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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들 Jan 03. 2023

밤의 노래

우린 노래가 될 수 있을까


고등학교 3학년 때 선생님에게 빼앗긴 mp3가 세 개였다. 야간자율학습시간에 전자기기를 사용하지 말라는 지침이 있었는데 나는 귀에 뭘 꽂지 않은 채로는 야자를 견디지 못하는 고딩이었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었다. 체육복 상의 안쪽으로 이어폰 줄을 넣고, 지퍼를 목끝까지 올라오게 채운다. 그리고 이어폰이 꽂힌 귓구멍을 머리카락으로 가린다. 야자 시간의 절반이 지나갈 무렵, 그러니까 조금 방심한 나머지 라디오의 채널을 돌리거나 노래의 리듬에 맞춰 발끝을 흔들 즈음, 복도를 순회하던 감독 선생님이 교실 문을 열고 나타나 내 눈앞에 손바닥을 내민다. 선생님과 나는 서로를 3초 정도 응시한다. 짧은 눈싸움이 끝나면 나는 패배를 인정하며 mp3의 전원을 끈다. 작고 네모난 것이 둥근 손바닥에 올려진다. 손가락들이 덮쳐오면 기기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진다. 곧이어 와앙- 하고 먹혀버리는 mp3. 선생님은 말없이 나를 한번 째려본 뒤 뒷짐 진 걸음걸이로 멀어진다. 그리고 그런 날 밤이면 나는 쇼핑 사이트에 접속해서 금방 망가진다는 후기들이 줄지어 달린 싸구려 mp3를 다시 구매하는 것이었다.

 

노래는 삶의 결정적인 순간에도 꼭 함께했다. 첫사랑이었던 세 번째 애인이랑 헤어졌을 때도 노래 때문에 얼마나 분주했던가. 당시 나는 SNS에 쓰는 일기에 중독되어있었다. 결별의 슬픔을 생생히 표현하기 위해서 밤마다 문장을 쓰고 지우고 다시 쓰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그날의 내 슬픔과 어울리는 노래를 선곡하거나 반복재생 시켜야 해서 더 바빴다. ‘사랑 없인 못 살아’ 유의 노래와 ‘사랑 따위 필요 없어’ 외치는 노래를 번갈아 틀어야 했기 때문이다. 불 끈 방 안에서 컴퓨터 불빛을 받아 유령같이 빛나는 얼굴 위로 줄줄 눈물을 흘리며 그 애에게 사과하고 그 애를 탓하고 그러다가, 문득 보냈다. 형광등을 켜자 컴퓨터 앞에 앉아도 얼굴만 하얗게 동동 뜨지 않았다.

 

어떤 날에 재생된 노래는 계이름이 안 붙어있기도 했다. 우리는 보통 자정이 다 된 시각에 만났다. 순형이는 사범대 쪽문 뒤 골목에서 자취했고 나는 기숙사에 살았다. 중간 지점에서 만난 둘은 교내에서 가장 경사진 언덕을 찾아 그 끝까지 올라갔다. 몸을 돌려세우자 상징탑과 단대 건물들이 내려다보였다. 우리는 아무 자리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한 사람이 말 하나를 툭 던지면 옆 사람이 바닥에 떨어지기 전 얼른 그 말을 주워 이야기를 이었다.

 

 

너 교육행정 한 번만 더 결석하면 교수님이 F준대.

아직도 나 F 안 주셨대?

아, 맞다, 과팅했던 사람이 사귀자 했다?

그래서 사귀게? 너 걔는 어쩌고.

그 새끼? 걔 다른 애랑 키스했대.

미친 새끼.

근데 나 사장이 알바비 안 줘.

왜?

몰라.

그럼 어떡해?

노동청에 신고할까.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몰라, 존나 귀찮아.

이번 주 김민주 교수님 거 과제 뭐였지?

그 교수님 너무 무서워.

근데 멋있지 않아?

그니까 내 말이.

아, 슬슬 춥다, 담배 있어?

여기. 내일 갚아.

나 휴학하게.

왜?

