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곰곰 Apr 05. 2022

잠들지 못하는 자들의 시간과 공간의 방

(2)

관리사무소 안으로 안경을 쓴, 마르고 키가 큰 젊은 남자 한 명이 걸어 들어왔다. 순간, 긴장감 때문에 부풀어있던 몸속의 풍선이 하찮게 푸르르 소리를 내며 조금 작아졌다. 관리사무실 직원과의 침묵을 깨뜨려준 남자에게 나도 모르게 반갑게 인사했다. 젊은 남자는 그런 나를 잠시 바라보았다. 예의를 차리려, 슬쩍 마스크를 내리고 인사를 했다. 다시 마스크를 쓰고 준비해온 몇 마디를 내뱉으려 했지만, 그 남자는 직원에게 말하는 건지, 나에게 말하는 건지 혼잣말을 하는 건지 애매하게 말을 시작했다. 

“아, 저는 좀 체격이 있으신 남자분인 줄….”

남자의 부풀어 있던 어깨가 조금 내려앉은 것처럼 보였다. 어쩐지 나를 훑어보는 그의 모습이 허탈해 보였다. 좀 더 우락부락한 사람이 아니라 아쉬웠나. 나 역시 말을 찾느라 뱃속에 있는 사전을 뒤적거렸다. 관리사무소 직원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전화할 때마다 내뱉던 그 말, 아까 관리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한 말을 반복했다.

“이게 소음이 위에서 아래로만 딱 가는 게 아니고 옆집이나 대각선으로도 소음이나 울림이 전달될 수 있어요.”

도대체 자재를 어떻게 쓰면 진원지를 알 수 없게 자유자재로 퍼져나가는 걸까. 아, 예. 하고 건성을 대답하는 남자를 보자 저 사람은 그간 무슨 소리를 들었던 걸까 궁금해졌다. 그가 대답했다.

“뭐.. 운동하는 소리 그런 거였어요. 주로, 새벽에.”

문득, 체격이 큰 왼쪽 집 남자가 떠올랐다. 이 복도식 아파트의 같은 층에 사는 사람이라고는 옆집의 그 크고 두툼한 남자와 택배 기사밖에 본 적이 없었다. 문을 열었는데 옆집 남자가 문을 잠그고 있었다. 나란히 서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옆집에 누가 사는지 궁금했어요, 하고 웃어 보였다. 상냥한 말투였는데 어쩐지 나는 그 말이 너무 무서워서, 가슴속의 풍선이 자꾸 부풀어 올랐다. 뭔가를 집에 놓고 온 것 같은 연기를 하고 싶었지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빨려 들어갔다. 내가 불편해하고 있다는 것을 들키는 것이 무서웠다. 내가 더 의식한다는 것은 내가 더 약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을 들키는 것은 상대가 그렇게 느껴도 된다는 일종의 자격을 부여하는 일이기도 했다. 

게다가 그는 복도에서 이불을 털어두고 잠시 슬리퍼를 걸쳐두었던 틈을 타 우리 집 현관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었다. 기절할 듯이 놀란 나를 보며 옆집 남자는 잘 지내고 싶어서요, 라며 내밀었고, 나는 비닐봉지를 끝내 거절했다. 내 마음은 이미 그가 범인이길 반쯤은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아랫집에 대각선으로 들렸다고 치더라도, 옆집인 내가 아무 소리도 못 들었다는 것이 영 마음에 걸렸다.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에 의하면, 내가 속한 곳에 또라이가 없는 거 같으면 그 또라이가 나라는데. 그게 나일까. 늦은 시간에 드라이 소리라면 분명 내가 냈을 텐데, 과연 운동하는 소리는 대체 뭘까. 없던 용기가 생겼다.

“제가 출장이 잦아서 집에 없을 때가 많거든요. 그리고 집에서 운동을 하지도 않고..”

“집에 계셨어요.” 

“네?”

“밖에서 불 켜져 있는 거 봤어요. 테라스에 불이 켜져 있던데요.”

