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자 노트
1. 가치에 기반한 개입은 언제 도움이 될까
수용전념치료 ACT나 행동활성화치료 BA에서는 '가치'를 발견하고 구체화하는 작업이 내담자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중요한 동기이자 열쇠로 본다. 상담자마다 지향이 다르고 구체적인 경험도 다르기 때문에 실제로는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을 것이다. 아예 다루지 않거나, 매 상담에서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더라도 염두에 두고 있거나, 특정 내담자 군에서 효과가 있다고 느껴져서 다루게 되거나.
나의 경우에는 기계적으로 적용했을 때 백이면 백, 내담자와 멀어지는 경험이 일어났다. 특히 당면한 어려움이 뚜렷할 때 가치를 다루는 것이 치료적이지 않았다. 경직된 신념이나 핵심감정이 다뤄지지 않았을 때, 해소되지 않은 감정으로 가득 차 있을 때에는, 그것을 충분히 먼저 다루어야 한다. 에둘러가는 길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런 경우가 아니면서, 내담자가 길을 잃었다고 느낄 때, 습관을 만들고 싶을 때에는 강력한 효과가 있었다. 예를 들면, 핵심감정이나 신념을 충분히 다루고 나서 길을 잃었다고 느끼고 방법을 모르겠다고 느끼는 경우, 혹은 다른 어려움은 크지 않은데 항상 게으르다고 느끼며 무엇을 지속하기 어렵다고 느낄 때와 같은 경우.
가치는 나답다고 느끼고 내가 원하는 방향. 그곳으로 향해 가기 위해 목표가 있고 행동을 한다. 그러나 우리는 나를 움직이는, 나로부터 시작하는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거나, 생각하다 말았거나, 알았다 하더라도 과연 그게 가능할까 싶어서 포기하기 쉽다. 그러나 '내게 중요한 가치를 아는데 안하고 있다'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나로부터 시작되는 가치는, 그 자체로 동기가 되기 때문에 나도 모르는 새에 거기에 도달하는 행동들을 하게 된다. 좋아 보이는 가치를 떠올렸거나 구체적이지 않고 모호한 수준으로 가치를 느꼈기 때문에 안하게 되는 것일 뿐이다.
- 그렇다면 나는 여러 삶의 영역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 어떻게 관계 맺고 싶은가?
- 어떤 문장이나 어떤 표현으로 정리될 수 있을까? 그 표현을 말할 때는 무엇이 느껴지는가? 나답다고 느껴지는가? 살아있다 느껴지는가? 여러 표현들이 어떤 한 두 문장으로 통합될 수 있을까?
- '이러저러해서 안될 것 같다'라는 목표에 대한 이야기이고, 가치는 방향에 대한 이야기이다.
2. 습관 만들기에서도 가치가 중요하다. - 행동수정
습관을 만들기 위해 행동계획을 촘촘히 짰지만 환경 변화로 행동 실행이 어려울 수 있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관찰과 기록을 하면서 목표보다 먼저 가치를 명료화해두어야 한다. 가치는 목표를 세우고 이루도록 이끄는 방향이다. 목표는 달성하면 없어지는 것이지만 가치는 방향이기 때문에 도달하려 노력할 뿐 도달되어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수영하는 할머니"라면, "접배평자 500m 주 3회"의 장기목표와 그에 따른 단기목표는 변화될 수 있다. 돌아가든 쉬어가든 새로운 길로 가든 나다운 가치를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므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목표도 존재하는 것이므로.
만약 담수 교체나 강습수강신청을 못해서 루틴에 변화가 예상된다 하더라도 괜찮다. 미리 예상이 된다면 수영과 멀어지지 않는 대체행동을 마련하면 된다. 방향에 맞은 어떤 작은 행동도 목표가 될 수 있고, 방향에 맞는다면 나에게 나답고, 즐겁고, 더 나아졌다고 느끼게 할 테니. 우리에게는 언제나 그렇듯, 습관을 만드는 데 있어서도 역시 유연함이 필요하다.
