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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Nov 02. 2022

쓰고 싶지 않은 글의 목록





"저... 이거 못 쓰겠어요."


3시간을 고민하고서 용기 내어 뱉은 말이었다. 쓰기로 해놓고 지금 와서 그러면 어떡하냐고, 그냥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팀장님이 말씀하신다면 그 말에 나는 어떤 답을 내놓을 것인지, 어떻게 말을 해야 그 기사를 안 쓸 수 있을지 번뇌하며 겹겹의 시나리오까지 짜 놓은 터였다. 그러나, 다행히 팀장님은 내가 그 글을 도저히 쓸 수 없는 이유에 공감해주었고 다른 주제로 기사 쓰는 걸 허락해줬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음악담당 기자인 나는 <헤드폰을 쓰세요>라는 연재물을 발행 중이다. 노랫말이 인상적인 곡을 골라 그 가사를 나름대로 해석하여 독자와 깊이 있는 감상을 나누려는 취지의 연재다. 내가 이번 주에 쓸 곡은 이찬혁의 신곡 <파노라마>였다. 이미 지난주 초에 이 곡을 쓰기로 결정 난 상태였고, 나는 약속대로 이번 주에 그 곡에 관해 연재기사를 써야 했다. 하지만 도저히 키보드 위의 손가락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쓸 수 없다고 말해버린 거다. 그건, 10월 29일 밤에 일어난 믿을 수 없는 비극 때문이다.



이찬혁의 <파노라마> 가사 속 화자는 젊은 나이로, 길을 걷다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해 죽음에 이른다. 그러나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이렇게 죽을 수 없다'라고 말하며 스쳐가는 파노라마를 붙잡는다. 사실, 노랫말을 여기에 옮겨 놓으면 독자의 이해가 가장 빠르겠지만 차마 그럴 용기가 나지 않는다. 가사 한 구절, 한 구절이 우리가 지켜주지 못한 그들이 내뱉는 말 같아서다. 이 노래에 관한 기사를 쓰고 싶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남은 자들의 상처를 긁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글은 쓰고 싶지 않다. 예전에는 '쓰고 싶은 글의 목록'을 생각했다면, 이제는 '쓰고 싶지 않은 글의 목록'을 생각하게 된다. 후자가 내게 더 중요해졌다는 건 글이 그만큼 무서워졌다는 신호다. 하고 싶은 말 백 마디를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해서는 안 될 말 한마디를 안 하는 게 더 중요한 것처럼 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어떤 글을 '쓰지 않을지' 그 기준을 분명히 하는 작업이 내게는 더 절실하다.


<쓰고 싶지 않은 글의 목록>

1.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글

2. 내 생각이 아닌 글

3. 써야 해서 쓰는 글

4. 잘 알지 못하면서 지껄이는 글

5. 뻔한 말처럼 텅 빈 글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 이 말을 들으면 예전에는 '그만큼 글의 힘이 강력하고 근사한 거구나' 하는 생각에 글이 쓰고 싶어졌는데 이제는 반대다. '그만큼 글이 무서운 거구나' 싶어 글 쓰는 게 꺼려진다. 펜 잡은 지 10년. 칼 무서운 줄 모르고 휘둘러댔던 시절도 내게 분명 있었다. 그러나 검의 대가가 결정적 순간 외에는 함부로 칼을 휘두르지 않듯이, 복싱 챔피언이 일반인에게는 주먹을 아끼듯이, 이런 대가들의 태도를 따라가고 싶다. 물론 아직 난 대가가 아니고 한참 부족하지만, 미미하게나마 글로써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그 영향력이 타인을 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려 한다.


검술이 무르익을수록, 주먹이 단단해질수록, 필력이 늘수록, 자신이 가진 그 재능을 두려워할 줄 알고 꺼리는 마음을 지녀야 마땅하리라. 그 누구도 다쳐서는 안 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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