게 스마트폰과 숏폼 콘텐츠의 보편화로 시각적·공간적 혁신이 일어났고, 미디어를 보고 경험하는 전혀 새로운 방식이 이루어졌다.  

스마트폰에서는 콘텐츠에 따라 적용되는 미학의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로 화면비율은 그 자체로 옳다 또는 틀리다의 평가 대상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세로 화면비율의 영상에서는 전통적인 미학의 기준을 적용시킬 수 없고, 응용 미디어 미학의 관점으로 패러다임을 새롭게 바꿔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 에이젠슈타인이 사각형 프레임을 주장하면서 아카데미 협회의 헤게모니에 도전했던 것처럼, 사용자가 영상의 비율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도록 한 스마트폰의 유연성은 기존 미디어 산업의 권위와 질서까지 해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는 세로 화면비율의 영상은 가장 개인적이고 친밀한 영상이다.  사람들은 극장 영화나 텔레비전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개인적인 순간을 포착하고 그것을 가족이나 친구들과 공유한다.

최신 스마트폰에는 심지어 세로 방향 보기로 고정시키고 가로 방향 보기를 금지시키는 기능까지 있다.  이는 스마트폰 자체가 세로 보기의 매력을 강조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Zettl(2005)이 언급했던 ‘응용 미디어 미학’ 관점으로 보자면, 일상생활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즐거움 그 자체가 콘텐츠로부터 얻는 즐거움과 동일한 무게를 가질 수 있다.  또한 스마트폰은 기존의 질서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것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의미가 생성되는 뉴미디어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기도 한다.  

스마트폰으로 영화와 방송 프로그램을 볼 수도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하는 사진의 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세로 방향의 영상과 사진을 촬영하는 것은 에이젠슈타인이 주장했던 역동성을 만들어낼 수도 있고, 동시에 전통적인 방식의 사진으로 친밀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전통적인 영상 미학의 기준만 생각하는 사람들은 세로 화면비율로 영상을 찍는 것을 보기 좋지 않은 것, 피해야 할 것, 잘못된 것,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미학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세로 방향의 영상(숏폼 콘텐츠)은 피해야 할 증후군이 아니라 오히려 기술 혁신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즐거움일 수 있으며, 새로운 미학을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봐야 한다(Ryan,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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