3. 성격 강점은 능력이나 기술이 아니다.
대표강점이란 점수가 높았던 상위 강점인데, 점수가 높았다는 것은 그만큼 나답다고 느끼는 강점이라는 의미이고, 대체로 자주 발현되고 있을 것. 그러나 삶의 영역에 따라 다르게 발현되거나 과다 혹은 과소 발현될 수 있다. 성격강점이 행복을 높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과다사용이나 과소사용은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 줄어든다. 즉, 성격 강점도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강점 검사의 목적이 단지 강점을 알려주고 활용할 수 있게 돕는 것이라면 결과보고서만 받아봐도 될 일이다. 전문가로서 해석상담은 어떤 목적을 가질까? 내담자가 새롭게 나의 모습을 바라보고 이해받는 경험을 하고, 그럼으로써 변화하고 싶다는 희망이나 동기를 불어넣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강점기반 해석상담에서는 어떤 질문이 필요한가.
- 대표 강점 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와닿고, 가장 와닿지 않는가?
- 대표 강점이 나의 특성이 아닌 것 같은가? 나의 특성이라고 생각이 되는데 강점은 아닌 것 같은가?
- 어떻게 발현되고 있을까? 다른 삶의 영역에서는 어떠한가?
- 대표강점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서로 보완 혹은 제한하고 있는가?
- 과소/과다 사용되고 있는 강점이 있다면 다른 어떤 대표강점을 발현하여 보완하고 있는가? 보완하고 싶은가?
4. TCI 기질의 변화 혹은 불일치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TCI의 이론적 근거에도 불구하고 자기보고식 검사이기 때문에, 생물학적이고 타고난 기질도 환경에 따라 심리적 상태에 따라 가변적으로 나타난다. 심리검사의 객관적인 수치에 얽매이지 않고 내담자를 서로 이해해나가는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 만약 내 실제 모습과 불일치하는 부분이 있거나, 시간이 지나 비교했을 때 기질이 다르게 나타났다면, 과연 어떤 모습이 나답다고 느끼는가, 환경 변화에 따라 지금 억제되고 있는 부분들은 없는지를 다뤄볼 수도 있다.
5. 마음챙김 명상 훈련에서도 관찰과 기록이 중요하다.
마음챙김 훈련에서도 관찰과 기록이 중요하다. 지금 내가 마음을 빼앗기는 걱정거리나 감정을 알아차릴 기회가 된다는 점, 유쾌한/불쾌한 사건에 대해 돌아보면서 알아차림이 더욱 빨라진다는 점, 감정이나 신체감각이 단지 일시적인 사건이고 계속 변화하고 있는다는 점을 배울 수 있다. 또한 관찰과 기록을 통해 훈련하며 어려웠거나 궁금한 점을 직접적으로 다루게 된다. 마음챙김 명상에서 관찰과 기록을 시작할 때에는 강렬한 감정이나 생각 신체감각 느낌을 알아차리고 표현하기 위해 애쓰지만, 점차 심리적, 신체적 경험을 섬세하게 느끼고 표현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 심리적 요소(감정, 생각, 느낌)와 신체적 요소를 적어보자. 그 요소를 알아차리고 주의를 부드럽게 돌려 돌아올 수 있었는가?
- 심리적 요소 중에 '생각'을 알아차렸다면 단지 걱정으로 뭉뚱그리는데서 한발 나아가 그 내용은 무엇이었는지도 구체적으로 적어보자.
- 감정이 느껴졌다면 몸에서는 어디에서 무엇이 느껴졌는가?
