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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Aug 07. 2023

하와이 상공에서 추락하다.

하와이 스카이다이빙

 제프라고 했다. 구릿빛 피부에 태평양 같은 어깨와 초콜릿 모양의 복근을 가진 남자였다. 고창석 같은 수염과 미역 줄기 같은 헤어스타일을 하고도 멋지게 보이는 것은 그가 유일할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그가 내 생명을 책임지는 스카이 다이빙 강사가 되었을 때 생각했다. '앗싸! 무조건 난 살아 돌아오겠구나!'

 그러니 하늘에서 떨어지기 위해 덜덜거리는 봉고차만 한 비행기를 타고 4000미터 상공을 오르면서도 크게 걱정스럽지 않았던 당연했다. 삼국지의 유비가 관우와 장비, 조자룡을 뒤에 둔 기분이 바로 이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어떤 위협이 닥쳐도 나를 구해낼 것이라는 것을 그의 복근으로 확신했다.


 스카이다이빙을 뛰고자 하는 5명과 교관 5명을 태운 비행기는 10년 전 고속버스터미널에 있던 대형 선풍기 소리를 내며 끊임없이 하늘 위로 솟구쳤다. 돈을 내고 점프를 뛰고자 하는 사람들은 모두 질겁한 표정이었고, 돈을 받으며 점프를 책임지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신감이 넘쳤다. 흡사 전쟁 포로 5명을 잡아 개선하는 군 비행기 같았다. 다만 비행기의 행선지는 땅이 아닌 하늘이었다.

 한라산보다 두 배는 더 높은 4000미터 상공에 다다르자 비행기의 문이 덜컹하고 열렸다. 교관이 냉장고문을 열듯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비행기의 문을 그냥 열었다. 스카이다이빙이 아니었다면 이것은 분명 사고였다. 하지만 비행기의 문을 열고 밖으로 집어던져달라며 돈을 낸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고, 제프는 그 요구에 응답하듯 나를 문 앞까지 밀었다.

 문이 활짝 열린 비행기 난간에 발을 딛고 섰다. 눈앞에는 허공이면서 동시에 하늘이 높여있었다. 발아래에는 걸리버가 소인국을 바라본 것처럼 아기자기한 해변이 펼쳐져있었다. '바다로 착지할 작정인 건가?' 따위의 소모적인 걱정도 잠시, 비행기 안으로 밀려드는 시속 200km의 바람이 서있는 나의 따귀를 연속으로 때렸다. 나는 방송에서 개그맨들이 종종 벌칙으로 강력한 바람을 맞을 때 나오는 한껏 바람에 얻어맞은 얼굴이 되었다. 그 얼굴은 지극히 아름다운 하와이 해변과 이질적으로 대립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제프는 나를 비행기 문쪽으로 한걸음 더 밀쳤다. 나는 비행기 난간에 서서 정신없이 소리를 질러대는 고릴라가 되었다. 그리곤 한 걸음 더 걸어 나오는 제프에게 떠밀려 비행기 밖으로 넘어졌다.

 맞다. 그것은 점프라기 보단 추락에 가까웠다. 그저 비행기에서 밀려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지구에게는 감정 따위는 없어서 덤덤히 나를 지구 중심 쪽으로 당겼다. 나는 9.8m/s^2의 속도로 가속했다. 이 말은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는 동안에도 수십 미터씩 땅과 가까워진다는 의미였다. 몇 초만 낙하산을 늦게 펴도 나는 땅과 강력한 하이파이브를 하게 된다. 하지만 인간의 두뇌는 위기만큼 재빠르지 않았고, ‘내 등뒤 붙어있는 제프가 나를 살리겠지’하는 막연한 신뢰만 남았다. 그 와중에 구름을 통과했다. 얼굴에 촉촉한 수분이 느껴졌다. 급속도로 강해지는 기압 좀 어떻게 하라며 귀에는 '삑이익!' 경보음이 들렸다. 급하게 코를 막고 숨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귀 안쪽에서 풍선 바람 빠지는 느낌이 났다. 그때쯤 제프가 소리 질렀다. "포즈 좀 취해봐!". 나는 포즈랍시고 손하트와 머리 하트를 남발했다. 슈퍼맨 자세도 취했다. 상상 속에선 분명히 두 주먹을 불끈 내지르며 위풍당당 하늘을 나는 청년이었는데 나중에 동영상을 보니 질겁하며 손을 들고 항복하는 포로 같았다. 그렇게 낯빛이 어두운 청년은 땅으로 떨어졌다.

 땅으로 곤두박질치던 중, 갑자기 하늘이 나를 잡아당겼다. 붕-하는 느낌과 함께 하늘 쪽으로 솟구쳤다. 제프가 낙하산을 편 것이었다. 덕분에 속도는 급격히 줄었고 나는 낙하하던 고릴라에서 활강하는 독수리가 되었다. 그제야 하와이의 눈부신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물감을 풀어놓은 듯 새파란 바다, 튀어 오르는 물고기, 눈물 나게 아름다운 하와이 연안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이 지구라는 파란 구슬에 점처럼 존재하는 화산섬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 모습은 경외감과 자신감을 동시에 불러왔다. 마치 내가 구름을 타고 하늘을 유람하는 손오공이 된 것 같았다. 종교는 없지만 신이 있다면 믿을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하늘은, 바다는, 숲은 모두 신의 정성으로 만든 것이 분명했다.

 스카이다이빙을 위해 지불한 돈이면 편의점에서 맥주를 160캔이나 살 수 있다. 하지만 아깝지 않았다. '죽거나 심각하게 다칠 수 있다'고 위협하듯 쓰여있는 동의서에 했던 싸인도 후회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기압 변화에 심했던 고막도 통증도 순식간에 가셨다. 게다가 지구로 추락하며 무려 자유낙하를 체험했다. 우주에서 느끼는 무중력 상태는 지구에서도 땅으로 추락할 때 똑같이 느낄 수 있다. 이 정도면 과장 조금 더 보태 간접 우주를 체험했다고 우길 수 있다. 이 순간을 유튜브 썸네일로 표현한다면 이렇게 쓸 것이다. ‘돈으로 추억을 사고싶다면 지금 당장 해야 하는 Top3!’

 두 발로 땅을 구르며 안전하게 착지한 후 나와 제프는 하이파이브를 찐하게 날리며 서로에게 말했다.


“You are so crazy guy”

“You too! It was amazing!”


 그는 많으면 하루에 10번 다이빙을 한다고 했다. 나같이 일면식도, 스카이 다이빙에 대한 경험도 없는 사람들을 제 몸 앞에 매달고 저 높은 하늘에서 구름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그가 수년 동안 하늘에서 낙하하며 있었을 돌발 상황과 우여곡절들은 가늠도 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그거 비행기에서 천공을 향에 점프하는 횟수만큼 누군가의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별을 보여주고, 천문학을 가르치는 강사로 살고 있다. 10년째 같은 일을 하며 이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지만 한 문장으로 ‘어떤 강사’가 되어야겠다고 정의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젠 확고하다. 나는 스카이 다이빙 교관 같은 강사가 되고 싶다. 어떤 순간이던 누군가 천문학에 뛰어들때, 안전하고 믿음직한 강사로 존재하길 바란다. 한 번의 강의를 들을 때마다 나를 믿고 우주 과학에 뛰어든 아이가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잊지 못할 순간이라고 말하면 좋겠다.

 모든 순간이 짜릿할 수 없고, 모든 시간이 자극적일 수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시간들이 좋은 밑거름이 되어 아이들에게 행복한 우주를 만들어주고 싶다. 그런 강사가 되고 싶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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