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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폴 Dec 04. 2022

변소와 움막

어릴 적 꼬맹이 때 산동네에 셋방살이를 하면서 여럿이서 쓰는 재래식 화장실을 쓰기도 했고, 중학교 때까지 학교 화장실이 재래식이었지만, 시골 큰 집에 가면 마당 바깥에 있던 재래식 화장실에 가는 것은 여간 큰 고역이 아니었다. 내가 중학생 무렵 시골 큰집에도 집 안에 양변기 화장실이 생겼지만 명절이나 되어야 갔던 터라 이미 어른들이나 사촌들이 화장실을 쓰고 있으면 참거나 급하면 여전히 남아 있던 바깥에 재래식 변소를 찾아야 했다. 똥 냄새도 냄새 거니 와 들어가는 순간부터 직사각형으로 파 놓은 구멍 안으로 보이는 똥 무더기와 그 위를 꿈틀대는 벌레들이 너무 싫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제는 그런 재래식 화장실을 보기 어렵다. 시골 동네 공중화장실도 깨끗한 좌변기로 바뀐지 오래고 이제는 비데까지 설치된 곳도 많아졌다. 그런데 이런 재래식 화장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는 채소농장 주변에 있는 움막 옆이다. 더욱이 어릴 적 시골 큰집에 있던 재래식 화장실보다 훨씬 더 불결하고 열악하다.


작대기 같은 걸로 얼기설기 틀을 짜고 비닐이나 플라스틱으로 대충 둘러서 막아만 놓고는 겨우 한 사람이 앉을 만한 공간에 땅을 파고 큰 통을 묻어 놓았거나 웅덩이를 파고 나무판자로 발을 디딜 수 있도록만 해놓은 구조다. 바람이 좀 세게 불면 날아갈 것도 같고 폭우가 쏟아지면 비가 다 들이칠 것 같다. 마음먹고 힘을 주어 치거나 잡아당기면 폭삭 무너질 것 같은 화장실이다. 이렇게 불결하고 위험한 곳에서 용변을 보려면 불안하고 무서울 것 같다. 당연히 냉난방이 되지 않는 곳이라 여름이면 땀 흘리며 모기에 뜯기거나 겨울이면 한파에 추위에 덜덜 떨면서 용변을 해결해야 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싫어서 몸서리가 처진다.


화장실이 옆에 있는 움막은 바로 외국인 노동자들의 숙소다. 비닐하우스 안에 컨테이너를 들여다 놓고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부엌은 컨테이너 밖에 골동품 같은 깨진 탁자나 찬장 같은 것을 놓고 그 위에 기름때로 찌든 오래된 가스레인지가 하나 올려져 있을 뿐이다. 창도 없고 비닐하우스 전체에 햇빛 가림용으로 새까만 천으로 덮어 놓아 대낮에도 침침하고 음습하다. 제대로 된 창도 없고 환기도 되지 않는 데다 냉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보통 이런 움막 같은 컨테이너에서 2사람이 함께 지낸다고 한다. 수원역에서 가장 시설이 좋지 않은 고시원보다 더 열악하다. 화재나 범죄에도 무방비로 노출되어 이들의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더욱 믿지 못할 일은 이런 움막에서 지내는데 한 달에 한 사람에 25만 원씩 월세를 낸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면 50만 원이다.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다. 어떻게 이런 시설에서 사람을 지내게 하면서 50만 원을 월세로 받을 수 있을까. 몇 년 전 캄보디아 출신 외국인 노동자가 매서운 겨울날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는 이런 시설에서 지내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일이 있었다.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마련한다고 하고 언론도 난리 법석을 떨었지만 크게 달라지지는 않은 것 같다. 물론 제대로 된 주택을 기숙사로 제공하는 양심적인 농장주들도 있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바뀌려면 농장주의 양심에 맡겨서는 안 될 일이다.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제대로 작동하도록 감시를 해야 하는데 이들은 외국인이고 노동자이다 보니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듯하다. 농장주의 폭언과 고강도의 노동 요구에 몸과 마음이 병들어가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많다고 한다. 돈 때문에 맺어진 현대판 노비가 아니고 무엇인가.


먹고 자고 싸는 것은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자 생리현상이다. 더 안전하고 더 쾌적한 환경에서 이런 기본 생리를 해결할 수 있기를 모두가 바랄 것이다.


한류와 선진일류국가를 외치는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럽고 말도 안 되는 일인가.


그것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개선할 수 있는 데에도 돈에 눈이 멀어 방치하고 있으니 통탄할 노릇이다.


당신이라면, 당신 가족이라면 저런 화장실을 쓰면서 저런 움막 같은 곳에서 살 수 있겠는가. 그것도 장시간의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며 25만 원씩이나 월세를 내면서 말이다.


참으로 부끄럽고, 부끄럽고,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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