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 24] 영화 <무파사 : 라이온 킹>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지난 2019년 개봉한 존 파브르 감독의 <라이온 킹>(2019)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원작인 1994년의 애니메이션 영화를 그대로 옮겨오면서도 ‘실사를 모방한 CG(Computer Graphics)’의 형태로 완성한 리메이크 작품이었다. 이 전환이 2014년 <말레피센트>(2014)를 시작으로, 지금까지도 전개되고 있는 디즈니의 실사화 프로젝트의 일환 중 하나였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내용이다. 문제는 ‘실사영화’라는 점에서 <라이온 킹>이, 오늘 이야기할 <무파사 : 라이온 킹>(이하 <무파사>)을 포함한 시리즈가 실사화 프로젝트 위에서 완성된 다른 작품과는 기술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다른 지점에 놓이고 있다는 부분이다.
존 파브르 감독의 <라이온 킹>은 주인공 심바가 프레임 속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내던 장면부터 충격이었다. 마치 하나의 사파리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사실감이 혼란스럽게 했다. 단순히 그 모습이 실제 사자의 모습과 닮아있어서는 아니었다. 털 한 올 한 올이 바람에 휘날리고 어떤 뭉침도 없이 개별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부분은 오히려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경외심을 넘어선 두려움 같은 것을 경험하게 했다. 주연만큼이나 잘 알려진 ‘하쿠나 마타타’의 티몬과 품바 역시 더 이상 귀엽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이는 분명히 실제가 아니다. 관객을 비롯한 우리 모두는 두 지점 사이의 거리를 스스로 좁히는 노력을 요구당했다. 25년의 시간 사이에서 익살스러움을 잃고 생생한 라이브가 되어버린 간극이다.
배리 젠킨스 감독이 연출한 <무파사>(2024)도 그 맥락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비슷한 표현 방식으로, 지나온 시간만큼 더 발전한 CG의 기술력으로 완성된 작품이다. 이미 한 번 경험했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 조금은 익숙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제 더 이상 <라이온 킹> 시리즈는 귀엽거나 사랑스럽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작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심바의 아버지 ‘무파사’의 어린 시절 이야기까지 다시 완성해 내며 IP를 이어내는 것에는 단 하나의 이유만이 존재한다. 자신들이 보유한 기술적 과시를 통한 지극히 상업적인 성공에 대한 욕망. 이는 5년 전, 전작이 세상에 공개될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고귀한 혈통을 타고 나진 않았지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 존재의 이야기.”
영화가 원작의 내용을 잇고자 하는 의지는 많은 지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느껴지는 부분은 형식적인 구조에 있다. 심바와 날라 사이에서 태어난 딸 키아라(블루 아이비 카터 분)가 할아버지 무파사(아론 피에르 분)의 오래된 이야기를 전래 동화처럼 전해 듣는다는 식의 전개다. 이 형식은 이야기의 처음과 끝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무대 위 막(Act)의 구조를 이식해 오기라도 하는 듯이 라피키가 무파사의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 몇 차례나 자리를 채운다. 이때마다 영화는 이 작품이 원작 <라이언킹> 이후 시점의 현재에서 대과거 무파사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음을 관객들에게 주지시킨다. 다시 말해, 전작이자 원작과 이번 작품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 외에도 티몬(빌리 아이크너 분)과 품바(세스 로건 분)를 그대로 가져온다거나, 시리즈의 상징과도 같은 프라이드 록(Pride Rock)이 처음 형성되는 장면을 보여준다든지 하는 지점에서 다수의 연결고리를 확인할 수 있다.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작의 심바가 경험했던 모험의 여정은 대홍수로 인해 부모와 멀리 떨어져 버린 무파사의 모험으로 대체되고, 스카를 비롯한 하이에나 무리의 악역은 백사자 키로스(매즈 미켈슨 분) 무리에게 맡겨진다. 티몬과 품바로 여겨졌던 조력자 무리는 다시 사라비와 자주, 젊은 라피키가 대신하고, 삼촌 스카와의 대결 구도 역시 이번 작품에서는 백사자의 왕과의 장면이 된다. 긍정적으로 이해하자면, 시리즈 전체가 내세우고 있는 순수 혈통과 왕의 자리에 대한 순환과 반복이 표현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두 작품을 긴밀하게 연결하기 위한 목적과 전 연령대가 이야기를 쉽게 받아들이게 하기 위한 (이 작품이 전체연령가임을 고려한다면) 전략적인 선택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난 항상 형제가 있길 바랐어.”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공통된 주제 의식은 역시 혈통이다. 원작이 집중했던 자리가 친족 사이의 갈등, 무파사를 왕으로 둔 아들 심바와 삼촌 스카였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서로 다른 두 집단의 통합이 근원적 문제가 된다. 이를 부드럽게 전개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어린 개체 간의 우정이다. 영화는 새로운 집단의 우두머리인 오바시와 아들 타카(켈빈 해리슨 주니어 분)를 중심으로 무파사를 이방인이자 떠돌이로 낙인찍고 이를 타개할 계책으로 우정과 형제애를 내세운다. 물론 이 감정은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
오바시와 타카가 처음 경쟁하게 되는 경주 장면은 그래서 의미적으로 중요하다. 타카의 입장에서는 스스로의 힘으로 왕이 될 기회이면서 혈통이 아닌 외부자를 철저히 배척하던 집단의 규칙을 자연스럽게 이양받을 수 있는 순간이다. 이 대결에서 무파사에게 진다는 뜻은 앞으로의 이야기 속에서 타카가 왕이 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과 같다고도 볼 수 있는 이유다. 일종의 복선으로 받아들여도 좋겠다. 자신이 이길 경우 아버지인 오바시가 혈족의 규칙에 따라 외부자인 무파사를 죽일 것이라는 걸 아는 타카는 스스로 무파사에게 지는 선택을 한다. 그리고 형제를 건드리면 누구도 가만두지 않는다는 규칙을 스스로 만든다.
