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샤인콜렉티브>를 시작해버렸다
제가 월급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르셔서 그래요
처음 취업을 하고 나서 한 번도 월급을 받지 않는 삶을 상상해 본 적 없다. 하는 일도 많고 저지르는 일도 많았지만, 모두 든든한 직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뭔가를 영원히 하는 것에 대한 공포(뭐든 금방 질리는 사람)가 있는 나는 끝이 정해져있는 계약직이 더 좋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자유롭고 싶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또 아주 운이 좋게도 다니던 직장들에서 '그냥 해야 해서' 일을 하지도 않았다. 스스로 일을 만들고, 그걸 내 프로젝트로 이끌어 나가고, 마무리했을 때 보람도 느끼는 일들을 해나갔고, 그래서 더더욱, 월급쟁이가 아닌 삶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가끔 사업을 해보라거나 내 일을 더 크게 해보라는 말을 들었지만, 그런 대화는 늘 "제가 월급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르셔서 그래요." 라는 말로 끝났다. 이건 2018년이 시작될 때까지 계속됐다.
포스터를 걸기 위해
코워킹스페이스를 만들어야겠다?
하루는 카페로 출근해서(찾아보니 1월 29일) 일을 하고 있었다. 멤버들이 한 달에 한 번, 자기가 일하고 싶은 곳에서 일하는 날이었고, 나는 오전에 조용한 카페를 찾아 큰 책상을 다 차지하고 앉아 일을 하고 있었다. 조용하고, 깨끗하고, 빛이 잘 드는 곳에서 일을 하면 일의 능률이 오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당시에 나는 미국의 Women's March 를 기념해 제작된 포스터를 캐나다에 사는 동생에게 부탁해서 배송받는 중이었는데, 그 카페의 흰색 벽을 가만히 보다가 문득, '저 벽에 그 포스터 걸어두고, 여자들이 웅성웅성 모여서 같이 일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엔 그냥 내게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외롭지 않고 얼마나 좋겠어. 고립되어 혼자 일하는 친구들도 생각났고, 따로따로 연결 시켜주지 말고, 그냥 한 곳에서 일하게 하면 되지 않겠어? 그런 생각도. 이래서 사람은 생각을 잘 해야 한다. 생각은 종종 진짜가 되니까.
내일을 생각 안하고 일을 잘 벌이는 나이지만 나도 나름대로의 프로세스가 있다. 머릿 속에 있는 두 개의 방에 생각을 정리하는 것. 그 두 개의 방은 실현될 것을 생각하는 방과 바로 실현되지 않을 것 같으므로 넣어두는 방이다. 물론 생각나자마자 추진하는 경우도 있고, 이 경우에는 이런 프로세스가 필요없다. 하지만 당장 실현되지 않을 것 같은 일은 하루나 이틀 정도 생각하고 알맞은 방에 넣는다.
이 생각도 그런 생각이었다. 당장 코워킹스페이스를 할 수 없으니 시급하게 해야할 것에 마음을 쓰면서 넣어두고 잊어버리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정리되었던 다른 생각들과 달리, 일주일이 지나도 그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 뭐지, 이 당황스러운 상황은.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친구들을 만나 얘길 꺼냈다. 나 이러이러한 게 하고 싶어. 정리를 해주길 원하고 꺼낸 얘기였는데, 어쩐지 결론은 그렇게 나지 않았다.
‘얼른 시작하고, 필요하다면 내가 돈도 빌려줄게.'
...음?
바다 건너 해외에 나가있는 친구에게도 얘기를 했다. 돌아온 답은 비슷했고, 큰 일 하는 큰 사람이 되라고 했다.
...음?
등 떠밀린 것처럼 썼지만, 사실 등 떠밀리고 싶었다는 걸 친구들이 제일 먼저 알고 밀어준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다. 모이면 끝없이 얘기했던 우리의 문제들. 왜 선배를 찾기 힘들까, 왜 우리에겐 기회가 안오는 걸까, 왜 우리는 이렇게까지 다음 스텝을 생각해야 할까, 컨퍼런스 연사들은 왜 다 남자일까, 왜 잘하면 나댄다고 하는 거야, 원하는 걸 말했는데 왜 불편해 하지, 같은 질문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더 적극적으로 하고 싶은 시기였고, 그래서 우연히 하게 된 생각과 친구들의 부추김 덕에 좀 더 적극적이 되어보기로 마음 먹었다.
홍진아매니저는
커서 뭐가 되나요?
사실 그즈음 하던 또 하나의 고민이 있었다. 삼십대 중반을 지나가며 앞으로의 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홍진아 매니저는 커서 뭐가 될까. 시니어 매니저가 되고, 또 디렉터가 될 수도 있겠지. 그런데 그 다음엔? 그 다음이 그려지지 않았다. 뭐든 되겠지, 라는 말이 별로 매력적이지도 않았고, 또 뭐든 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다음이 없는데, 뭐든 될까.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내가 나를 먹여 살리는 길이든, 조직을 잘 운영하는 리더가 되는 길이든, 지금 하는 경험과는 좀 다른 경험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하는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매니저의 일이나 캠페이너의 일을 일 년 더 하면 내게 뭐가 좋을까, 생각을 해보니, 안정적인 환경에서 즐겁게 일 한 1년의 경험이 더 쌓일 거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게 의미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리고 또 이렇게 일하다 보면 뾰족한 수가 생길 수도 있고. 하지만 그걸 기다리며 아는 일을 더 잘 하는 것보다 모르는 일을 다시 배우며 해보는 것이 나에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해야한다 보다는 하고싶다에 가까운 답. 물론, 한 번에 난 결론은 아니고, 하다보니 깨달아지고 정리된 생각이다.
