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시멀리스트의 우주 보기
집안의 분리수거함을 열면 '일주일 동안 내가 이렇게 많은 것을 소비했구나'를 인정하게 된다. 플라스틱; 이렇게도 많은 배달 음식을 해치웠고, 캔; 내 뱃속으로 들어온 맥주와 콜라의 양이 물보다 많았으며, 박스; 택배 아저씨가 우리 집을 나와 비슷한 빈도로 드나들었구나 싶다.
일주일 동안 쌓인 재활용품들을 내놓으려고 가득 찬 비닐들을 챙겨 집 밖으로 나가면 괜히 부끄럽다. 분리수거를 지켜보는 경비 아저씨가 '저 집은 배달음식으로 거덜 나겠어, 뭔 놈의 플라스틱이 저렇게 한 다발이래' 할 것 같달까… 그래서 분리수거를 할 때마다 도둑놈처럼 발소리를 죽이고 다가가 미션을 수행하는 톰 행크스처럼 캔 떨어지는 소리가 안 나게 쏟아붓고 돌아온다. 그래서인지 저금통은 비어있으면 불안한데, 집안에 모아두는 분리수거통은 비어있으면 신이 난다.
여느 때처럼 플라스틱을 와르르 쏟아내며 지난날의 과소비를 반성하던 밤이었다. 분리수거장에는 유럽의 대농장에서 밀을 재배할 때 쓸 것 같은 미니 수영장만 한 자루들이 늠름하게 서있었다. 자루마다 플라스틱, 비닐, 박스 등이 가득가득 차있었다. 그 위에 탑처럼 내 플라스틱을 붓다가 문득 생각했다.
이걸 내가 다 소비했다고?
자급자족 프로젝트에 참가하시겠습니까?
1991년, 여덟 명의 과학자는 계약서에 사인한 후 애리조나 사막에 있는 기이한 건물로 걸어 들어갔다. 건물의 이름은 바이오스피어 2, 프로젝트의 이름도 바이오스피어 2다.
바이오스피어 2는 지구 환경을 그대로 재현한 거대한 유리 돔 안에서 외부의 자원 없이 2년동안 생존하는 실험이다. 남자 넷, 여자 넷이 이 시설에 들어가 완전히 격리된 채 생활했다. 이들은 열대우림, 사바나, 사막, 맹그로브 습지, 산호초 등 다양한 생태계에서 스스로 식량을 재배하고, 물과 공기를 재활용하며, 폐기물을 처리하는 자급자족 생활을 시작했다.
"피자가 먹고 싶어!"
"좋아, 그럼 밀과 토마토부터 재배해야겠네."
"?"
실제로 그랬다. 바이오스피어 2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던 과학자들은 피자를 먹기 위해 직접 피자를 만들어야 했다. 그들이 피자를 먹는 과정은 그야말로 험난했다. 첫 단계는 밀을 키우는 일이었다. 밀을 심고 거름을 주며 정성을 다해 길렀다. 그런 후 밀을 수확해 탈곡하고 갈아 밀가루로 만들었다. 이 과정만 4달이 걸렸다. 밀가루를 만들고 나서야 겨우 피자 도우를 만들 수 있었다.
피자 위에 올린 재료들도 준비해야 했다. 토마토, 고추, 양파를 재배했다. 치즈를 얻기 위해서는 염소를 길러 젖을 짜냈다. 지독히 번거로운 과정을 치며 피자를 만든 제인 포인터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치즈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에요. 염소가 있어야 하고, 수정해서 새끼를 낳아야 해요. 염소들이 새끼에게 우유를 주면, 우리는 그 우유로 치즈를 만들어요. 다시 말하면, 치즈를 만들기 위해 염소를 임신시켜야 한다고요!"
그들은 피자를 먹기 위해 농부가 되고, 요리사가 되고, 재료를 옮기는 배달부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피자를 한 조각 먹을 수 있었다.
피자를 만들 때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잘 때를 빼고는 모든 시간을 생존하기 위해 써야 했다. 매일 다양한 직업으로 살아야 했다. 이들은 하루 평균 4시간 동안 농사를 짓고, 3시간은 무언가를 만들고, 연구하고, 고치는 데 보냈다. 요리하는 데 2시간, 가축을 돌보는 데는 1시간 반이 걸렸다. 나무와 습지, 미니 초원과 사막을 관리하는 데도 2시간이 소요됐다. 이 모든 활동이 모두 실험이었기 때문에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에도 3시간을 썼다. 이들은 농사꾼이자 사육사, 과학자이자 행정가, 요리사이자 청소부가 되어야 했다. 요즘 유행하는 N잡러의 원조는 그들이다. 이렇게 다양한 직업을 가진 그들은 2년 동안 바이오스피어 2에서 지내며 우주에서 인간이 장기간 생존할 수 있는가에 대한 가능성을 탐구했다.
과학자들을 보며 나는 문득 생각에 잠겼다. 참깨빵 위에 순쇠고기 패티 두 장을 얹기 위해 참깨와 밀, 소를 길러야 한다면? 나는 아마도 채식주의자가 되고 말 것이다. 고기 없이 하루도 못 지내는 나지만, 육체 노동을 줄이기 위해서라면 적당히 상추와 배추를 씹어 먹고 살지 않을까?
다행히 세상에는 수많은 직업이 있고, 각자의 일이 있다. 누군가는 밀을 경작하고, 누군가는 비닐을 만들고, 누군가는 포장하고, 누군가는 배달하고, 나는 구매한다. 우리는 사실 혼자 해야 할 일을 전 세계인과 나누어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이렇게 아낀 시간 덕에 나를 조금 더 필요로 하는 곳, 이를테면 별을 알려주는 천문대에서 일한다. 결국,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유튜브 영상을 편집하는 10살 어린 동생도, 하와이에서 커피를 재배하는 농부도, 대서양을 가로지르며 참치를 잡는 어부도, 멀리 있지만 결국은 같이 산다.
소비는 단순한 낭비가 아니라 누군가의 직업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내가 마신 맥주 캔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생계를 유지하게 하고, 내가 주문한 배달 음식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하루의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니 분리수거함을 열 때마다 느끼는 작은 부끄러움은, 사실 우리가 서로의 삶을 지탱해 주는 증거다. 내 소비는 이 세상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의 손길을 거쳐 온 결과물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기꺼이 소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