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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태영 Jan 11. 2024

언젠가 다시

 아난다 사원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한 아이가 다가왔다. 다짜고짜 선물이라며 작은 비누 같은 걸 내밀던 소녀. 괜찮다고 몇 번을 말해도 선물이라며 손에 건네주고는 내 얼굴에 무언가를 칠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미얀마 전통 화장품(자외선 차단용)인 타나카였다. 소녀가 선물로 손에 쥐여준 것 역시 타나카였다. 소녀는 타나카 가루를 물에 묻혀 얼굴 이곳저곳에 바른 후, 손등에도 살짝 발라 냄새를 맡아보라고 권했다. 손을 코 앞으로 끌어와 손등에 묻은 타나카 향을 맡는 사이, 소녀는 재빨리 향나무 부채를 꺼내 들었다. 타나카로 호의를 베푼 후 부채를 팔려던 의도로 보였다. 누구에게 배웠는지 모르겠지만 어린 소녀의 영업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측은한 마음도 드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지갑은 버스에 두고 내린 상태였고, 정해진 시간 안에 아난다 사원을 촬영해야 했다. 소녀에게 미안하다고 몇 번을 말하고 아난다 사원 입구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소녀는 기분 상한 듯 얼굴을 찡그린 체 뭐라고 얘기를 했지만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아난다 사원 촬영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는데 소녀의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버스를 타기 전에 같이 온 기자님께 돈을 빌려 아까 그 소녀를 찾아 나섰다. 비슷한 또래의 다른 아이들과 같이 있던 소녀. 그 소녀만 따로 불러서 아까 꺼내 든 향나무 부채를 하나 샀다. 부채의 가격은 5달러였다. 미얀마 화폐로 5000짯 밖에 없다고 했더니 괜찮다며 냉큼 받아갔다. 기분이 좋아졌는지 사진 한 장 찍어도 되냐는 물음에도 흔쾌히 허락을 해주었다. 사진을 찍고 소녀의 이름을 물어보려는데 다른 아이들이 달려와 무차별 영업을 시작했다. 이미 부채를 구매해서 손에 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부채를 또 내미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손수건과 보석함, 각종 기념품들을 손에 한가득 들고 있는 아이도 있었다. 마구잡이식으로 달려드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소녀의 영업 실력이 남달랐다는 기억만 더 또렷해졌다. 마침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할 시간이 되어, 도망치듯 버스에 올랐다. 결국 소녀의 이름은 묻지도 못한 채.

 일정이 정해진 해외 취재를 가면 숙소 외에 같은 장소를 다시 가는 경우는 없다. 취재 시간도 촉박하거니와, 계속해서 다음 장소로 이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 날, 바간에서 만달레이로 이동하는 일정 때문에 그 소녀는 다시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미얀마는 언젠가 한 번쯤은 다시 가고 싶은 나라가 되었다. 사람들이 친절했던 이유도 있었지만, 바간에 가게 된다면 아난다 사원에서 봤던 소녀를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말이죠. 그때 내가 찍었던 사진을 건네주며 소녀의 이름을 묻는 상상을 해본다. 세계적인 사진가 '스티브 맥커리'가 아프가니스탄 소녀와 재회했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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