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왜 분노해야 하는가 / 장하성 지음 / 헤이 북스
미국 대통령 선거전이 관심을 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알려져 있지 않던 버니 샌더스 민주당 후보의 열풍이 거세다. 이번 미국 대선전의 가장 뜨거운 주제가 불평등이라는데, 월스트리트 부자들의 탐욕을 일관되게 비판해온 자칭 사회주의자 샌더스의 진정성이 위력을 발휘하는 모양이다. 불평등에 관한한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흙수저와 금수저, 헬조선이 일상용어가 되었고 젊은이들은 스스로를 N포세대라 자조한다. 살기가 그 정도로 팍팍하다는 반증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다독거리기도, 우리가 젊을 때는 더 힘들었다며 젊은이들에게 노력하라 다그칠 상황이 아니다.
저자 장하성 교수가 전작 '한국 자본주의'의 후속작인 본서에서 던지는 질문은 세 가지다. 첫째, 한국은 왜 이처럼 불평등해졌는가? 둘째, 불평등을 극복할 방안은 무엇인가? 셋째, 불평등한 한국을 과연 누가 바꿀 것인가?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은 고도성장과 분배의 형평성을 동시에 달성해왔는데, 산업화와 분배의 형평성까지 유지한 나라는 한국과 대만뿐일 정도로 우리나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왔던 셈이다. 불행하게도 97년 외환위기 이후 소득 불평등이 악화되기 시작했고 급기야 소득분배의 균형이 상실되면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이 심한 나라 중 하나가 되었고, 소득뿐만 아니라 일자리 간, 노동자 간, 기업 간, 세대 간의 불평등 등 거의 모든 지표에서도 최악의 위치로 떨어졌다.
한국 불평등의 문제는 질투심으로 인한 '배 아픔'이 아니라, 저임금으로 인한 '배고픔'의 문제다. - p312.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우리나라의 불평등이 심한 것은 '재산의 불평등'보다는 '소득의 격차'에서 때문인데, 임금격차가 심해지는 이유는 고용 불평등과 기업 간 불균형 때문이다. 정부 통계로는 노동자 세 명 중 한 명이, 노동계 통계로는 노동자 두 명 중 한 명이 비정규직이다. 거기에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 기업과 하청기업 간의 불균형으로 인해 발생한 노동자들의 소득 격차가 우리나라 불평등의 근본 원인이라는 얘기다. 단적인 예가 일자리의 4% 밖에 만들지 못하는 재벌 100대 기업이 전체 이익의 60%를 차지한다.
그러면 어떻게 이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저자의 주장은 이렇다.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고용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하고, 두 번째 대기업과 협력 기업 간의 분배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복지를 통한 재분배를 생각할 수 있으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소득이라는 원천적 불평등을 먼저 바로잡아야 한다. 결국은 정치의 문제인데, 저자는 지금 기성세대와 정치권들은 바꿀 의지도, 역량도 없으므로 2-30대로 대변되는 청년들이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젊은이들이 현실에 순응하거나 안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분노하고, 세력을 모아 변혁을 주도해야 한다는 얘기다.
다양한 도표와 통계자료를 근거로 구체적인 원인과 해법을 제시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선진국에 비하면 비교적 자본주의 초기 단계인 우리나라의 경우, 돈이 돈을 버는 재산의 불평등 단계가 악화되고 있긴 하나 그 나라들에 비하면 아직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내용은 희망을 품게 한다. 고용구조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평등한 관계 개선을 통해 확인해 임금 문제를 해결하면 불평등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는 제안도 희망적이다. 아쉽게도 결론으로 가면서 책이 힘을 잃고 말았는데, 누가 변화를 주도할 것인가를 두고 청년에게 분노하라 한 부분은 아쉽다. 결국 정치라야 하지 않겠는가? 당장 해법이 보이지 않고, 그럴 인물도 없으니 저자 또한 청년들에게 그 역할을 맡기고 만 인상이다. 외곽에서 정치권을 돕겠다고 한 저자가 어떻게 실제 변화를 만들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