사실 형제를 만들고 싶었다는, 실제로 형제를 만들기 위해 이전에 존재했던 규칙을 스스로 깨는 타카의 행동은 이성적으로 잘못된 행동이라고도 볼 수 있다. 전작의 심바가 그랬듯이, 왕의 자라는 복수의 존재가 공유할 수 없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오히려 경쟁자를 줄이고 없애는 쪽으로 나아가야만 해서다. 사자의 숙명이다. 타카가 그렇게 하지 못하고 무파사를 적극적으로 형제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이유로 영화는 또 하나의 단서를 내세운다. 두려움이다. 처음 백사자 무리가 기습을 가해왔을 때 에셰(탠디 뉴튼 분)를 도와 맞서 싸우던 무파사와 달리 그는 혼자 도망쳐 버린다. 이 일은 오바시로 하여금 무파사에게 빚을 지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타카 역시 무리로부터 신뢰를 잃는다. 어린 무파사에게도 두려움은 있다. 다만 그가 가진 두려움이 부정적 경험에 의한 특정한 상황의 감정이라면, 타카의 것은 태생적인 느낌이 강하다.
“밀레레로 향하고 있거든. 빛을 따라서.”
백사자 무리의 침입으로부터 혈통을 지켜내기 위해 무리로부터 떨어져 나오게 되는 타카와 무파사, 또 다른 무리로부터 홀로 살아남은 공주 사라비(티파니 분), 그의 곁을 지키는 새 자주, 그리고 원숭이 집단으로부터 쫓겨난 젊은 라피키(존 카니 분)까지. 앞서 설명한 타카의 행동이 왕이 되는 과정에 합당하기만 했다면, 이렇게 완성된 떠돌이들의 모임이 밀레레로 향하는 길에서 고난과 수난을 겪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들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것은 상상 속에만 있다고 믿어지는 밀레레를 꿈꾸고 있어서도 아니고, 쫓아오는 백사자 무리의 왕 키로스 때문도 아니다. 왕이 되어야 했던 존재가 자신의 숙명을 외면하고 감춰왔던 본능과 뒤늦게 알아차리게 된 제 숙명에 대한 욕망이 이들의 발목을 잡기 시작한다.
발단은 무파사가 위험에 처한 세라비를 구하는 장면이 된다. 두려움으로 인해 이번에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타카는 깊은 질투심을 느낀다. 주어진 상황과 결과는 같지만, 이번에는 연모의 감정이 개입된다. 더 이상 어린 개체가 아니라는 뜻이다. 심지어 그 마음을 알기에 두 존재를 연결해 주려던 무파사의 도움조차 눈엣가시처럼 여겨진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첫 만남에서 무파사를 구해줬던 일만 내내 꺼내 든다. 유일한 무기다. 사실은 그것조차 엄마 에셰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그 감정을 홀로 삼키던 타카는 수치심과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백사자 무리에게 무릎을 꿇는다. 아버지 오바시와 일족을 멸종시킨 키로스 앞에 굴종의 서약까지 하면서다.
이제 남은 일이라고는 형제라 여겼던 존재의 배신을 이겨내고 단 하나의 존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영화가 보여주는 일뿐이다. 무파사가 밀레레, 지금의 프라이드 록 자리를 차지하고 타카는 스카가 되어 변방으로 밀려나는 과정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이 시리즈의 인장과도 같은 장면을 극적으로 활용하는 장면 하나가 놓인다. 시간적으로는 현재와 과거의 존재가 울부짖으며 자신의 위치를 천하에 알리는 순간이며, 시리즈적으로는 이 작품 <무파사>가 원작 <라이온 킹>의 정확한 순혈임을 드러내는 지점이다. 무파사와 키아라는 심바가 울부짖은 자리에서 그렇게 다시 울음을 토해낸다.
“누구나 생명의 순환 속에 자신의 자리가 있다.”
무파사와 타카 두 사자의 반대편에서 악역을 자처하던 키로스는 시리즈의 또 다른 정체성과도 같은 생명의 순환(원작 OST 앨범의 타이틀 곡인 ‘Circle of Life’에서도 알 수 있듯이)을 부정하며 등장한다. 이 역시 원작과의 연결고리 가운데 하나이자 그 의미를 다시 한번 더 공고히 하기 위한 장치라는 것을 안다. 결국 이 시리즈의 아주 깊숙한 곳에는 그 어떤 존재도 자연의 섭리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혈통과 왕의 자리라는 것 역시 대(代)를 잇는 과정에서 가능한 것일 뿐, 특정한 개체나 하나의 존재가 영원히 붙들고 있을 수는 없다는 진리 하나가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여러 번 반복해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영화 <무파사>는 모든 자리가 원작에 기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전작인 <라이온 킹>(2019)의 이야기와 떨어지지 않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가 개별적으로 갖는 의미는 이전의 작품이 보여줬던 친족 집단 내부의 갈등이 아닌 집단 사이의 갈등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과 원작 개발 당시 계획되지 않았던 시리즈, 프리퀄의 창작임에도 불구하고 매끄러운 연결성을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왕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스스로 거듭나는 것이라는 영화의 마지막 메시지가 짙은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