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우영우 역의 배우 박은빈
"부담감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16부까지 약 7개월간의 내외부적인 부침을 딛고 완성해낸 제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뿌듯하다."
앞머리를 내린 가지런한 단발머리. 종영 인터뷰에 나타난 박은빈은 여전히 드라마 속 우영우 그 자체로 보였다.
8월 2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지난 18일 종영한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에서 우영우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박은빈을 만났다.
"'우영우' 찍으면서 행복했지만..."
드라마 <우영우>는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스펙트럼을 동시에 지닌 신입 변호사 우영우(박은빈 분)의 대형 로펌 생존기를 그린 작품이다. 폭발적인 인기로 '우영우 신드롬'을 일으키며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흥행했다. 7개월의 긴 여정 끝에 무사히 종영을 맞이한 박은빈의 지금 심정은 어떨까. 종영 소감부터 물었다.
"'우영우'를 찍으면서 행복했다. 동료애를 나눈 좋은 시간이었지만 개인 내적으로는 부침이 심했다. 주위에서 도와줄 수 있는 게 많이 없었다. 대사 외우는 것도 그렇고 결국에는 제가 해내야 하는 것들이어서 솔직히 고독할 때가 많았다. 7개월 동안 오프(off)가 되지 않고 내내 온(on)이 된 상태로 다음 신을 외워야 하고 이런 일상의 반복이었다. '이렇게 번아웃이 오는 걸까'라는 생각이 드는 때도 있었다. 제 한계를 시험해보는 시간이었다. 마지막에 드디어 끝났구나 싶었을 때 내가 결국 해냈구나 하는, 단순한 시원함이 아닌 안도감 플러스 고독함이 느껴졌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올바른 방식으로 우영우를 표현하는 데 부담을 느꼈던 박은빈. 그에게 촬영이 진행되는 기간의 매 순간은 시험이었고, 또한 도전이었다. 압도적인 대사량이라는 표면적인 압박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시험 보는 마음으로 대사를 A4용지에 써서 끊어 읽기를 해가며 외웠다"라는 박은빈은 "매일 서술형 시험을 보는 마음이었다. 역대급 대사량이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대사의 방대함도 방대함이지만 그걸 속사포로 뱉어야 했고, 그러면서도 법률 내용을 정보 전달 측면에서도 부족함이 없이 소화해야 했다. 수십 번을 반복해서 대사를 하다 보면 머리가 고장난 듯 새하얗게 될 때도 있었다. 한 회차에서도 3~4번의 공판이 있었기에, 배우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여러 한계를 시험해보는 장이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캐릭터 면에서나 작품 면에서나 이렇게 어려운 드라마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처음엔 자신이 잘 해낼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고, 또한 함부로 선입견이나 편견을 갖고 대하면 안 되는 캐릭터 같아서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몰라 어려웠다는 박은빈. 이런 이유로 작품을 고사하기도 했던 그는 그럼에도 용기를 냈다.
"저는 저의 가능성을 믿는 부분이 있다. 자기효능감이라고 하는 것 말이다. 나는 무엇이든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어렸을 때부터 좀 있었던 것 같다. 그런 결심들이 우영우를 있게 한 것 같다. (자폐스펙트럼에 관한)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면 제가 신중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박은빈은 자폐스펙트럼에 관한 레퍼런스를 배제한 채 이 작품을 준비했다. 왜 그랬을까. 이 질문에 그는 "실제 자폐인들을 따라 하는 건 금기해야 한다고, 그런 윤리적 책임을 느꼈다. 제가 생각하는 방법론에 있어서는 실제 자폐인들의 모습을 도구적 장치로 이용하면 안 된다라는 게 있었다. 우영우만의 독자적인 캐릭터를 구축하고자 했다. 자폐스펙트럼 진단기준을 찾아보는 게 도움이 많이 됐다"라고 답했다.
"나름대로의 균형 속에서 재밌게 살고 있다"
그에게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물었다. 이에 박은빈은 외뿔고래를 이야기하는 장면을 꼽았다. 그는 "영우가 아버지한테 '오롯이 좌절하고 싶다' 이런 대사를 하는 것을 봐도 그렇고, 영우는 아버지의 보호가 필요한 그런 사람이 아니라 항상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갈 줄 아는 용기 있는 사람이다. 자기에게 낯설고 불편하고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내가 해보겠다고 결심하는 영우의 모습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행여나 코로나에 걸려 촬영에 차질을 빚을까봐 박은빈은 촬영 내내 차에서 혼자 밥을 먹었다. 잘 알려진 이 일화에 대해 묻자 그는 "'우영우' 같은 경우는 제가 없으면 대체가 안 되니까 주의하긴 했다"라며 "어렸을 때부터 책임감이 투철했던 기질적인 면의 영향 같기도 하다. 하지만 제가 모든 것을 다 차단하고 오롯이 연기를 위해서만 살고 있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그렇게까지 저를 옥죄면서 살고 있진 않다. 에너지의 균형을 내적으로 잘 맞춰가며 일한다. 전작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연모> <우영우> 내내 코로나 상황이어서 계속된 도시락 투쟁이었다"라고 밝혔다.
어떻게 내적인 균형을 찾는지에 관한 추가질문도 이어졌다. 이에 박은빈은 "쉴 때 저는 비워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을 좋아한다"라고 귀띔했다.
근래에는 "왜 이렇게 도전을 좋아하느냐"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는 박은빈. 정말, 왜 그렇게 어려운 도전에 열심일까. 이 물음에 그는 "인간 박은빈은 사실 안정적인 상황을 좋아하지만 배우로서는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는 것이 새로운 경험이 되고 새로운 성과로 인한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실패가 제 인생의 전부가 아닐 거라고 믿는 그런 확신이 있기 때문에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도전을 해보게 되는 것 같다"라고 답변했다.
"슬럼프도 언젠가는 있었겠지. 하지만 지나고 보면 저를 더 단단하게 해주는 시간들이기도 하니까. 제 나름대로의 균형 속에서 재밌게 살아간다. 제가 다 차단하고 사는 그런 구도자는 아니다. 지금의 저는 건강한 상태다."
그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사를 물었다. 이에 "제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습니다"를 꼽으며 "이 대사가 드라마를 통틀어서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인 것 같다"라고 했다.
"외뿔고래라고 자신을 느끼면서, 다름을 인정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굉장히 큰 울림을 주는 대사였다고 생각한다. 나아가서 모든 감정을 뿌듯함이라고 자각하는 영우의 모습에서 저는 감동을 느꼈다."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서도 물었다. 이에 박은빈은 "앞으로의 차기작은 아직 생각한 게 없다"라며 "영우처럼 저도 잘 헤쳐 나가고 싶다"라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우영우>를 시청해준 많은 분들에게 다음과 같은 한 마디를 남겼다.
"이 세상의 외뿔고래들에게 바치고 싶다. 우영우라는 사람의 세계를 함께 탐험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했다. 저도 '우영우'를 봐주신 분들의 나날을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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