어쩌면 이건 나만의 질문은 아닐 것이다. 내 또래의 여성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면서 일하고 있지 않을까. "왜 하나의 직장이 나를 대표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N잡러가 되었듯이, "30대 중반 매니저들은 커서 뭐가 되나요?"라는 질문에 나만의 방식으로 답을 찾아보려고 한다. 그러면 이건 나만의 답이 아니라 우리의 가능한 선택지 중에 하나가 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선샤인콜렉티브>
3월 말에 회사를 그만두고 어쩌고 저쩌고의 시간들을 지나, 9월 1일에 인스타 사무실을 열고 비빌 언덕이 되어 주고 있는 친구들에게 비정기 뉴스레터 'SUNSHINE BULLETIN'을 보내는 것으로 여성들을 위한 커뮤니티랩 <선샤인콜렉티브>를 시작했다. 누가 허락해야만 사업이 시작되는 건 아니잖아?
<선샤인콜렉티브>는 여성들이 단단하게 연결되고, 그 연결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커뮤니티를 만드는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될 것이다. 교육서비스(외롭지 않은 기획자학교)와 소셜클럽(빌라 선샤인)으로 그 일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코워킹스페이스를 만드는 일은 조금 미뤄졌고, 아마 얼마간은 사무실이나 아지트가 없다. 그래서 '아무데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고, 서울 전역을 무대로, 일을 벌려보는 것으로. 이 얘기는 따로 정리를 해야겠다.
<선샤인콜렉티브>는 미래를 조금 먼저 사는 여성들과 함께 한다. 늘 성장하는, 자기 욕망을 알고 그것을 이루는데 충실한, 혼자가 아니라 서로를 끌어주는 여성들이 모인 커뮤니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연결된 여성들이 서로에게 "You Deserve Sunshine"이라고 말하는 커뮤니티가 되기도. 이제 우리는 당연히 내 것인 것들을 당연히 내 것이라고, 내가 그걸 누릴 자격이 있다고 말하고, 또 그걸 가져와야 한다. 함께.
돈도 없고, 인맥도 충분치 않고, 부동산도 없는 밀레니얼의 커뮤니티 서비스, 공간 서비스는 어때야 할까 고민했다(feat.없는 게 너무 많아 또 채용 공고를 뒤지던 밤들). 하지만 내겐 콘텐츠가 있고 감이 있고 또 엄청난 것을 가진 친구들이 있으니까, 내 나름대로의 모양을 갖춰 내가 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그냥 결론 내려버렸다. ‘공유 경제’에 대해 낯설지 않고, 이기적이라고 욕을 먹으면서도 나를 챙기는 걸 게을리하지 않는 세대. 어느 정도의 생산성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함께 ‘사고, 쓰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대가 할 수 있는 상상력을 가지고 우리에게 필요한 걸 만들어 보려고 한다.
좋아하는 그 월급,
제가 제게 줘볼게요
태어나서 이렇게 돈 생각을 많이 한 적이 없다. 돈을 벌어야 사업이 되고 사업이 되어야 돈이 벌리는데 대체 그건 어떻게 하는거지. 혼자 할 수 없어 동료를 모아야 하는데 그들의 생계는 어떻게 하면 되지. 어느 날은 눈을 뜨면서 돈 생각을 하기 시작해서 자기 전까지 했다. 어떤 결론도 나지 않고, 그냥 심장 근처에 ‘돈’이라는 보이지 않는 문신이 새겨지고 끝났다. 지금도 그곳이 묵직하다. 친구에게 말했더니 이제 사업이 시작된 거라고 했다.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의 자서전인 <슈독>을 읽으면서도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나이키가 만들어지고 어쩌고 하는 부분이 아니었다. 블루리본의 대표였던 필 나이트가 다양한 서브잡을 접고 스스로에게 블루리본 이름으로 월급을 주기 시작하던 그 순간. 줄을 칠 문장이 마땅히 없어서 그 페이지 전체를 접었다.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더 많은 영역으로 들어서며 자꾸 주저하게 된다. 하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이유가 늘 주저함을 이기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어본다. 기획자학교에서, 왜안돼 페스티벌에서, 래프라우더에서, 와일드블랭크프로젝트를 통해서, 그리고 내 일상의 많은 부분에서 모이고, 성장하고, 끌어주는 것이 필요한 여성들의 얼굴을 마주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조심스러웠던 발걸음의 보폭을 좀 더 넓혀보기 위해 기록해본다.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고, 시작된 것도 없고, 사무실도 인스타그램에 있는 사람으로써, 나만 아는 얼마간의 여정을 기록하는 것이 내 일을 보이게, 시작하게, 혼자 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 될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또 오늘 분의 일을 해볼까.
<빌드 선샤인>
대담한 여성들을 위한 커뮤니티랩 '선샤인콜렉티브'가 지어지는 과정을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