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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크림빵 Feb 09. 2024

상담자도 유연함을 잃을 때가 있다

상담자 노트

  우울과 수치심을 다루는 상담은 결국, 내담자가 점차 유연해지는 과정입니다. '이래야 한다', '변해야 한다'와 같은 'should'는 나의 감정과 욕구를 옮지 않다고 느끼게 합니다.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감정과 욕구가 적절하지 않다고 느껴지고 ‘드러내면 안되기’ 때문에, 사는게 버겁고 공허하게 느껴집니다.


  상담자도 유연함을 잃을 수 있습니다. 내담자가 그렇듯 상담자도 강렬하고 위협적인 감정이 일어날 때 취약해집니다. 그때 나도 모르게 자동적으로 '이러면 안 되는데’하는 경직된 태도로 반응하기 쉽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내담자의 반응으로부터 무력하거나 무능하다는 느낌이 들 때 그 위협적인 감정을 바라보지 못하면, 상담자 역시 그 두려움에 휩쓸려 행동하게 됩니다. 내담자를 설득하려 하거나, 설명하거나, 섣불리 사과하거나, 새로운 행동을 제안하는 식으로요.


  이런 상담자의 반응은 내담자의 경험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고 무시하는 것이며, 존중받지 못하는 또 다른 관계 경험을 만들게 됩니다. 어떤 긴장이나 균열이 느껴졌다면 그 순간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살펴보아야 합니다. 내담자가 말을 아끼거나 상담에서 멀어진다고 느껴졌을 때, 문제를 해결하거나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무엇이 일어났는지, 어떤 감정이 느껴지는지에 대해 의도적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내담자에게 기대하듯, 상담자 스스로도 어떠한 경험도, 심지어 상담 관계 안에서 일으켜진 어떤 경험도, 허용하고 환영하는 것이죠. 상담자가 이 과정을 호기심 많은 태도로 다루는 것은, 내담자가 이해받는다고 느끼며 자신을 이해하는 생생한 창구가 됩니다.


  그렇다면 상담 안에서 상담자도 유연하게 존재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먼저, 어떤 관계에서든 긴장은 일어날 수밖에 없음을 인식하고, 이를 허용하는 태도가 치료적이라는 점을 떠올려봅니다. 이런 유연한 태도는 상담 관계에서 생기는 갈등이나 균열을 복구할 뿐만 아니라 관계를 깊어지게 하며, 내담자는 어떤 감정이나 욕구도 받아들여지고 이해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경험합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내담자는 낯설고 불편하지만 한편으로는 안전하다고 느끼며 변화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됩니다.


  더 나아가 본다면, ‘유연한 태도’는 우리가 상담을 통해 나아가기를 바라는 방향이라는 점을 떠올려보아도 좋겠습니다. 내담자에게 바라는 것처럼 우리 상담자는 적어도 상담실 안에서 그런 태도로 있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나도 못하는 걸 바란다면 그 변화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요. 그런 점에서, 상담자는 상담 중에 일어나는 자신의 내적 경험을 바라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항상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것 역시 경직된 태도이며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단지 어느 순간에는 알아차리기 위해서 노력하고 돌아오려는 의도를 품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상담자의 태도는 정신분석에서의 ‘고르게 떠있는 주의’이자, 최근 정신역동에서의 '정신화', 그리고 3세대 인지행동치료에서의 '메타인지'와도 맞닿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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