6. 다시 우울에 빠질까봐 두려운 마음 그리고 비로소 유연해진 마음
내담자는 많이 좋아지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다시 우울에 빠질까봐 두려웠다. 그러나 다시 상담에 돌아와 초점을 내담자 내부로 돌려보니, 연말이 되자 주변친구들의 승진소식을 들으며 나의 처지를 비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2-3년간 우울과 싸우고 겨우 여기까지 와있는데 회사에서 역할도 불분명한 현실이 괴로웠다. 그 괴로운 감정을 마주하고 느끼고 나니, 그 불안과 우울이 사실은 친구들의 승진소식이나 다시 시작된 우울이 먼저가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 사정을 알고 있던 높은 상사가 바뀌면서 나의 맥락을 알지 못하는 상사가 숫자로 표현된 나를 부정적으로 평가할거란 두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알아차리고 나자, 내담자는 차츰 유연해졌다. 직속 상사에게 업무적인 상황을 공유하고 도움을 미리 요청하는 식으로. 이내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 있게 되었구나. 표현하고 요구할 수 있게 되었구나.' 알아차린다. 한숨이 나고 막막하고 압도되는 상황은 우울하지 않더라도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다만 그랬을 때 알아차리고 돌아올 수 있음을, 의지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면 나의 반응은 달라진다.
7. 이렇게 내담자가 작은 깨달음이나 변화를 이루었을 때 상담자의 역할은
그 경험을 천천히 재경험하며 인식할 수 있도록 돕고,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온다면 무엇을 떠올려볼 수 있을지 한두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래야지만이 내담자는 상황이 아니라 나 자신이 변화하고 있다는 감각, 단지 우연이 아니라 내담자의 용기 낸 행동이 변화에 중요했다는 감각, 그리고 어떻게 용기 낼 수 있었는지 그 실마리를 기억해 둘 수 있다.
-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앞으로 그런 일이 온다면 이번 경험에서 무엇을 배웠나? 어떤 점을 떠올려보면 좋을까?
8. 깨달음이나 통찰만으로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상담이 무르익기 시작하면 내담자는 자신의 경직된 핵심감정이나 대처전략과 그것들이 필요했던 과거 맥락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경직된 내적 경험과 반응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도. 이런 인식들이 시작되면 내담자의 감정은 더 불안정해지기 쉽다. 이전에는 당연하게 느껴져 혼자 감당하기 바빴다면, 이제 당연했던 상황이나 감정들이 다르게 경험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면 이제 내담자는 다르게 행동해 볼 가능성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그러나 과거에 안전감을 느끼게 해주었던 반응을 벗어날 용기가 나지 않아서 괴로워진다. 변화하고 싶지만 변화하고 싶지 않은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이 때 ‘이제 시도해보자’라고 막연히 제안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해볼 수 있겠냐’라고 내담자의 의지를 확인하는 것은 힘이 없다. 그 행동을 해보지 않으면 결코 두려운 상황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경험할 수 없다는 현실을 비춰줄 때이다. 오히려 그 행동을 해볼 때 묵은 감정이 없이 시원하고 가벼워질 수 있다는 걸 경험으로 배울 수 있다는 현실.
그러고 나면, 지나간 혹은 예상되는 상황을 두고 역할연기를 해보고 한 주 동안 시도해 볼 구체적인 행동을 함께 계획해본다. 막상 '오늘 깨달음을 통해 한 주 동안 무엇을 해볼 수 있겠냐' 혹은 '지금 내가 상대방이라고 상상하며 말해보자'라고 제안하면, 실제 상황이 아니어도 내담자는 낯설고 불편한 감정에 빠진다. 그렇기 때문에 상담실 안에서 구체적이고 달성가능한 행동계획을 협력적으로 찾고 나아가 역할연기를 해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지 않는다면 내담자는 일상에서 깨달음을 행동으로 옮기기 어렵고, 다음 주 상담에 돌아와 '내가 또 그러고 있었구나' 깨달음만 얻으며 점차 무기력해진다.
*참고해볼만한 책: 가치 기반 개입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02830136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52834687
*참고해볼만한 책: 강점 기반 개입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9724611
*참고해볼만한 책: 습관만들기 (행동수정)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85213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