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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호 Feb 12. 2016

왜 글을 써야 하는가?

[책] 글쓰기의 최전선 / 은유 지음 / 메멘토 

잘 하고 싶은 걸 하나만 고른다면 부끄럽게도 글쓰기다. 책장에는 그래서 글쓰기 책이  열 권이 넘고, 서점에 새로 나온 글쓰기 책이 있으면 유심히 본다. 글쓰기 책을 읽는다고 글이 나아진다는 보장은 전혀 없는데, 쓰지 않으면 배팅 연습은 하지 않고 야구 매뉴얼만 읽는 격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기사에서 보고, 지난 달 서울 출장 길에 산 책인데 읽고 나니 여운이 크다. 삶이 곧 글이고, 글이 곧 삶이 될 수 있겠다 싶다. 왜 써야 하는지, 쓰는 의미는 무엇인지, 의미 있는 삶을 사는데 글쓰기가 왜 필요한지, 그래서 어떻게 쓰면 좋을지, 저자의 깊은 성찰이 담겨있다. 글쓰기 방법을 알려 주는 책이라기 보다 '글로 정을 나누고 앎을 키우고 힘을 모으는 일의 재미를 온 몸으로 체득한' 저자의 내밀하고 치열한 경험을 담은 에세이에 가깝다. 

저자 은유(김지영)는 작가이면서 연구공동체 수유너머 R에서 글쓰기를 가르친다.글쓰기의 최전선이라니, 제목이 사뭇 전투적이다. 무슨 뜻일까? 저자의 말은 이렇다. 

꼭 대형마트 계산대이거나 먼지 휘날리는 작업장이거나 밀양 송전탑 반대 현장이 아니더라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존재 물음 과정에서 이른 곳이라면, 현실의 베일이 벗겨지는 곳이라면, 삶의 의미를 정의 내리게 되는 곳이라면, 거기가 바로 삶의 최전선이다. p78 

도입부 아래에  '2015년 봄 세월호 1주기에, 은유' 라 썼다. 저자는 재벌 기업의 사외보  '또 하나의 가족'에 글을 쓰는 일을 하다가, 그 기업이 젊은 여성 노동자 가족 수십명의 죽음을 외면하는 걸 보면서 자신이 쓰는 원고가 (악덕) 기업의 대외 이미지 개선을 위한 수단으로 동원되고 있지 않을까 싶어 그 일을 그만 두었다고도 했다. 저자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대충 사는 사람은 아닌 듯 하다. 

글쓰기 수업에 참여한 가장 많은 수강 동기는 "나를 알고 싶어서"였다. (중략) 글쓰기 수업은 생애 최고의 배움의 장소였다. 학인들이 내 놓는 비밀스러운 생의 이야기들 덕분에 선입견을 내려놓고 타인과 관계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인간에 대한 나의 무지를 깨우치고 인간에 대한 이해를 깨칠 수 있었다. 인간은 삶을 의미있게 만들려는 본능을 가진 존재임을 믿게 되었다. - p33

저자의 글쓰기 과정은 목적에 갇혀 있지 않은 글쓰기, 자기 삶을 자기 시대 안에서 읽어내고 사유하고 시도하는 '삶의 방편이자 기예'로서 글쓰기라는 포괄적인 의미를 표방했다고 했다. 사람마다 글을 쓰는 이유가 다르겠지만 무언가 헛헛하기 때문일 거다. 내 경우도 다르지 않다. 50대 중반이 되어도 '나는 어디에 있는지',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래서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로 여전히 씨름하고 있다. 글쓰기가 모든 걸 해결해 주진 않겠지만 최소한 자신을 좀 더 알 수 있게 해 주지 않을까 싶다.

글쓰기는 삶의 지속적 흐름에서 절단면을 만들어 그 생의 장면을 글감으로 채택하는 일이다. - p50 

글감이 유별나고 대단한 사건일 필요는 없다. 자질구레하고 시시한 일상의 모든 일이 글감이 된다. 유심히 들여다보고 관찰하고 사유해야 할 것이다. 

키워드 글쓰기의 핵심은 '삶에 기반한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청춘이란 어떻게 살아야 한다가 아니라 나의 청춘은 어떠했다는, 있는 그대로의 해석 작업이다. - p51

꼰대란 소리 듣지 않으려면 글 쓸 때 가르치거나 설교하려 들면 안 된다. 

이래 저래 몇 편 쓰고 나면 너도 나도 글감 부족을 호소한다. 이처럼 열 편 남짓 글을 쓰고 나서 예외 없이 글감의 고갈에 직면하는 이유는 삶 혹은 나에 대한 인식의 한계에서 비롯한다. 어쩌면 글감의 빈곤은 존재의 빈곤이고, 존재의 빈곤은 존재의 외면일지 모른다. - p52

흡사 내 이야기처럼 들린다. 글감이 없는 이유는 자명하다. 생각 없이 살거나, 살아도 생각이 없거나, 치열하게 성찰하지 않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싶은 것과 글을 쓰는 것은 쥐며느리와 며느리의 차이다. 완전히 다른 차원에 세계다. 하나는 기분이 삼삼해지는 일이고 하나는 몸이 축나는 일이다. - p55 

기가 막힌 유머다. 그러면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일단 내 앞에 있는 조잡한 도구로 시작하라. 망치로 삽을 만들면 삽으로 사과나무를 심고 사과 열매를 팔면 책을 살 수 있다. 시작을 해야 능력의 확장이 일어난다. - p57

내 생각도 같다. 무엇을 하든 어설프게라도 일단 시작해야 는다. 글쓰기 책만 읽지 말고 뭐든지 써야 한다. 배우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일단 하는 것이다. 그래야 생각이 돋아나고 촉각이 예민해지면서 표현은 섬세해진다. 

좋은 글을 쓰려면 좋은 책을 읽어야 한다. 그러면 무엇이 좋은 책인가? 대부분 사람들은 한정된 독서를 한다. 만나는 사람을 계속 만나듯 이물감 없이 술술 넘어가는 읽던 책들을 주로 읽는다. 그래서는 안 된다. 의도적으로라도 독자를 흔들어 놓는 불편한 책을 읽으라 한다. 카프카의 말이다. 

"우리는 불행처럼 우리를 자극하는 책들, 다시 말해 우리에게 아주 깊이 상처를 남기는 책이 필요하다. 이런 책들은 우리가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처럼 느껴지고,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어 숲으로 추방되는 것처럼 느껴지고, 심지어 자살처럼 느껴질 것이다. 책은 우리 내면에 얼어 있는 바다를 내려치는 도끼 같은 것이어야만 한다."- 카프카 p83

저자가 인용한 시인 이성복의 말이 인상적이다. 잘 쓰려 하지 말고 힘 빼고 겸손하게 그냥 쓰란 얘기다. 

"나보다 더 잘 쓸 수도 없고 더 못 쓸 수도 없다." - 이성복 p171


실용적 목적의 글쓰기가 아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성찰하는 글쓰기에 목마른 사람들이 읽어볼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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