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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Jan 12. 2023

남매의 골디락스 존

 선혜는 나와 가장 비슷하게 생긴 여자다. 눈은 작고 코는 넓적하며 웃을 때 눈이 반달이 된다. 우리는 키도 발도 큰데 깡말라서 학창 시절엔 언제나 길쭉한 해골 같았다.  하지만 스무 살이 된 선혜가 자취를 시작하며 살이 15kg이나 찌자 체형이 많이 달라졌다. 물론 15년이 지난 지금 나 역시 15kg 찌며 비슷한 통통이가 되어버렸다. 이것이 유전인가 보다. 같은 부모에게서 같은 유전자를 받았으니 할 말이 없다. 

 우리는 가족이지만 원수보다 더 많이 싸웠다. 초등학생 때는 발차기를 해대며 싸웠고, 중고등학교 때는 거친 말을 서로의 얼굴에 뱉었다. 한 번도 이긴 사람이 나오지 않았지만, 하루도 싸움이 멈춘 날은 없었다.

 절정은 함께 자취를 하게 된 대학생 때었다. 둘 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닌 탓에 아버지는 엄명을 내렸다.


“전세방 하나 얻어줄 테니까, 양쪽 학교 중간쯤에서 같이 살아!”


 집은 별 볼 일이 없었다. 가축 냄새가 콧속을 찌르는 마장동 시장에서 15분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 언덕의 반지하 방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방은 두 개였다. 서로의 얼굴을 반강제로 보지 않아도 되니 집에 빛이 안 들어도, 하수구에서 쥐가 나와도 썩 맘에 들었다. 그런 집에서도 나와 누나는 방을 하나씩 나누어 살며 관성처럼 으르렁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산 좋고 물 좋은 골짜기 폭포 아래에서 수행 중인 수도승에게나 가야 할 깨달음이 오배송되어 나에게 와버렸다. 왜 그런 날이 있지 않나, 아침 수업을 단골로 빼먹는 주제에 저녁 술자리는 빠지지 않는 한심한 먹보 대학생 생활에서 벗어나 유튜브에 등장하는 성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을 때. “You can do anything”이 내 명치에 다가왔을 때. 지난날의 게으름과 손절하고 새사람으로 태어나야겠다고 다짐하게 됐을 때. 그런 순간이 성령처럼 온 것이다. 나는 그 깨달음 아래 생각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다. 매일 늦잠을 자느라 허겁지겁 뛰쳐나가는 탓에 아침을 먹은 적도 없지 않은가. 내일은 아침 식사부터 하리라!

 그날밤 나는 경건하게 샤워를 마쳤다. 그리곤 누렇게 찌든 밥솥에 정성스럽게 씻은 쌀 반컵을 넣고 예약 취사를 눌렀다. 내일 아침이면 구수한 밥냄새가 포근하게 나를 깨울 것이고 내 인생도 변화할 것이다. 무한도전을 재생하고 잠들던 (구)승현의 악습도 버린 채 고요하게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나는 계획대로 아침 7시에 일어났다. 반지하에 드는 햇빛은 없었지만 어렴풋이 밝은 창문이 썩 맘에 들었다. 차분히 밥솥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새 출발의 깃발을 뽑듯 밥통을 열어젖혔다.

 그런데 웬걸, 밥이 없었다. 분명히 밥이 된 흔적은 있는데 밥통은 텅 비어있었다. 싸늘한 예감이 들었다. 당장 핸드폰을 들어 선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내 밥 먹었어?”

“밥통에 있던 거? 먹었지, 근데 밥을 왜 이렇게 조금 했어? 한 주걱 푸니까 없더라”

“아니, 미쳤냐고 도대체 내 밥을 왜 먹어!!!!”

“왜! 밥통에 있으니까 먹지, 그러니까 누가 그렇게 조금만 하래?”


