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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Dec 03. 2022

8강 진출 확률,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월드컵 16강 진출의 기적

 손흥민이 달려간다. 70미터를 한 번도 쉬지 않고 그 끝에 아버지의 원수가 있는 것처럼 공을 치고 달린다. 우르르 쾅쾅. 그의 옆에는 황소 같은 황희찬이 달린다. 수비 세명이 에워싸는 사이로 손흥민의 송곳 같은 패스가 황희찬에게 연결된다. 지체 없는 황희찬의 슛! 골. 대한민국은 2:1로 포르투갈을 제쳤고, 황희찬은 월드컵 조별 예선 3경기 중 20분을 뛰고도 자신의 별명인 황소가 투 플러스 한우임을 증명했다. 덩달아 축구를 보고 있는 대한민국의 입에서 한 마디만 흘렀다. 미쳤어!!!!


 진심으로 고백한다. 나는 단 한순간도 우리 흥민이를 욕하지 않았다. 그것은 설혹 그가 월드컵에 부진했을지언정 수년 동안 그의 골로, 유려한 플레이로, 존재 자체로 즐거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손흥민의 부진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왜, 맛집만 가도 가게 앞에 줄을 서기 마련이다. 하물며 우리나라에서 제일 골맛이 좋은 선수인 손흥민 주변으로 여러 명의 수비수들이 몰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브라질 같은 선수들이야 개개인이 모두 최고의 공격수라 한 명을 골라 수비하는 게 의미가 없다지만 우리나라는 다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인 손흥민을 집중 마크하는 게 상대국들의 우선 전략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은 둥글고 축구장에는 11명의 선수들이 뛴다. 결국 손흥민은 제 이름값을 충분히 하고도 넘치는 패스를 황희찬에게 건넸고, 그에 화답하듯 황희찬은 슛 한방으로 우리나라를 16강에 안착시켰다. 세계의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포르투갈에 승리하고 16강에 갈 확률이 고작 10%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우리나라는 그 처절한 확률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좌) 나사의 관제센터, (우) 촬영된 아포피스의 모습


2004년, NASA는 비상을 선언했다. 지구와 충돌 위험이 있는 소행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소행성의 이름은 ‘아포피스’, 크기는 직경 370m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롯데 타워보다 조금 작은 수준이다. 만약 지구와 충돌한다면 아시아 대륙 정도는 초토화를 시킬 정도로 강력한 충격을 주게 된다. 더욱 비상이었던 점은 아포피스가 지구에 다가올 확률이 무려 2.7%에 달했다.

  만약 당첨될 확률이 2.7%인 선물 뽑기가 있다면 당신을 시도할 텐가? 100번을 해도 통계적으론 3번도 채 당첨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800만 번쯤 해야 1번 당첨될 확률을 지닌 로또가 성행하는 나라에 산다. 그리고 매번 누군가는 그 실낱같은 확률을 뚫고 당첨금을 타 간다. 그러니 지구인의 생존이 달린 일에 2.7%의 충돌 확률은 충격적일 뿐더러, 이런 확률을 가진 소행성은 극도로 드물다. 사실 천문학에서 2.7%의 확률은 심각할 정도로 높은 확률이다.

 천문학자들은 곧바로 비상사태에 돌입했다. 어느 국가의 운명을 한 낯 태양 주변을 도는 커다란 돌멩이에게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포피스를 철저히 분석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소행성 아포피스를 흔들 수 있는 것이 매우 많았다. 아포피스는 지구와 가까운 만큼 지구 중력에 의해 궤도가 급격하게 변했다. 또한 목성과 토성의 중력에도 휘청거렸다. 최악의 경우 인간의 기술력(아포피스에 인공위성을 갖다 박는다던가, 돛을 달아 점진적으로 궤도를 바꾼다던가)으로 아포피스의 궤도를 변경할 수도 있었다. 그리하여 복잡한 계산 끝에 천문학자들의 아포피스의 지구 충돌 확률을 재 발표했다.


“지구와 충돌 위험 없음”


확률로 마음을 졸였던 사람들은 충돌할 확률이 없다는 말에 다시 마음을 놓았다. 참 다행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왜 2.7%에 달했던 확률이 0%에 근접하게 된 것일까. 처음 충돌 위험을 발표했던 NASA의 과학자들은 실력이 부족한 것일까?

 나는 그저 절박함의 차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위험을 알린 것이다. 불이 나면 무조건 달려가 끄는 게 1번이 아니다. 119에게 신고를 하는 게 더 좋을 때도 있다. 마찬가지로 더 정확한 계산을 위해 데이터를 모으고, 제한되어있는 망원경의 사용 범위도 늘리고, 여러 천문학자들의 아이디어를 모으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결과가 가장 긍정적인 <충돌 확률 없음>으로 발현된 것이다. 확률, 그것은 그 순간의 숫자에 불과하다.



 16강 진출 확률이 고작 10%에 불과했지만 우리나라는 결국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그것은 부상으로 빠진 최고의 수비수 김민재의 자리를 메꾼 김영권이 첫 골을 넣을 줄 몰랐기 때문일까. 혹은 부상으로 한 번도 뛰지 못하다가 포르투갈전에 교체 출장한 황희찬이 골을 넣을 가능성을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퇴장당한 포르투갈 출신의 벤투  감독이 최고로 멋진 전술을 선보일 줄 몰랐던 걸까. 혹시 누군가 정해놓은 10%란 확률이 사실은 이 모든 것을 하나도 계산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어쨌거나 나는 12월 들어 최고로 행복한 순간을 대한민국 축구로 경험했다. 물론 오늘은 12월 3일이고, 아직 12월은 한참 남았다. 그러니 내가 이보다 더 짜릿한 순간을 맞을 수도 있다. 혹자들은 우리나라의 16강 상대는 브라질이고 그들에게 승리할 확률은 5%도 안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확률, 그것은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 공은 둥글고, 나는 공이 굴러가는 순간마다 응원할 것이다. 그 순간들이 모여 4년 전엔 월드컵을 우승한 독일을 이겼고, 2002년엔 4강 신화를 이뤘다. 아포피스는 충돌하지 않을 것이며, 나는 언젠가 로또에 당첨될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니 나는 대한민국의 브라질 전 승리를 기원한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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