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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태영 Jan 18. 2024

Make a Photography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부터 ‘어떻게 해야 남들과 다른 사진을 보여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해왔다. 포토샵에서 부분 대비를 올려 과하게 보정을 했던 적도 있었고, 낯선 장면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마다가스카르와 아프리카 종단 여행을 다녀왔다. 하지만 마다가스카르 사진들로 첫 전시를 했을 때 들었던 충격적인 말은 ‘내가 가도 이 정도는 찍겠다’였다. 물론 전시를 보신 모든 분들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건 아니었지만, 백 번의 좋은 말보다 한 번의 비난과 질책이 더 오래도록 마음에 남기 마련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기분은 나빴지만 사진에 대한 고민은 더 깊어졌다. 카메라 기술이 발전하면서 셔터만 눌러도 흔들리지 않고 멋진 장면을 촬영하는 게 쉬워진 시대였다. 그 후로도 매년 개인전과 그룹전시를 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이런 전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고 자책하던 중에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리는 외국 작가의 사진전을 보러 가게 되었다. 작가의 이름은 ‘에릭 요한슨’.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한 그의 작품은 정말 독특했다.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합성 사진이었는데, 작품들은 한 장면, 한 장면이 모두 예술이었다.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장면들을 통해 ‘아, 이게 사진으로 표현하는 예술이구나.’하는 충격과 영감을 동시에 받은 전시였다. 전시장 한쪽에서는 에릭 요한슨의 작업 과정을 기록한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하나의 장면을 만들어 내기 위해 먼저 스케치를 하고, 장면에 필요한 미니어처 세트나 소품을 만들고, 인물이 필요한 장면에서는 모델을 섭외해서 촬영을 했다. 조명을 준비하고, 콘티에 부합하는 장소를 미리 답사해 놓는 것은 기본이었다. 여기까지는 기존 필름 카메라만 있던 시절의 예술 사진 작업 과정과 거의 동일했다. 마지막으로 여러 장의 사진을 포토샵으로 합쳐서 하나로 만들어 내는데 그 디테일을 살려내는 보정 실력이 놀라웠다. 좋은 카메라로 촬영한 덕분도 있었지만 빛과 색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났다. 필름으로 불가능한 작업을 디지털로 이뤄낸 것이다. 그 덕분에 상상력을 표현하는데 제약이 없었다. 포토샵으로 보정할 때 사용했던 레이어를 그대로 출력해서 작품 옆에 같이 전시해 놓은 것 또한 독특했다. 단순히 액자에 사진만 끼워서 전시해 오던 나로서는 월드 클래스의 벽을 실감하게 된 경험이었다. 


 에릭 요한슨의 전시를 보고 깨달은 것이 두 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사진에 접근하는 방식에 따라 결과물은 역사가 되거나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 이 두 가지는 서로 닮은 듯하면서 다른 종류의 것들이었는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역사와 예술을 나눠서 보려는 시도 조차 하지 않았었다. 카메라는 기본적으로 기록을 하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촬영 방식은 새로운 장면을 발견하고 기록하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전시를 하다 보니 내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와 부합하는 장면을 촬영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창조하려면 아이디어와 연출이 필요하고, Take와 Make의 차이를 정확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사진을 만든다는 개념에 눈을 뜬 순간이었다.


 두 번째는 합성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는 예술적 창의성이다. 우리나라는 유독 합성 사진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 사진 합성이 대부분 부정적인 쪽으로 사용되어 왔던 것도 있지만, 사진이 갖고 있는 진실성을 바꾸고 왜곡하는 행위 자체가 용납이 안 됐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사진은 추억의 저장물 아니면 진실만을 추구해야 하는 역사적 기록물로 인식되어 왔다. 그렇기 때문에 디지털카메라가 발전하고 편집 프로그램이 좋아졌어도 합성을 통한 예술적 표현 방식에 대해서는 받아들여지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사진은 기록적인 접근 방식의 사진만 인정받아 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에릭 요한슨의 전시는 이런 인식의 틀을 깨버리는 데 충분했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사진을 좀 더 다양하게 바라보고, 새롭게 표현하는 것에 대해 관심이 생긴 것이다. 그 이후로 조금씩 다르게 사진 작업을 이어가는 중이다. 아직 에릭 요한슨처럼 환상적이진 않지만, 이전보다는 사진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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