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 누워 무심히 책장을 쳐다보다가 문득 ‘어?’하면서 늘 꽂혀있던 책 하나가 새삼스럽다. 읽는 내내 알 수 없는 꿈에 시달려 아침마다 몸이 찌뿌둥할 만큼 강렬했던 책, 저거 내 거였던가. 내가 저 책을 언제 어디서 샀더라. 하다 보니 내가 저걸 빌렸었나보구나 싶다. 그런데 왜 한 번도 돌려줘야겠다는 생각을 못했을까. 저 책을 빌려서 다 읽고 아무렇지 않게 내 책장에 꽂았었다. 그 후 두 번의 이사를 하느라 다시 꺼냈다가 넣었다가, 또 꺼내서 이 방 책장에 꽂았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저 책이 남의 책이라는 것을 단 한 번 떠올리지 않았다니. 이상한 일이다.
어쩌면 언제든 돌려줄 수 있을 줄로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언제라도 ‘아 참, 집 갈 때 이거 챙겨가’ 하면 되는 줄 알았던 거다, 언제라도. 네 것을 내가 가지고 있다거나, 내 것을 네가 가지고 있다는 게 같은 말 같았다. 하지만 사람일은 모르는 거라서 이제 저 책을 어떻게 돌려줘야 할지도 알 수 없게 됐다. ‘그 책은 잘 있느냐’며 모자란 안부인사를 걸어오지 않는 이상 나는 그냥 두려고 한다. '돌려줄 책’을 빌미삼은 다른 맘이 있다고 오해 받기 싫고, 또 하나는 저 책을 그냥 저대로 두었으면 싶기 때문이다.
그 방 책장에는 내가 1/3 정도 읽다가 갈피를 끼워 놓은 책 한 권이 있다. 나는 이상하게 가끔 그것이 갈피가 끼워진 채 그대로 오래도록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냥 내가 이 관계에서 지금으로서 바라는 것은 그것 두 가지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