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하다면 하루라도 더 빨리
요새 힘든 일이 생겼습니다.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이야기라 더욱 마음이 짠 하더라고요. 해준 것은 별로 없습니다. 퇴근할 때 데리러가고, 술 한잔 하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뿐. 혼자 버텨내고, 이겨내려 노력하는 모습이 안쓰러웠습니다. 가능하다면 하루라도 더 빨리 결혼해서, 힘이 되어주고 싶어졌습니다.
요 며칠, 좋지 않은 일들이 벌어졌어. 나는 이미 겪어봤던 일이어서 더욱 더 그 기분을 이해할 수 있었지. 점심 때면 입맛이 없어 밥을 거르는 오빠가 걱정이 되더라고. 나만 만나면 그렇게 배 터지게 먹는 사람인데. 얼마나 마음이 불편하면 그랬을까 싶고.
이럴 때 내가 해줄 수 있는게 별로 없어서 미안하더라고. 내가 직접 겪은 것보다, 오빠가 그 일을 겪었을 생각을 하니 그게 더 화가나고 속상하더라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 과정을 내가 옆에서 다 봐왔으니까.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퇴근할 때 맞춰가서 만나고, 저녁 먹으면서 오늘 있었던 일 들어주고, 맞장구쳐주고, 앞으로 어떻게하면 좋을지 맞장구 쳐주는 것 정도가 전부였어. 매일 밤 오빠를 보내고 집에오는 길마다 내가 같은 집에 살면서, 조금 더 같이 있어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지.
겸사겸사 우연히 행복주택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청약 신청도 했어. 올 9월 입주여서 만약에 최종 선발이 되면 그 전에 결혼을 해야하는 상황이 되기도 했지. 하늘은 좋은 일과 나쁜 일을 같이 준다고 하니까, 지금 조금 힘들었던 대신 우리가 같이 살 수 있는 집을 마련하는데 도움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어.
어차피 이왕 결혼하기로 마음먹은거, 가능하다면 하루라도 더 빨리 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내가 앞으로 꿈꾸는 인생의 방향에 대해서 오빠도 똑같이 고민해주고, 같은 마음으로 생각해준다는 걸 느꼈고. 그래서 더 이상 결혼을 미루거나 피하고 싶지 않아졌고.
우리가 주인공인 결혼식을 하자, 부모님에게 맞추려 애쓰다가 우리 행복을 놓치지 말자, 명절에도 여행을 다니자, 아이 보다도 우리의 인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자.
등등 나의 이런 25세기적인 말에도 동의해주고, 함께 인생을 그려보려고 마음먹고 노력해줘서 고마워.
그래서 하는 말이야 오빠.
결혼하자 진짜, 많이 사랑해.
행복하게 잘 살아보자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