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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Dec 20. 2024

불완전한 가족의 형태를 통해 확인하는 가족의 의미.

[넘버링 무비 24] 영화 <한 채>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남자와 여자가 각자 캐리어를 끌고 골목으로 향한다. 첫 프레임을 두 사람의 뒷모습으로 채우는 카메라는 미동도 없다. 오른쪽 화면 한구석에는 ‘사기꾼을 엄벌에 처하고 주민의 재산권을 보장하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의 외침이 낡은 현수막 위에 쓰여있다. 곧 낡고 오래된 모텔에 머물게 된 두 사람의 모습 다음으로 남자가 여자의 등을 씻겨주는 장면이 나온다. 어눌한 말투로 자신의 등을 밀어달라고 요구하는 장면을 통해 겨우 알 수 있게 되는 것은 두 사람이 부녀(父女) 사이라는 점이다. 영화 <한 채>는 이렇게 시작된다. 거칠고 불친절하게.


사실 아버지 문호(임후성 분)는 지금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딸 고은(이수정 분)을 이용하고자 한다. 처음 만난 남자 도경(이도진 분)과 위장 결혼을 시켜 불법 청약을 시도하고자 하는 것이다. 영화가 두 사람의 현재는 보여주고 있지만, 과거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다. 골목을 지나는 첫 장면 이후의 삶에 있어 문호에게 ‘방법’은 중요하지 않다. 한편, 두 사람 앞에 앉은 도경은 당황스럽다. 서류상이라고는 하나, 자신과 결혼할 대상이 지적장애를 앓고 있다는 사실과 확실한 청약을 위해서는 함께 사는 것이 안전하다는 브로커의 말 때문이다.


이 작품을 연출한 정범, 허장 감독은 두 가족의 위장 결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 대해서는 형식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청약 조건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거짓’과 관련한 설정이라던가 ‘위장’ 결혼을 통한 동거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화나 다툼의 장면을 이 영화 속에서 발견할 수 없는 이유다. 그 자리에 놓이는 이야기는 훨씬 묵직하다. 사랑하기 위해서 이용해야 하고, 진실한 세계를 지켜내기 위해 허구의 터널을 지나야만 하는. 그 위에 가족의 모습이 놓이면서 이 작품은 조금 더 텁텁하고 깔끄러운 기분을 남긴다.


02.

“그냥 이러고 살아요.”


영화의 중심이 되는 두 가족, 문호와 고은 부녀(父女)와 어린 딸을 키우고 있는 도경은 현실의 무게에 떠밀려 가족의 형상을 지켜내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문호는 제대로 된 집도 없이 떠돌아다니며 스스로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고은의 곁을 떠날 수 없는 상태로 그려진다. (직접적으로 표현되는 것은 아니나 중반부 이후 마주하게 되는 매형과의 대화를 통해 추측할 수 있다.) 도경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낮에는 택배 기사로, 밤에는 대리운전 기사로 생계를 어렵게 꾸려가는 그는 딸은 누나에게 맡긴 채로 반지하 작은 집에서 홀로 생활 중이다.


그런 두 가족이 불법 청약을 위한 위장 결혼을 알선하는 업체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수단’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내일을 전복할 수 있는 방법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방 두 칸짜리 아파트가 매매가는 10억을 넘어가고, 전세로 구하더라도 5억이 넘어가는 상황에서 다른 어떤 방법을 떠올릴 수 있을까. 심지어 집이 있는 사람도 당장 전셋값을 5천만 원이나 구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는 세상이다.


영화가 문호와 도경으로하여금 최소한으로 발을 디딜 수 있는 장면을 마련해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금 더 자연스러운 가짜 결혼사진을 위해 딸 고은을 카메라 뒤에서 웃기는 데 동참하기는 하지만 공짜로 찍어준다는 말에도 가족사진만큼은 한사코 거부하는 문호의 마음. 잠깐이라도 시간이 나면 딸을 데리고 수족관을 가는 등의 모습으로 자신의 도리를 다하고자 하는 도경의 태도와 같은 것. 비록 그 행동을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개인의 악의로부터 시작된 행위는 아니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보여주는 일이다.


03.

