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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Jun 11. 2022

아들이라는 사유


친구 H의 차에 올라타며 나는 경악했다.

“왜 이 차에서 우리 아버지 냄새가 나지?” 


 그랬다. 그것은 정확히 아버지의 향이었다. 아버지는 보일러와 지하수용 모터를 팔았고, 휴식이 필요할 때마다 엉덩이를 대고 앉아 쉬는 대신 멀찍이 걸어가 담배를 태웠다. 그렇게 만들어진 기름과 담배, 땀이 섞인 적당히 불쾌한 냄새가 H의 차에서도 났다.

 냄새의 근원은 명확했다. H는 100kg에 육박했기에 하루 동안 먹어대는 물보다 뿜어내는 땀이 더 많은 듯 땀을 흘렸다. 그 힘든 몸을 중간중간 위로해야 한다며 담배도 하루에 한 갑씩 피웠다. 기름 냄새는 차에 가득 싣고 다니는 망원경 부속품에 발린 오일일 수도 있고, 탄생한 지 11년 된 차가 뿜어내는 향일 수도 있었다. 어쨌거나 냄새는 ‘윙 가디움 레비 오우사’ 처럼 기억을 불러내는 주문이므로 친구에 차에 발을 얹을 때마다 아버지가 생각났다.

 

 어느 유명한 에세이 작가는 말했다. "작가는 가급적 음울한 과거를 써야 합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딱히 힘든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 그것은 부모님이 두 분 다 계셔서 일 수도 있고,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일주일에 8개씩 다닐 학원이 없어서 일 수도 있지만, 타산적으로 말하자면 아버지의 벌이가 나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아버지는 겨울엔 붕어빵, 여름엔 식혜를 파는 장사꾼 같았다. 아버지가 하는 보일러와 모터일이 그랬다. 온 세상이 꽁꽁 얼 만큼 추운 날이면 아버지는 아침 7시 보다 더 일찍 집을 나섰다. 얼어 터진 수도관의 수만큼 집주인들의 비명도 터졌기 때문이다. 물이 줄줄 새는 집들에서 아버지는 기술을 팔아 돈을 벌었다. 적당히 추운 가을과 겨울엔 보일러를 놓았다. 봄과 여름에는 밭에 댈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모터를 설치했다. 더위도, 추위도 아버지에겐 다 돈이었던 것이다.

 동화중에 두 아들을 가진 노파의 이야기가 있다. 한 아들은 우산을 팔았고, 나머지 한 아들은 짚신을 팔았다. 덕분에 노파는 늘 행복할 수 있었다. 비가 오면 우산을 파는 아들이 돈을 벌고 날이 맑으면 짚신을 파는 아들의 장사가 잘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아버지는 두 아들을 둔 노파의 마음으로 현장에 나서지 않았을까?

 나는 아들이라는 사유로 아버지가 번 돈을 여러 곳에 발랐다. 학원비라는 이름으로 학원 기둥에 발랐다. 등록금이라는 이름으로 대학 기둥에도 발랐다. 보증금이라는 이름으로 전셋집 기둥에도 돈을 발랐다. 내가 한 일이라곤 어린 시절 급식비 명세서를 받으면 쪼르르 부모님께로 달려가 지폐 몇 장으로 바꿔 들고 다시 선생님께 내는 일의 확장판들 뿐이었다. 성인이 되었지만 직접 책임지는 건 없었다. 그런 허울뿐인 아들에게도 대학을 다니고 취업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아버지는 말했다.


“네가 제 몫을 다해줘서 고맙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낯 뜨거운 감정에 휩싸였다. 그것은 부끄러움이기도 했고 자괴감 섞인 창피이기도 했다. 불편한 감정에 몰입하지 않으려고 보잘것없는 스스로에게서 눈을 뗐다. 시선 둘 곳을 찾아 헤매다 흘금 아버지를 쳐다봤다.

 순간 이마에 칼자국처럼 깊게 그어진 주름이 보였다. 눈 옆도 주름이 자글거렸다. 누구는 환갑의 나이에도 탱탱한 피부를 유지하며 광고에 나오는데, 환갑인 아버지는 여든 살 먹은 할아버지처럼 주름을 얼굴에 이고 있었다. 그 주름은 일변 나이가 들었기 때문만은 아닌 게 분명했다. 더위와 추위에 새겨진 나이테처럼 현장을 돌며 일한 탓일 것이었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우산과 짚신을 파는 두 아들을 둔 노파의 이야기에서 조명받지 못한 사실은 노파가 매일매일 아들들을 생각했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삶에서 내가 보지 못한 것은 더위와 추위에 상관없이 돈을 번 아버지가 결국 쉬지 않고 일을 했다는 것이다.

 그의 태생은 일과 쉼의 경계 따위를 사치로 여길 만큼 가난했기에 짙은 삶에 바람 한편 넣을 여유가 없었다. 그 뜨겁고 차가운 세월을 손으로 만져가며 빚은 것이라곤 이제야 막 제 삶을 비로소 일부 지탱하게 된 유약한 아들과 아버지 이마에 깊게 패인 주름, 지독하게 풍기는 아버지의 냄새뿐이었다.  


 H의 차에 오르면 아버지의 냄새가 코 밑에 차오른다. 왈칵, 넘어오려는 알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눈밑에 넘실댄다. 나 또한 주름을 잔뜩 이마에 켠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린다.

아버지란 존재는 왜 이토록 애연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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