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주어도, 딸로 받아도
읽다가 정말이지 너무 공감되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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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의 첫 번째 유형은 폭력적인 사람이야. 당연히 폭력을 쓰는 사람을 너는 만나지 않겠지. 그러나 숨어 있는 폭력을 알아보는 것은 더구나 여자인 너에게는 아주 중요해. 첫째로 욕설을 하는 사람. 이 욕설은 다른 이(누구나 생각해도 나쁜 사람, 정치적으로 반대되는 인물, 실제로 나쁜 사람)를 지칭하는 데 교묘히 사용되기도 해. 좋은 사람은 아무리 나쁜 사람을 일컬을 때도 절대 흉한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아. 거꾸로 이런 사람은 자신의 공격성을 정의로 가장해 사용하기도 하지. 또 하나, 자신 곁에 있는 친한 후배나 동료에게 수시로 가벼운 폭력(뒤통수 치기, 친근함을 가장해 욕을 하기 등등)을 쓰는 사람이야. 이런 사람들은 아주 위험하단다.
엄마가 늘 이야기하지만, 어떤 사람이 최악의 경우 최악의 사람에게 퍼부을 수 있는 모든 행동은 언제든 너에게 퍼부어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라. 더구나 이런 좋은 연말 파티에서라면 아무리 가벼운 폭력적 행동도 절대로 네 마음으로 허용해서는 안 돼.
두 번째로 네가 피해야 할 사람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란다. 남자는 물론이고 여기에는 여자도 많이 포함되곤 하는데 그걸 알아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지. 우선 엄마 경험으로 가장 크게 표가 나는 것이 선물이야. 음,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이건 자신이 최근에 낸 책이나 자신이 최근 기획한 공연의 티켓, 자신의 회사에서 최근 개발한 상품의 샘플을 나누어주는 것과는 아주 다른 이야기야. 그러니까 만나는 날, 혹은 그다음의 만남에서 그냥 막 선물을 주는 사람을 조심하는 게 좋다는 거야.
설사 남자 친구가 데이트 두 번째 날 꽃다발을 가지고 온대도 마찬가지야. 그의 마음 깊은 곳에는 자기 자신만으로 모자라다는 깊은 열등감 같은 것이 숨어 있을 수 있어.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물질로 상쇄하고 싶어 하는 것이랄까. 계속해서 모든 돈을 지불하려고 하는 것도 비슷한 심리이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신의 상처 때문에 쓸데없는 오해와 분노를 가지고 그것을 상대방, 바로 너에게 투사할 확률이 높아.
그리고 세 번째가 불행한 사람이야. 이 말을 하기가 참 조심스럽구나. 그래 그러나 말하기로 하자. 불행한 사람을 친구로 사귀지 마라. 원래 알던 네 친구가 불행에 빠졌을 때 만일 네가 그를 멀리하고 돕지 않는다면 너는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닐 수 있지. 그러나 원래 불행하던 사람이 네게 올 때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란다. 불행한 사람이란 누굴까? 엄마가 극단적인 예를 들어볼게.
엄마의 선배 중 하나는 아주 부잣집에서 자라 이른바 명문대를 나왔고 돈이 많은 남편과 (실상이 어떤지 아주 자세히는 모르나) 잘 살고 있단다. 그녀는 아름답고 날씬하며 그리고 우아해. 그런데 그녀가 지난봄 인도네시아 발리로 여행을 가서 오랜만에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어. “퍼스트(클래스)가 만원이라 비즈니스(클래스) 좌석으로 왔는데 얼마나 불편하던지. 게다가 스튜어디스는 멍청해서 안심스테이크를 애 아빠는 웰던으로 시키고 나는 미디엄 레어로 시켰는데 2개가 똑같이 구워져 나왔지 뭐니? 아주 첫날부터 기분 잡쳤어.”
알겠니? 이런 사람이 불행한 사람이야. 행복한 사람은…… 행복하니까 이름을 밝혀도 좋겠구나. 《나의 서양미술 순례》의 저자이기도 한 서경식 교수(이 책은 젊은 네게 정말 강력 추천한다). 그분은 재일 동포 2세. 삼 형제 중 막내인 그는 두 형이 일본에서 한국의 서울대에 유학 왔다가 모두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른 것으로 유명하다. 나중에 모두 고문에 의한 조작으로 밝혀졌지만, 큰형인 서승 씨(현재 일본 리쓰메이칸 대학 교수)는 고문을 못 이겨 자살하기 위해 고문실에 피워놓은 난로를 뒤집어쓰고 얼굴과 전신이 화상으로 일그러졌단다. 그 고통으로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한번은 방송에서 엄마가 이분을 인터뷰하는데, 이분이 그 대목을 질문하는 엄마에게 대답하셨지.
“공지영 작가님. 우리를 어쩌다 고국에 유학 와서 신세를 망친 재일 동포라고만 생각하시면 안 돼요. 우리는 우리 가족의 무죄를 입증하는 과정에서 너무도 소중한 동지와 친구 들을 얻었어요. 그들은 우리를 위해 함께 싸워준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자신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고 심지어 잃기까지 하면서도요. 이건 누구의 인생에서나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이건 정말 귀한 일이었죠. 그러니 이런 우리를 그냥 불행하다고 하시면 안 돼요.”
엄마는 순간 오그라 붙었다. 너무 부끄러워서 말이야.
-알라딘 eBook <딸에게 주는 레시피> (공지영 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