“지금부터 소꿉놀이할 거야”


확실한 청약 성공을 위해 가족 행세를 하러 들어간 도경의 집에서 세 사람이 조금씩 진짜 가족의 모습을 갖춰가는 과정은 안도감과 불편함을 함께 섞은 묘한 감정을 전달한다. 이 관계에 불편한 감정이 스며드는 이유는 단순히 진짜 가족이 아닌 사이가 가족인 것처럼 행동한다거나 특정한 목적을 위해 가족의 형태를 맞추고 있다는 점 때문이 아니다. 심지어 서로의 삶에 필요 이상으로 깊숙이 관여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도 큰 불편함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이 부분은 영화가 이를 건조한 방식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문제는 현재의 상황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어제의 후회와 내일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커야 이런 태도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걸까. 오히려 영화는 이들의 목적이 담긴 불편한 대화가 나오는 장면마다 표정이나 감정을 직접적으로 담아내지 않는다.


이 작품 속에는 유난히 ‘밥을 먹으라’는 말이 여러 번 등장한다. 처음 도경의 집에 들어간 문호도 그랬고, 도경이 찾아간 도경의 누나(지성은 분)도 여러 번, 심지어 밥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고은도 자신을 돌봐주는 고마운 마음을 밥을 통해 전달한다. 함께 먹는 밥은 이 영화에서 가족이 아닌 가족을 유일하게 가족처럼 보이게 만드는, 더 나아가 가족과 같은 마음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대상이다. 택배 트럭 위에서 혼자인 도경이 먹는 요깃거리나 포도 농장 컨테이너 안에서 홀로 지내는 문호의 식사와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진짜 가족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렇게 함께 밥을 먹는 행위 속에는 위장 결혼을 완성하기 위한 서류나 소꿉놀이를 한다는 말 한마디가 가진 결속력보다 훨씬 더 깊고 진한 의미가 담겨있다.


04.

영화의 중후반을 지나면서부터는 이 불완전한 가족의 형태에 쌓이는 가족의 의미를 조금씩 찾아볼 수 있는 장면들이 주어진다. 고은의 실수로 인해 벌어진 상황에서 화가 난 도경이 그를 던져놓고 혼자 떠나오지만 곧 다시 데리러 가는 장면도 그렇고, 딸을 도경에게 홀로 맡겨두고 매형의 포도 농장에서 일하게 된 문호가 아무 걱정이 없다며 믿음을 보이는 장면도 여기에 속한다. 어차피 진짜 결혼도 아니었는데 문호와 고은의 명의만 빌려주면 거액을 챙겨주겠다는 불법 브로커의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도경의 모습도 같은 맥락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이 아닌 이들의 모습을 통해 지금의 가족이 잃어가고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부분이 있다.


이제 도경은 문호의 매형이 운영하는 포도 농장에서 일한다. 고은은 문호의 누나와 함께 반찬을 만든다. 문호는 도경을 대신해 브로커를 찾아가 불편한 진실을 터뜨리고 교도소에 수감된다. 어쩌면 이 영화의 처음에서 굳게 믿었던 내일의 동아줄이 모두 신기루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들 모두는 ‘한 채’의 집을 가지게 된 것 같다. 10억이 넘는 번듯한 아파트처럼 유형의 자산에 해당하는 공간은 아니다. 자신을 대신해서 부재의 공간을 채워줄 수 있는 존재가 있고, 따뜻한 한 끼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영역이다.


다시 처음으로, 오래된 모텔에서 하룻밤을 보낸 부녀가 이상한 연극을 했던 장면이 떠오른다. 아빠의 고갯짓 몇 번에 시장 옷 가게로 들어간 고은과 그런 딸의 뒤를 따라 한발 늦게 들어간 문호가 주인에게 불쌍한 처지를 강요하며 옷값을 깎던 모습이다. 사실은 그 옷조차 딸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직후에 있을 도경과의 만남을 위한 것이었다. 이용하기 위한 또 한 번의 이용. 이제 더 이상 누군가를 그런 상황에 밀어 넣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일련의 모든 불법과 위장은 반대 측면의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가진 현재의 모습은 다른 누구의 선의도 아닌, 오롯이 이들 각자의 선택으로 인한 결과라는 사실이다.



이 글은 24.11.26.에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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