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다양한 한 잔이 있다.
나는 술을 사랑한다. 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일은 부담스럽다. 누군가 나를 고주망태로 볼 것 같고, 술에 취해서 난동을 피우는 사람처럼 보일까 무섭고, 자극적인 향락에만 몰두하는 사람으로 비칠까 걱정된다.
누군가에게 술은 그저 악마다. 코가 비뚤어지게 마셔 넥타이를 맨 부장님을 상상하거나 골방에 들어앉아 3일 동안 감지 않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술병을 기울이는 모습을 떠올린다. 주변인과의 관계를 망치고, 몸에도 좋지 않은 백해 무익한 독약인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술이 있어서 유지되는 관계도 있다. 시간이 갈수록 친구는 점점 사라진다. 8명이서 매달 놀던 고향 친구들 모임은 박살이 나버렸다. 8명의 시간을 맞추는 일이 다트를 던져 8번 연속 정중앙을 맞추는 일보다 어렵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결국 시간이 맞는 친구라도 보기 위해 모임은 점점 작아졌고 기어코 1:1로 봐야 하는 일도 많아졌다.
하지만 30대 중반의 남성들은 사회성이 점차 결여되어 카페를 가서 소담 소담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학창 시절처럼 코인 노래방에 가 한이 맺힌 듯 노래하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 그저 저벅저벅 걷다가 ‘뭐 하지?’라는 말 밖에 할 줄 모르는 메마른 존재가 된 것이다. 하지만 술은 한 잔의 오아시스 같아서 메마른 둘 사이를 촉촉하게 적신다. 한 잔 할까?라는 말로 우정을 재확인하고 술값을 계산할 때 카드를 먼저 내미는 것으로 우정을 과시한다. 삐걱대는 대화의 윤활유가 되어주는 커피가, 공원의 벤치가, 맛있는 저녁 식사가 내게는 술이다.
요즘 내 동네 술친구는 ‘승욱’이다. 동네에 친구가 그뿐인 것도 이유지만 승욱도 술을 좋아한다. 승욱과는 갓 스무 살,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힙합 동아리에서 만났다. 문제는 승욱이 빠른 년생이었다는 것이다. 지식대신 자존심만 머릿속에 가득 들어찬 스무살 남자들에게 빠른 년생은 마치 지뢰같다. 실수로라도 뇌관을 건드리면 관계는 폭발한다. 하지만 소탈하고 넉살 좋은 승욱과 가까워지고 싶어 나는 그를 곧장 형으로 인정해 버렸다. 10년의 우정을 넘어 지금도 술잔을 함께 기울이고 있다.
“진짜 와인이 영롱하더라니까? 바로 입에 털어 넣을 뻔했다고”
얼마 전 유럽에 다녀온 후 승욱을 만났다. 나는 프랑스의 남부의 고즈넉한 와이너리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레드 와인을 보고는 곧장 입에 털어 넣고 싶었지만, 통장 뒤에 붙은 ‘0’의 개수가 생각나서 겨우 참았다고 말했다. 진심이었다. 그때 고주망태가 되도록 마시지 못한 아쉬움이 돌이 되어 아직도 가슴 한편이 무겁다. 내 하소연을 들은 승욱은 “이 바보야, 항공료를 생각했어야지! 그건 10만 원짜리 와인이 아니라 150만 원짜리 와인이라고!”라며 이미 지나간 열차가 굳이 황금 열차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유럽에서 와인을 내려놓은 미련한 나의 손길을 떠올렸다. 생각할수록 90% 바겐 세일을 놓친 것 같고, 변함없던 통장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된 것 같았다. 선택을 실패한 자의 후회와 회한, 무지와 분함으로 멘탈이 20,931조각으로 나눠진 후에야 나는 맥주나 마저 마시자며 승욱과 잔을 부딪쳤다. 우리는 술을 먹으면서도 술을 이야기했던 것이다.
“승현아, 어떡해. 치료방법이 더 이상 없대.”
