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노트 15
<다미주 이론; The Pocket Guide to the Polyvagal Theory>를 읽고
<감각운동 심리치료> 세미나, <Somatic Experiencing> 집단상담에 이어, <다미주 이론> 책을 읽었습니다. 오늘은 다미주이론을 읽으면서 느꼈던 점들은 정리해보려고 해요.
1. 생각, 감정에 이어 신체감각으로 확장되는 세계
저는 스스로 내적인 경험을 찬찬히 들여다보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어요. 귀찮아했고, 무신경했고, 판단/해결/회피하기 바빴어요. 어떤 경험들은 '불편'하다고만 느끼는데 멈추고 친절하게 바라보지 못했죠. 심리학을 만나서 배우고 실천하는 것처럼, 마음챙김과 성찰적인 태도로 생각, 감정, 경험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서는 무얼 선택하고 싶은지 결정하기 시작됐어요. 낯설지만 새로운 세상에서 두렵지만 자유롭고 시원한 감각을 느낄 수 있었어요. '아 모든 것은 내가 선택할 수 있구나. 상황이나 타인에게 쥐어진 게 아니구나'. 이 모든 경험들은 내적인 경험에 무지한 데서 시작해, 생각에 주의를 기울이고, 나아가 감정까지도 의도를 가지고 친절하게 살펴보는 과정이었어요.
황무지에서, 생각으로, 감정으로, 점점 인식의 범위를 넓혀왔어요. 비로소 나와 친해지고 있구나, 이것이 자유로움이구나, 살맛나는 세상이구나. 상담에서도 점차 자유롭고 유연해지고 있었어요. 그러나 여전히 신체 감각과 느낌은 상담을 할 때 아주 작은 부분으로 활용했을 뿐이에요. 스스로도 신체 감각과 느낌을 알아봐주지 않는데 내담자에게 감각으로 주의를 기울여보도록 하는 작업이 얼마나 힘이 있었을까 싶어요. 상담자인 저부터도 나의 감각과 느낌에는 무신경했으니까요. 사소하거나 우연처럼 일어난다고 여겼으니까요.
<다미주 이론>은 이제 우리가 친절하게 의도를 가지고 살펴야 할 인식의 범위를 신체 감각과 느낌까지 넓혀야 한다고 제안해요. 처음에는 신체감각과 느낌은 그럼에도 불수의적인 무엇이지 않을까 의구심이 있었고, 집단상담에서 직접 경험해보면서 몸과 감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구나, 받아들이게 됐어요. 그러고 나니, 이런 마음이 올라옵니다. '와, 여기까지도 참 쉽지 않았는데 더 확장해야한다고?' 애쓰고 싶지 않은 마음, 한편으로는 '그래 생각부터 감정까지 다층적인 뇌와 몸으로 확장되어온 끝판왕이 신체감각과 느낌이구나' 하는 연속성에 대한 깨달음.
Somatic Experiencing 집단상담에서 주혜선 선생님은 '저도 인지적인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하고 있는 걸 보면 여러분들도 할 수 있다'라고 나긋하지만 힘주어 말씀하셨어요. 그 말을 믿을 수 있었어요. 신체감각과 느낌을 트래킹하는 과정을 눈앞에서 지켜보니, 결국은 '상담자는 내담자의 말을 따라가야간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는 걸 느꼈거든요. 상담자들이 생각과 감정을 차분하게 담아내주며 따라가던 노력을 확장하여 행동과 감각까지도 관찰하고 따라가고 있었어요.
2. 다시, 애착이론
[다미주 이론은 타인과의 연결 및 상호 조절이 생물학적인 과제임을 일깨워준다. 이렇게 절실한 과제를 우리는 선천적으로 안전을 추구하면서 경험하는데, 오직 성공적인 사회적 관계성을 통해서만 이 안전에 도달할 수 있고 그 안에서 우리는 행동과 생리적 상태를 상호조절한다. 우리 삶에서 안전감이 지닌 중요성을 숙고해보면, 느낌의 생리적 측면과 이런 느낌을 일으키는 신호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우리의 관계성을 증진하고 내담자와 가족 그리고 친구들을 지지하는 것을 사실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연결되어 있고자 하는 생물학적 과제를 성취하기 위해 우리의 개인적 의제를 각 개인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방향으로 조절할 필요가 있다.]
