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승현 Apr 29. 2024

봄의 우주

 봄은 대구 사람이다. 가족도 친구도 모두 대구에 있다. 그런 그녀가 천문학과를 갓 졸업하고 내가 일하는 경기도 남양주의 천문대에 입사하게 되었다. 생선쯤 되어야 대구가 근처에 있지, 남양주에서 경상도 대구는 영 다른 나라다. 오죽하면 일본 대마도가 남양주보다 대구와 직선거리로 더 가깝다. 하지만 봄은 이름처럼 늘 싱그럽게 말했다. "그래도 애들이 너무 좋은걸요". 그저 천문학과 아이들이 좋다는 이유로 봄은 다른 세계로 옮겨왔다.

 

 2024년, 미국에서 개기일식을 본 후였다. 그녀는 봄비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천문학 하는 사람들은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여기까지 온 거잖아요. 개기일식을 보게 된 순간 생각났어요. 그렇지. 나는 이런 걸 사랑하는 사람이었지.”

 봄이 쏟아내는 눈물과 언어를 들으면서 나는 그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곤 유명한 격언을 생각했다. ‘있는 사람이 더하는구먼’.

 봄은 무엇에도 애정을 쏟는 존재다. 언어가 좋다며 영어와 스페인어를 매일 공부하고, 제자들에게 실습을 만들어주는 일이 즐거워서 일러스트 자격증을 따버렸다. 영화 탑건이 좋다며 알파벳을 항공사 용어로 외워버리고 보드게임이 재밌다며 새벽 6시까지 머리를 싸매는 인간이다. 왜 그런 부류가 있지 않은가, 자신이 가진 작은 취미에도 소담한 애정을 뿌리는 사람. 잔잔한 시간들이 쌓여 단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 결국 ’ 쟤는 뭘 저렇게 다 잘하지?’ 하는 질투가 드는 사람.  

 그런 그녀가 개기일식을 본 후에 비로소 사랑을 깨달았다는 것은 기만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직도 찾고 있는 사람에게는 배부른 모욕일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생각했다. 사랑하는 것들이 눈앞에서도 흐릿할 만큼, 그녀는 아주 지독한 고독을 느끼고 있는 게 아닐까?

(좌)항해 중인 보이저1호의 상상도, 그리고 보이저호가 찍은 목성의 위성 이오(우)


 1977년, NASA는 보이저 1호와 2호를 발사했다. 이 두 우주선의 임무는 태양계를 지나 우주의 먼 경계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이들은 무모한 우주의 배낭여행자처럼 태양계의 끝으로 향하는 동안 마주친 행성들의 사진을 차곡차곡 찍어 지구로 보냈다. 모두 하나같이 우주의 인스타그램에 '라이크'를 누르게 만드는 순간들이었다.

 그중에서도 목성의 위성 이오는 특히 놀라웠다. 이오는 고작 이탈리아 정도의 면적을 가졌지만 400개의 화산을 가진 불의 위성이었고, 하루에도 수십 개의 화산이 폭발하고 있었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이오의 화산이 뿜어내는 용암 기둥은 100km에 달하기도 했다. 용암의 분출이라기 보단 용암 발사에 더 가까운 것이다. 이오의 사례에서 보여주듯, 보이저 프로젝트는 우리가 알던 세계를 훨씬 뛰어넘는 광경을 선사했다.

 2012년, 보이저 1호가 태양계의 경계를 넘어 태양계 밖으로 첫발을 디뎠다. 이 순간은 절대적으로 인간의 호기심과 끈기가 만들어낸 극적인 업적이었다. 태양계를 벗어나면서 측정된 미세한 입자와 방사선의 변화는 과학적 증거를 넘어 인류가 성간 우주라는 미지의 영역으러 나아갔다는 상징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다. 끝없는 우주 속에서 인간의 꿈과 탐구 정신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증거이기도 했다. 보이저 1호는 '인간이 만든 물체 중 가장 멀리 있는 존재'로써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를 향해 지금도 항해하고 있다. 이름처럼.



 봄이 고향을 떠난 그날부터, 그녀의 삶은 작은 우주선이 되었다. 그리고 그 우주선은 점점 더 깊은 우주 속으로, 아무도 헤매본 적 없는 궤적을 따라 나아가고 있다. 타지에서의 삶이, 서른이 주는 불안이, 다양한 능력이 주는 축복이, 그녀에게는 차갑고 먼 목적지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좋아하는 것이 그렇게나 많아도, 개기일식을 바라보며 봄비 같은 눈물을 뿌리게 되지 않았을까?

 우리가 걷는 길은 아직 누구의 발자국도 남지 않은 길이고, 그 길을 따라 자신의 이야기를 삶에 새긴다고 믿는다. 보이저호가 우주의 끝없는 경이로움을 발견하듯, 봄도 자신의 삶 속에서 작은 행복과 놀라움을 찾아내며 살아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응원한다. 이 길에서의 외로움은 결코 쓸쓸함이 아니라, 그녀가 오롯이 자신을 발견하는 여정이다. 그녀가 발견하는 모든 별은 결국 그녀 안에 이미 존재하는 빛의 반영이다. 외로움도, 고독함도, 불안도, 사랑과 행복도 모두 그럴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주 쓰레기 뱃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