5년쯤 전에 승욱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어머니가 췌장암 말기라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가 병원 침대 위에서 끝을 알 수 없는 고통에 짓눌린 채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고, 그저 어머니 옆에 지키고 서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그 말을 귀로 들었지만 몸은 그대로 멈췄다. 어쩔 줄 몰랐다. 누군가가 느끼는 짐작할 수 없는 고통을 위로하기에 나는 너무 어렸다. 경험도 부족했다.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 대신 영양제 한 통을 사서 곧장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는 180cm가 넘는 거대한 곰이 판다 다크서클을 하고 나를 맞이했다. 승욱이었다. 그 안쓰러운 모습에도 반가워서 빤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그리곤 영양제를 건네며 말했다. “이건 형이 먹어, 형도 몸 챙겨야지 “. 승욱은 고맙다고 짧게 말하고 웃었다.
우리는 별 말없이 병원 휴게실에 앉아 시답지 않은 얘기들을 나눴다. 사실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어버버 거렸던 것은 기억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승욱의 어머니가 하늘나라로 떠나셨을 때도, 장례식장에서 만났을 때도, 그 뒤에 몇 번 더 만났을 때도 어머니 이야기만 나오면 병원 로비에서의 순간을 되풀이했다. 어버버 거리며 별 뜻 없는 대화만 나누고 헤어졌다. 둘 다 위로나 대화에는 잼병이었던 탓이다.
얼마 전 승욱은 술잔을 부딪히다가 뜬금없이 말했다.
“승현아 그거 알아?”
“뭐?”
“넌 나한테 무조건이야”
“그게 뭔데?”
“엄마가 아파서 입원해 있을 때도, 돌아가셨을 때도 네가 한달음에 달려와 줬잖아. 뭘 해줘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냥 내가 보고 싶어서 왔다고 했을 때, 병원 8층 문이 열리고 네가 있었을 때, 나는 그게 세상에서 제일 큰 위로였어. 말보다 행동이 그랬어. 그래서 넌 평생 나한테 무조건이야. 무조건”
승욱은 간질거리는 한 마디를 던지고 아무렇지도 않게 내 술잔에 제 술잔을 부딪쳤다. 사실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었다. 어쭙잖게 그날을 다시 위로하거나 그때의 나를 섣부르게 칭찬할 수도 없었다. 우리는 별 말없이 청하 한 잔을 입에 털어 넣는 것으로 잠깐의 정적과 마주했다. 달짝지근한 술이 목구멍을 넘어 뱃속에 찰랑 거렸을 때쯤이 돼서야 끝내주는 맛집 얘기로 닫힌 말문을 다시 열었다.
나는 그 순간, 술이 한 움큼 더 좋아졌다. 낯간지러운 얘기를 술 덕분에 할 수 있었다. 술잔은 종종 감정의 징검다리가 된다. 평소에는 말하기 어려운 미안과 용서, 사랑과 고마움을 지고 술잔이라는 돌다리를 한 칸씩 밟고 건너 상대방에게 줄 수 있다. ‘술 없이 말해야 진심이지, 술 먹고 말하면 그냥 술기운 아니야?’하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아쉽게도 난 맨 정신에 간질거리는 마음을 전할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 서른의 발음은 마치 서어른 같아서 어른이 되어야만 할 것 같은데, 그 나이가 한참 지나도 어른이 되지 않았다. 진심을 전하는데 건배가 필요한 조금 덜 자란 청년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좋다. 곱하기가 필요하다면 계산기를 쓰거나 연필을 끄적이며 풀어도 된다. 꼭 암산으로 곱하기를 해야만 정답은 아닐 것이다. 곱게 담은 마음을 용기 내 전할 수만 있다면, 맨 정신이든 술잔을 거치든 문제를 풀어낸 게 아닐까? 그런 합리화를 하면서 오늘도 맥주 한 캔을 들이켠다.
남자 둘이 잔을 부딪치며 이야기를 나눌 때, 나는 이 술자리가 우정의 미끄럼틀쯤 된다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즐거움이 되기도 하고 때때로 화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당첨 확률이 800만 분의 1인 천 원짜리 복권을 사고도 한주를 설레는 사람들처럼, 나는 지금 들고 있는 잔을 최대한 만끽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승욱처럼 고마운 사람들에겐 고맙다고 말할 수 있는 주정뱅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