[안전감이라는 맥락이 가장 먼저이다. 내담자에게 그가 어떤 잘못도 하지 않았음을 전달해야 한다. 내담자가 빨리 변하도록 우리가 요구하면 할수록 내담자는 뭔가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일단 이런 ‘비판적’ 피드백이 내담자 신경계에서 처리되면 신경계는 방어태세로 전환합니다. 그러면 내담자는 진정 상태를 이해해서 유지하기가 더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신경계의 작동방식, 그리고 우리가 아이를 기르고 학생을 가르치고 내담자를 바루는 방식 사이에 완벽한 모순이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안전하다고 느끼기를 바란다면 그들이 잘못했다거나 나빴다고 비난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들의 몸이 반응하는 방식, 그 반응이 어떻게 적응적인가를 그들에게 알려줘야 합니다. 그리고 이 적응적 특징이 얼마나 유연해질 수 있으며 또 다른 맥락에서는 얼마나 변화할 수 있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해야 합니다.]
여러 구절에서 다미주이론이 애착이론과 인간중심상담을 신경계 수준에서 설명해준다고 느껴요. 먼저 포유류에서 한번 더 진화된 신경계를 가진 인간에게는, '타인과의 연결과 상호조절'이 생물학적 과제라고 제안해요. 이 부분은 Bowlby와 Ainsworth가 밝혀온 애착이론을 설명합니다. 사회적 관계 안에서 안전을 경험하고(애착이론에서의 안전기지), 그러고 나면 언제든 나를 달래주고 보호해줄 애착대상이 있음을 알게 되면서 낯선 상황에 나가는 도전을 감행하죠(애착이론에서의 안전한 피난처). 먼저 관계 안에서 안전하다고 느끼고 또 관계 대상이 그곳에 여전히 있을 것이라고 느끼면, 우리는 두려움을 안고 낯선 상황으로 나아가 잠재력을 펼치게 돼요.
3. 다시, 인간중심상담
[다미주 이론에 따르면, 사회적 행동과 정서조절을 지지하는 신경회로들은 신경계가 환경을 안전하다고 여길 때만 사용되며, 그 회로들이 건강 성장 회복에 관여한다. 안전은 인간이 여러 영역에서 자신의 잠재적 가능성을 최적화하는데 필요하다.]
[다미주 이론에 따르면 안전감이 자율신경상태에 달려있으며 안전신호가 자율신경계를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생리적 상태를 진정시키면 안전하고 신뢰하는 관계 맺을 기회가 늘어나는데, 이 관계성 안에서 행동과 생리적 상태를 상호조절하는 기회가 확장된다. 이런 조절의 ‘순환’이 정신적 신체적 건강을 지지하는 건강한 관계성을 규정한다. 이 모델에서 신체적 느낌(자율신경상태)은 타인에 대한 우리의 반응에 기여하는 중개변수로 기능한다.]
[안전하지 않다는 것은 당신의 신체가 건강과 회복이 아니라 방어를 지원하는 상태에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방어 상태에 있다는 것은 회복을 방해하는 상태라는 말입니다. 심리적으로는 신뢰 상태가 과잉 경계 상태로 대체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사회참여체계는 타인이 함부로 자신을 간섭하는 환경에서는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당신의 사회참여체계도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Rogers는 무조건적 존중, 진솔성, 공감적 이해를 상담자의 태도이자 상담의 전부라고 제안했어요. 상담이론의 차이보다, 상담자 태도의 차이가 상담성과에 더 큰 영향을 미쳤던 걸 보면, 로저스가 말했던 3가지 태도가 '가설'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믿게 되죠. 상담자의 역할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이론은 그다음이죠.
로저스가 해석이나 직면 이전에 무조건적 존중과 진솔성과 공감적 이해를 강조했던 이유를, 21세기식 다미주 이론으로 말해보자면 인간이 진화적으로 생물학적으로 관계 안에서 안전감이 선행되어야지 유연해지고 모험을 감행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상담관계는 바로 그 안전감을 경험할 수 있도록 존중, 진솔성, 공감으로 대표되는 어떤 태도와 경험을 마련해주는 창구죠. 상담자와의 상호작용에서 안전감을 느끼는 신경 조절이 일어나면, 위협적인 생각, 감정, 기억, 이미지, 감각을 압도되지 않고 탐색해보고 머무를 수 있고, 그 내적인 경험들이 사실은 내 안에서 일어나는 무엇이라고, 결코 압도되거나 무너지게 하지 않는 것임을 생생하게 경험합니다.
그러므로 상담자는 내담자의 말뿐만 아니라 비언어적인 행동과 신체감각과 느낌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따라갈 필요가 있어요. 어떤 행동이나 감각을 충분히 반영해주고, 한편으로는 어떤 신경계가 활성화된 것인지 의문을 품고 가설을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4. 신경조절 훈련으로서의 놀이, 그리고 상담
[놀이란 사회적 상호작용을 이용해서 생리적 행동적 상태를 ‘상호조절’하는 효율적 신경훈련입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컴퓨터나 게임과 같은 물건으로 혼자 하는 놀이는 자기 스스로 조절하는 놀이입니다.]