순간 뒷골이 싸해졌다. 이 남자, 소음에 진심이었다. 윗집의 소음이 맞는지 확인하려고 밖에 나가서 불이 켜져 있는지 아닌지 확인할 정도면 아마 몇 번쯤은 우리 집에 올라와 문을 두들기고 싶었던 것을 수십 번 참았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했다. 바람이 살짝 빠졌던 가슴속의 풍선이 조금 더 부풀어 올랐다. 이제는 정말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뱃속의 사전을 덮었다. 착잡해진 마음으로 아랫집 남자에게 종이가방과 슬리퍼를 내밀었다. 

“몇 달 전에 관리실 통해서 전화받고 나서, 제가 바로 슬리퍼를 샀거든요. 이미 두 개나 있어서, 이 슬리퍼는 안 주셔도 될 것 같아요. 소리는 제가 좀 더 신경 쓸게요.” 

“네.” 

“그리고 이거는 별 거 아닌데, 과일 먹기 힘드실 것 같아서요.”

“네, 네. 고맙습니다.”     

관리소 남자 직원은 자신이 이 문제를 다 해결한 양, 혹은 소개팅이라도 시켜준 양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아랫집 남자는 맥 빠진 느낌으로 천천히 관리소를 빠져나왔다. 아랫집 남자는 불편했는지 우리 동 반대쪽에 있는 편의점을 향해 가버렸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아파트 입구를 향해 걸었다. 걸어가면서 가슴속에 조금 작아졌던 풍선이 푸드득 더 하찮은 소리를 내며 여기저기 부딪히다가 털썩 떨어졌다. 하필이면 엘리베이터는 13층에 멈춰 있었다. 올라감 버튼을 누르고 그 앞에 서있었지만, 감지 센서가 반응하지 않아 깜깜했다. 팔을 크게 뻗어 휘적거렸다. 그 앞을 크게 한 바퀴 돌고 나서야 불이 켜졌다. 옆의 유리창에 팔을 펄럭거리고 있는 나와 마주쳤다. 머쓱함에 뭐라도 채워 넣어야 할 것 같아서 엘리베이터 옆에 있는 공고문들을 읽어내려갔다. 

공유 공간 활용을 위한 의견을 묻는 설문조사 안내, 복도 창호 설치를 위한 서명 안내, 행복주택 입주자들을 위한 메신저 오픈 채팅방 QR 코드, 마지막으로 눈을 끈 것은 공유 숙박 금지 안내문이었다. 

공공임대를 불법적으로 전대한 경우,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임대주택을 임대받거나, 임대받게 했거나 적발 시, 징역 3년 이하 3000만 원 이하의 형사 처벌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행복주택을 공유 숙박 업체에 내놓고 돈을 벌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읽어보니, 이 불법적인 소득 활동이 걸린 이유는 아마도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차 때문인 모양이었다. 출근길에 꽉 찬 주차장을 가로지르면 외제차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이 아파트의 입주 조건 중 자동차 가액은 2468만 원을 넘으면 안 된다는 조항이 있었는데, 주차장에는 BMW를 시작으로 꽤 다양한 외제차들이 보였다. 그 차들이 자주 바뀌는지까지는 몰랐다. 다만, 최근 등록 차량 외에는 스티커를 붙인다는 안내문이 있었던 걸로 보아, 불법주차 스티커를 붙이자 차주와 경비실과 실랑이를 벌이면서 들켰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집주인은 들킬 일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을 텐데, 이런 외제차나 주차 문제 때문에 들킬 거라고는 생각 못했겠지. 바보네.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세상에 돈을 버는 방법은 너무나 많고, 그것으로 자기만의 방을 착실하게 넓혀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나야말로 바보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때, 전화가 걸려왔다. 그새를 못 참은 효정이었다. 닦달하는 효정에게 대답하려 서둘러 집안에 들어가 테라스로 향했다. 테라스에서 통화하면 아랫집에는 안 들리겠지 하는 심산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어, 그냥.. 내가 그 소음의 주인이 아니라고 판단한 거 같았어. 내가 우락부락한 남자라고 생각했었나 봐.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 슬리퍼도 되게 큰 거였어.”

