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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비 정 Oct 15. 2015

이제는 추억이 된 꿈 동산

뉴욕 'F.A.O슈왈츠'와 어린 시절의 마론 인형을 추억하며

올해 여름, 사라진 꿈나라가 있다. 운 좋게도 나는 그 꿈나라에서 나이를 잊은 채 흠뻑 꿈에 취한 적이 있었다.

뉴욕 5번가에 있던 지금은 문을 닫은 장난감 가게 'F.A.O 슈왈츠'에서......

장난감이 풍부하지도 다양하지도 않았던 우리의 어린 시절에는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놀고, 남자 아이들이 전봇대에 몰려가 말뚝 박기 놀이를 하는 동안 여자 아이들은 고무줄 놀이로 친구들과 해지는 줄도 몰랐었다. 늘 몰려 다니던 같은 반 친구들과 종이 인형을 가위로 오려 옷을 바꿔 입히며 상상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흰 종이에 그린 종이 인형의 옷에 색연필로 색을 입혀 만들어 입히기도 하였다.  

어쩌다 크리스마스 때면 텔레비전에서 해 주던 외화의 성탄 트리 밑에서 장난감을 선물로 받고 좋아하는 아이들의 장면을 볼 때면 나와는 다른  꿈같은 세상에 사는 아이들이었고, 그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대리 만족이 되기도 했다. 참 순진  무구했다고 할까?

어느 해인가 팔과 다리를 구부릴 수 있는 '마론 인형'이라 불리던 인형을 선물 받고 학교가 끝나기가 무섭게 집안에 콕 박혀 어머니가 한복을 만들고 남은 천 조각으로 옷을 만들어 입히며 마론 인형은 공주님도 되었다가 부잣집 딸도 되었다가 하는 호사도 시켜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인형이 없어져서 얼마나 서글프게 울었었는지 모른다. 알고 보니 인형 가지고 놀면  가난하게 산다고... 공부나 하라고.... 어머니께서 감추었던 것이다. 옛날 분들은 참으로 희한한 생각을 많이 하셨다. 어쨌든 나의 전공은 의상 디자인으로 수해 동안 그 일로 밥벌이를 했었는데, 그때 인형 놀이를 실컷 했었다면 좀 유명한 디자이너가 돼 있지 않았을까 하는 우스개 소리도 하곤 했다.

새로운 유행이 생기고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요즘 아이들은 관심사가 옛날 나의 어린 시절과는 천지 차이다. 어쩌다 아이들의 선물을 사기 위해 장난감 가게에 들어가면 어떤 것을 사야 할지 캄캄해진다. 어린 시절의 동심이  자극되지도 않는다. 그 만큼 강산이 변했다는 말인가?

뉴욕을 두 번째 찾았을 때, 센트럴 파크 주변을 구경하며 걷다가 남편이 꼭 가야 할 곳이 있다고 한다. 따라 걷다 보니 눈 앞에 전체가 유리벽으로 된 애플 스토어가 보인다. 그럼 그렇지... 하고 생각했는데 웬걸... 남편의 발걸음은 그 뒤쪽 장난감  병정처럼 빨간 코트에 까만 털모자를 쓴 아저씨가 열어 주는 문으로 들어가는 것 아닌가. 어리둥절  따라 들어가보니 별천지가 펼쳐졌다. 넓은 공간에 화려한 치장과  여기저기 세워진 진열대에는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까지도 홀딱 정신을 뺏길 만큼 멋진 장난감들로 채워져 있었다. 적당히 쌈 직한 장난감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눈에 들어 오는 것들은 꽤 고가의 럭셔리한 것들이었기에 장난감 가지고 놀 나이의 아이가 있었다면 절대 이곳에 오자고 하지 않았을 남편이다.

서둘러 들어 오느라 간판도 못 보았는데 머리 위로 보이는 'F.A.O 슈왈츠' 싸인. 이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톰 행크스의 청년 시절 영화 '빅'에서 노 신사 한분과 듀엣으로 바닥에 깔린 커다란 피아노 건반 위에서 젓가락 행진곡을 발로  연주했던 명장면이 이곳이었고, '나홀로 집에 2'에서 뉴욕시에 따로 떨어진 맥컬리 컬킨이 돌아다니다 들어간 장난감 가게에서 주인에게 두개의 흰 새 모양 마스코트를 받는 장면도 이곳이다. 그 뿐인가 영화 '스머프'에서는  장난감 보다 작은 스머프들이 이곳을 휩쓸고 다녔었다.

남편은  이리저리 큰 눈을 굴리며 남자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구경하는 동안 나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형들에 시간을 뺏기고 있었다.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마론 인형과는 비교도 안 되는 인형들이 즐비하니 혼이 빠지는 듯했다. 인형이지만 입고 있는 옷들 조차 내가 입고 있는 옷보다 멋들어지다.

인형들 뿐인가. 영화에서나 보던 인형의 집도 있고, 그 안을 채울 가구며 집기들 까지 세밀하게 만들어져 있다.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의 마음 까지 콕콕 집어낸 장난감들이 천지여서 아이들과 함께 오면 하루도 모자랄 듯했다.

내가 여자 아이들 장난감에 혼미해 있을 동안 남편은 남자 아이들 장난감이 쌓인 곳에서 혼미해 있는 듯하다. 졸래 졸래 가보니 역시나 장난감 기차 트랙 옆에서 걸리버가 되어 서있다. 어쩌면 저렇게 정교하게 만들었을까 하고 감탄이 나온다.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정신 없이 구경하고 다니는 이유가 있었다.

한층 한층 돌아다니다가 반갑게 눈에 들어 오는 것이 있어 뛰어갔다. 놀이 공원에서 어른이 되고 싶다는 소원으로 갑자기 몸만 어른이 된 톰 행크스가 아닌 진짜 아이들 몇이 양말만 신은 채로 뛰어 다니고 있었다. 아이들만 아니었다면 내가 올라가 뛰어다녔을 지도 모르겠다. 나이는 불혹의 후반을 달리는데 철이 없어도 너무 없다.

영화'빅'의 'F.A.O슈왈츠'에서의 피아노 장면 보러 가기

그렇게 나이도 잊고 한나절을 즐겁게 보내고 왔는데 지난 칠월 어느 날 페이스 북 뉴스를 훑어 보다가 그곳이 문을 닫는다는 뉴스를 접하고 남편에게 알리자 'Oh No~~' 하며 그도  아쉬워한다. 나 역시 그 옛날 어머니가 마론 인형을 감추었듯 물질적인 현실이 한나절 추억의 꿈동산을 감추어 버린 듯해 씁쓸했지만, 한나절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던 추억이 있으니 얼마나 행운인가.

그 옛날 편을 갈라 고무줄을 잡아 주던 동네 친구들과 종이인형에 옷을 바꿔 입히던 단짝들은 지금 쯤 어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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