[SNS는 글자 그대로 우리를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소셜네트워킹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상호작용. 우리는 지금 인간의 상호작용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 즉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경험을 하나씩 제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시적 상호대면전략에서 메시지를 남기고 얼굴을 나중에 보는 비동시적 상호대면전략으로 이행해가는 중입니다. 타인의 현존 안에서 생물행동적 상태를 조절하기 어려워하고 사물과의 조절을 아주 잘하는 개인들의 법칙을 기반으로 세상이 돌아가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치료자가 치료하도록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장애들은 대체로 타인과의 조절이 어려운 장애입니다. 타인과의 상태조절이 힘들거나 관계를 통한 상호조절이 안되면 사물과의 상태조절에 적응적으로 이끌릴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점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 신경계에 타고나는 호혜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함께해서 안전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극히 드뭅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이로운 생리적 상태로 진입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자신의 건강 성장 회복을 지원해주는 사회적 행동도 불가능해집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사회참여행동은 방해가 될 뿐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이제 사람들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한 자기조절과 대상을 통한 자기조절 두 가지 범주에서 하나만 선택하게 됩니다.]
다미주이론이 '놀이'에 초점을 맞출 때 반가웠어요. 일찍이 Winnicott은 <이만하면 충분한 엄마 good enough mother>, <놀이 playing>와 같은 개념을 중요하게 다루었는데요. 이만하면 충분한 엄마는 아이의 반응에 민감하게 조율하듯 반응하되 상황에 따라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의 좌절 또한 제공합니다. 다미주이론식으로 말해보자면, 아이에게 신경훈련으로서의 조율된 상호작용을 해줄 수 있는 엄마겠죠. 표정과 운율, 톤을 통해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내주면서, 까꿍놀이나 역할놀이와 같은 무서울 수 있는 자극이 안전하고 재밌는 상호작용이자 놀이로 경험됩니다.
인간에게는 이런 신경조절 상호작용이 필요합니다.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성인도, 내담자뿐만 아니라 상담자에게도요. 그런 점에서 상담도 어떤 의미에서 신경훈련으로서 놀이입니다. 상담 관계 안에서 회피하고 싶거나 끔찍하거나 낯 뜨거운 지점이 수면 위로 떠오르더라도, 안전감과 신뢰를 기반으로 탐색해보고, 상담자는 유머와 솔직함을 통해 균열과 복구의 '놀이'에 참여합니다.
인간의 진화적 생물학적 과제가 타인과의 연결이라면, 상담의 추구해야 할 방향도 관계 안에서의 신경조절입니다. 신경조절이란 거창하고 미시적인 무엇이 아니라,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상담관계 안에서 충분한 안전감을 경험할 수 있도록 라포를 형성하고, 그 과정에서 신체감각과 느낌도 신경계의 표현으로서 중요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상담은 사회적 상호작용이 전제된 만남이므로 사물을 통한 자기조절만을 경직되게 선택하지 않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한 자기조절을 안전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내담자의 몸이 말하는 신경계의 표현에도 눈과 귀를 열고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5. 트라우마
[“트라우마를 겪은 내담자들에게 최근에 그들이 경험한 심각한 생리적 행동적 상태가 사회에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도록 제한할지라도 자신의 신체반응들을 칭찬해야 한다고 말해주세요. 그런 반응들 덕분에 살아남은 것이므로 마땅히 칭찬해 줘야 한다고요. 그것이 그들의 목숨을 구했고, 너무 심하게 다치지 않도록 도왔습니다. 강간 같은 상황에서 격렬하게 반항했다면 그들은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사회적이고자 했는데도 신체가 뜻대로 따라주지 않은 것에 죄책감을 가지는 대신에 신체가 반응한 방식을 칭찬하라고 내담자들에게 말한 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한번 보세요”]
[어떤 경우에도 나쁜 반응은 없다. 오직 적응적인 반응만 있다. 신경계는 우리를 생존시키기 위해 올바른 일을 하려고 노력할 뿐이므로 신경계가 하는 일을 존중해야 한다. 신체반응을 존중할 때 우리는 평가하는 상태에서 벗어나 자신을 더 존중할 수 있고 이는 다시 기능적으로 치료과정에 도움을 줍니다.]
마지막으로 다미주이론은, 부동화반응-해리, 기절 등을 동반하는 트라우마를 아주 효과적으로 설명할 뿐만 아니라 친절하기까지 해서 아름답습니다. 내담자의 생리적 반응에 낙인을 씌우거나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반응이 트라우마 상황에서 생존할 수 있게 도와준 신경계의 지혜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반응은 어떤 경우에도 나쁘지 않습니다. 신경계가 하는 신체반응을 존중할 때 우리는 머리로 판단하고 평가하는데서 벗어날 수 있고 감정의 소용돌이가 나를 통과해 지나가도록 바라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