“그래, 서로 안면 트면 그때부터 더 조심해야 돼. 근데 내 택배 받았어?”

“응, 마그네슘이랑 멜라토닌? 이거 좋아?”

“그거 먹어봐. 난 좋더라. 잠은 환경이 중요한데.. 위아래 옆으로 그렇게 다 시끄럽게 하니 잠이 오겠냐.” 

“고마워.”

“약이라도 잘 챙겨 먹어. 니 몸 네가 챙겨야 돼.” 

“알았어, 너는 집 어떻게 됐어?”     

효정은 얼마 전에 영혼까지 끌어 모아 산 아파트에 전세를 주고, 대출을 갚느라 본인이 정작 살고 있는 아파트의 전세 보증금을 올릴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원래 집주인이 부동산 규제 강화로 있던 집들을 팔면서 효정에게도 집을 사라고 몇 번 언질을 주었는데 효정은 이 집에 살고는 있지만, 대단지의 브랜드 아파트는 아니어서 살 생각은 없다고 했다. 그 사이에 결국 집을 팔아 집주인이 바뀌게 되었는데, 그 집주인 역시 영혼까지 끌어 모아 집을 산 40대 초반 회사원이라고 했다. 새로운 집주인 역시 실 거주 목적이 아니니 계속 전세를 놓을 거라 걱정하지 말라 하던 전 집주인의 말대로, 효정은 그 집에 변함없이 머물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는 전세 보증금을 올리지 않게 되었다고 했지만 목소리가 어두웠다.

함께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 고향에서 살고 있는 친구들은 나름 중산층으로 진입해 들어가고 있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것은 효정에게는 집이 있었다. 하지만, 남편도 아이도 집도 차도 고양이도 없는 이 인생은 정말로 괜찮은 걸까. 효정에게는 늘 그래도 너는 집이 있잖아,라고 말했는데 이제는 집이 있어도 집이 없다고 한다. 그래도 집이 있는 게 낫지 않나. 이런저런 잡생각들을 떨치고, 효정을 달래 보았다.

“그런데, 목소리가 왜 그래.”

“야, 우리 부장 있잖아.”

“니 미래가 될까 봐 무섭다던? 그?”

“어. 맞아, 근데 새로운 집주인이 우리 부장인 거야.”

“야, 말도 안 돼.”

“기분 탓인지 모르겠는데.. 사사건건 말하는 게, 기묘하게 기분이 나빠. 모든 걸 자꾸, 내가 자기 물건을 빌려 쓰는 것처럼 말해. 이 회사도 자기 거가 아니잖아? 그런데 다 자기 거처럼 말해. 회사에서는 상사고. 밖에서는 집주인이야. 주중에는 회사 일로 연락하고, 주말에는 집 때문에 연락해. 근데 더 나쁜 건, 회사를 그만둘 수가 없어. 대출받은 것 때문에. 잠이 안 와. 잠이.”

“멜라토닌은 네가 먹어야겠다.”

“우리 집에 많아.”    

“술은 먹지 마.”

효정이 대답이 없었다. 나는 대답할 때까지 계속 말했다.

“자려면, 먹는 게 나아.”

“가끔 많이 먹는 거보다 매일 조금씩 먹는 게 더 나빠. 알지?”

 효정에게 한 말들은 사실 다 나를 향한 말들이었다. 잠이 오지 않아서 억지로 매일 맥주를 한 캔씩 원 샷 하고 잠들던 날이 많았다. 330ml가 금세 500ml이 되었고, 두 캔이 되고 세 캔이 됐다. 그걸 참으려고 억지로 무알콜 맥주를 사다 마시면서 간신히 그 고리를 끊었다. 

그때, 건너편 테라스에서 옆집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명확하지는 않았지만 작은 소리는 아니었다. 그녀 역시 테라스에서 숨어 전화를 하는 걸까. 서둘러 전화를 끊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내 통화소리 역시 저렇게 선명한 리듬과 박자로 옆집의 누군가에게 들렸을까.

그리고 그것으로 층간 소음 건은 당연히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했다.      



<계속>



작가의 이전글 잠들지 못하는 자들의 시간과 공간의 아파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