돈 없어.

학자금 대출 받았잖아.

생활비 벌어서 복학 할라고.

으악, 깜짝이야!

악, 뭔데?!

아, 나뭇잎이네, 벌렌 줄.

야이씨, 싸울래?

 

 

어둡고 습한 공기에 푹 잠겨 고요해진 캠퍼스를 멀거니 보며 주고받은 이야기라면 셀 수 없을 것이다. 온 정신을 송두리째 흔드는 일생일대의 문제와 오줌 마려운데 건물 문 잠겼으면 어떡하지 같은 목전의 걱정을 한 데 섞은 밤들이었다. 아주 많은 말을 늘어놓았고, 해놓고서 까맣게 잊은 말도 많았다. 그런데 어떤 말은 잊혔다는 사실과 상관없이 다른 때 다른 곳의 우리에게로 이어졌을지 모른다. 나는 순형이 이전에 소현이라는 친구와도 중요한 말을 주고받은 적이 있다.

 

책상에 엎드려 우는 아홉 살 소현이를 달래려고, 한 교실 친구들이 모였을 때 아홉 살의 나는 ‘내버려 둬. 울 땐 울어야 돼.’하고 말했다. 나와 나란히 하교하던 소현이가, 동네 길목에 다다랐을 때 ‘아까 네가 그렇게 말해서 서운했어.’라고 쏘아붙였다. 뜨끔했다. 소현이가 서운할 걸 알면서도 달래주지 않은 나의 야박함을 들킨 기분이었다. 그 비슷한 일은 열네 살의 나미와도 있었고, 스물두 살의 민섭이와도 있었고, 언젠가 또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 몇 가지의 장면을 두고두고 기억했다. 가족 앞에서도 친구 앞에서도 오래오래 눈물을 참았던 시절의 나를 기억했고, 그 시절 동안 남의 슬픔으로부터도 도망치고 싶어 했던 나를 기억했다. 걔를 상처 줬다는 기억이 나를 자꾸 혼내서, 나는 오래된 습관을 서서히 떨쳐갔다. 마음이 울컥 거리면 왈칵 울고, ‘나 슬퍼!’ 외치고, ‘너 슬퍼?’ 물었다. 내가 마음껏 울게 됐을 때 가장 좋았던 점은, 네가 우는 걸 마음껏 볼 수 있게 됐다는 거였다.

 

아홉 살에 소현이와 나눈 대화는 청소년기와 20대 시절 내내 나와 함께 걸었고 네가 우는 걸 마음껏 볼 수 있는 마음으로 나를 이끌었다. 잊어버린 줄 알았다가도, 첫 소절을 들으면 다음 대목을 절로 따라 부르게 되는 어떤 노래들처럼.

 

기억이 노래가 되는 일에 관한 곡을 만들고 부른 밴드그룹도 있는데, 그들의 목소리와 연주를 들으면서 나에게 남은 어떤 노래들을 연상한다.

 

 

오래된 약속들이 한 편의 짧은 시로 남을 때

속삭이던 말들이 몇 개의 아픈 선율이 될 때

서로가 각자의 기억 속 어딘가에 자리할 때

그때 기억은 노래가 된다

 

우린 노래가 될 수 있을까

몇 개의 계절이 지나가면

함께 지새운 밤을 모두

기억할 수 있을까

 

-너드커넥션, <우린 노래가 될까> 중에서

 

 

한 편의 짧은 시로 남은 약속들을 떠올린다. 소현이와의 것이다. 아픈 선율이 된 속삭이던 말들도 떠올린다. 이건 순형이와의 것이다. 함께 지새운 밤에 부른 노래를 기억한다. 나의 몸과 마음에는 순형이, 소현이, 나미, 민섭이 같은 친구들이 여럿 새겨져 있을 것이다. 마음껏 울고 큰 소리로 웃을 때, 그들로부터 흘러들어온 노래가 나를 흐르고 있을 것이다.



*<독서관>에서 발행하는 뉴스레터인 <요일작가> 시즌2에서 무료 연재 하였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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