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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May 19. 2023

르세라핌 '언포기븐', 선 넘을 용기



내가 제일 싫은 건
낡은 대물림




ⓒ 쏘스뮤직(하이브)



아이브, (여자)아이들, 에스파 등 자신을 사랑하는 태도와 당당함, 남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는 자세 등을 주제로 활동하는 현재 여성 아이돌 중 가장 과격한 건 단연 르세라핌이 아닐까 싶다. 


센 언어를 사용한다거나, 스타일링이 터프하다는 게 아니라 전달하는 메시지 자체가 가장 거침이 없고 매운맛이다. 다섯 멤버 김채원, 사쿠라, 허윤진, 카즈하, 홍은채를 따로 놓고 보면 강하기보다는 여리고 여성미가 더 짙어 보이는데, 르세라핌이라는 하나의 팀으로 놓고 보면 호랑이처럼 사나운 반전미가 있다.      


'언포기븐(UNFORGIVEN)'이라는 곡 제목에서부터 강한 기운이 느껴진다. UNFORGIVEN은 '용서받지 못한'이라는 뜻의 형용사다. 르세라핌은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 개의치 않는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빌런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음악이 선을 넘고 경계를 넘어 확장되는 것처럼, 계속해서 한계를 넘어서는 팀이 되고 싶다"라고 소개한 바 있다.


"Unforgiven I'm a villain I'm a/ Unforgiven 난 그 길을 걸어"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에서 화자는 자신이 용서받지 못하는 빌런이며, 주위의 어떤 소리도 신경 쓰지 않고 내 갈 길을 간다고 분명히 밝힌다. "너의 game에 난 문제아/ such a freak 골칫거리" 이렇게 이어지는 가사에서도 강한 정신과 태도가 느껴진다. 누군가에게 골칫거리 문제아가 되지 않고 착한 사람으로 남고 싶은 게 평범한 사람들의 바람이지만, 르세라핌은 이런 것들을 포기한다. 미움받더라도 내 신념대로 나아가길 택한다.


"Let me tell you 'bout LE SSERAFIM/
내가 제일 싫은 건 낡은 대물림"


가사에서도 보이듯 이들은 LE SSERAFIM(르세라핌)이라는 팀명 자체를 핵심 좌우명 삼아 노래마다 가져간다. LE SSERAFIM은 'IM FEARLESS'라는 문구를 애너그램(문자 재배열)하여 만든 이름이다. 두려움 없이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자기 확신이 깃든 팀명인 것.


ⓒ 쏘스뮤직(하이브)


'언포기븐' 노랫말 중 가장 과격한 한 문장을 꼽으라면 '내가 제일 싫은 건 낡은 대물림'이라는 구절을 택하고 싶다. 사람들이 대부분 생각 없이 따르는 모든 관습들을 깨부수려는 의지가 담긴 이 문장은 매우 전복적이다. 이 구절이 곡 전체의 핵심 메시지처럼 보인다. 이 부분을 듣자마자 떠오른 문장이 있는데,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브레히트의 좌우명이다.


"좋은 옛날 것 위에 건설하지 말고 나쁜 새로운 것 위에 건설하라." (브레히트의 좌우명)


많은 이들이 그것이 보증되고 좋다는 이유로 낡은 것을 버리지 못하지만, 소수의 강력한 사람들은 나빠도 새로운 것을 선택한다. 아마 그들은 옛날 것, 즉 시간이 흘렀어도 전혀 발전도 변화도 없는 구태의연한 것들 자체를 '나쁜 것'으로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이게 진정한 과격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 글에서 쓰인 과격이라는 단어는 긍정적인 의미인 것이다.


이 곡은 유명 기타리스트 겸 프로듀서 나일 로저스(Nile Rodgers)가 기타 연주 피처링을 해 눈길을 모으기도 했다. 나일 로저스는 "최근 들어본 K팝의 매력은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K팝이 화성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변화들은 지난 몇 년 동안 음악 분야에서 일어난 어떤 일보다 흥미롭다. 'UNFORGIVEN' 앨범 전체가 마음에 든다.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 깊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나일 로저스는 '언포기븐'을 듣자마자 사랑에 빠져 곡 참여를 결심했다는 후문이다. 


"힘없이 늘 져야만 했던 싸움 but I ride/
바란 적도 없어 용서 따위는/
난 금기를 겨눠 watch me now"


가사를 좀 더 보면 '용서 따위는 바란 적 없다', '금기를 겨누다' 등의 혁신적인 표현들이 등장한다. 금기 역시 그들이 제일 싫어한다는 '낡은 대물림'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노래는 하나의 주제로 밀도 있게 가사가 쓰여 있다고 볼 수 있고, 때문에 강력하고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나랑 선 넘어 같이 가자"


이 구절도 과격 그 자체다. 선을 넘는다는 표현에서 뭔가 해서는 안 될 일을 시도할 때 느낄 수 있는 두려움과 묘한 설렘, 해방감 등이 공존하는 듯하다. 구습을 깨뜨리고, 금기를 겨누고, 선까지 넘는 이 노래는 듣는 이로 하여금 그게 무엇이든 '저지를 수 있는' 용기를 준다. 그것이 사람들이 보기에 나쁜 것일지라도 새로운 것이라면 과감히, 좀 더 과격하게 말이다. 그것이 아래의 가사처럼 새 시대를 여는 사람들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새 시대로 기억될 unforgi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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