 그것은 그저 밥이 아니었다. 새 출발의 신호탄이었고 깨달음의 첫걸음이었으며 모든 나태와 태만을 단절하는 영물이었다. 그것을 홀랑 까먹고는 선혜는 제 학교로 도망간 것이다. 우리는 밥 한 공기를 시작으로 인생에서 가장 험한 강도로 미친 듯이 싸웠다. 빈 밥통을 손에 쥔 나는 ‘에이 무슨 새 출발이냐, 잠이나 자자’며 분노에 쌓인 채 잠들었다. 빈약하게 쌓인 깨달음의 탑을 스스로 깨부수고 한심한 먹보 대학생으로 남은 것이다. 나는 그렇게 두어 달을 더 빈둥대다가 군대를 가버렸다. 입대하기 전까지도 나와 선혜는 한 번도 마주하지 않았다. 그때는 원수보다 선혜가 미웠다. 싫었다. 어찌하여 아버지는 누이를 낳고 나 또한 나았단 말인가, 한탄했다 

 하지만 세상의 명약은 시간이라고 했던가. 2년에 가까운 군생활을 하다 보니 전역할 때쯤엔 악감정은 홀연히 사라지고 그저 가족이라는 사실만 남았다. 문제는 군대를 전역하지 다시 한번 아버지가 말을 걸어왔다는 것이다.


“승현이 군 전역하면 대학에 복학해야 할 텐데, 그럼 다시 같이 살아야지. 집 좀 알아봐”

나와 선혜는 세상이 멸망한 듯 목이 쉬도록 비명을 질러버렸다.


 천문대에 오는 아이들은 ‘ABCDEFG’를 외치듯 천문학의 알파벳을 외친다. 수금지화목토천해! 태양과 가까운 순서로 행성을 늘어놓는다. 우주에서 순서만큼 의미 없는 것도 없지만 적어도 태양계 안에서는 중요하다. 태양과 너무 가까우면 불타는 행성이 돼버리고, 너무 멀면 얼음 행성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종종 아이들에게 지구의 기가 막힌 위치 선정에 대해 말한다.


“지구보다 태양에 한 칸 더 가까운 금성의 온도는 무려 500도까지 올라가!”

“와, 가자마자 바비큐 통구이가 되겠네요?”

“당연하지! 반대로 지구에서 한 칸 더 먼 화성에 간다면 추울 땐 영하 140도가 된다구!”


 태양은 우주에선 먼지 한 톨에 지나지 않은 아주 작은 별이지만 이쪽 태양계 동네에선 절대 군주에 가깝다. 에너지의 근원이자 생명의 시작이다. 그렇다고 가까이하면 멸망을 면하기 어렵다. 지구보다 태양에 가까운 수성과 금성은 피자를 굽는 화덕 안보다 뜨겁다. 불지옥을 피하겠다며 태양과 멀어지는 것도 문제다. 꽤 살만하다고 여겨지는 화성은 태양과 조금 더 멀다는 이유로 평균온도가 -80°C다. 해왕성은 말해 무엇하랴, 평균온도가 -214°C나 된다.

 다행히 지구는 인간이 문명을 이뤄낼 정도로 태양과 적절히 떨어져 있다. 항성 주변에 물이 존재할 수 있을 만큼 적당히 따뜻한 영역을 '골디락스 존'이라고 부른다. 지구는 태양의 골디락스 존 안에 있는 것이다. 아무리 생명의 근원이자 에너지의 본질인 태양이라고 하더라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나는 가족에게도 그런 거리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부대껴 사는 게 가족이라지만, 적당히 머리가 커서 협력에 한계가 온 가족이라면 조금 떨어져 있어야 한다. 적당한 온기가 주변을 감싸고, 무심하게 쏟아낸 날카로운 말도 무디게 전달될 정도의 거리. 그 거리를 찾는다면 생일 때 보고 싶고, 명절에 만나고 싶은 가족이 다시 될 수 있지 않을까?


 다행히 내가 전역한 후에 나와 선혜는 함께 살지 않았다. 파업이라도 하듯 머리띠를 두르고 격렬하게 소리친 덕분이었다.


“우리가 같이 살면 간신히 찾아온 가족의 평화는 없어질 겁니다.”

“맞아요. 누나와 저 중 한 명이 없어질지도 몰라요”


 결국 가족의 평화를 위해 우리는 따로 살게 되었다. 남은 대학생활은 더 이상 누가 밥통을 뒤졌냐며 싸우지 않아도 되었고, 설거지를 누가 하느니, 하나 남은 라면을 왜 먹었느니, 화장실에서 썩은 내가 난다느니, 쓰레기를 누가 내다 버리느니 따위로 싸울 일도 없었다. 문득 한 번씩 서글픈 일이 생기면 서로에게 전화를 하는 정도의 적당한 온기마저 풍겼다. 지금도 우리는 일 년에 5번 정도 만나는 가족이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사이가 좋다. 골디락스존은 가족에게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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