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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둘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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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세계 Oct 06. 2020

0. 프롤로그

둘이 영화 보기

  우리 둘은 영화를 꽤나 좋아하는 편이다. 데이트를 할 때면 영화 한 편씩은 꼭 보는 편인데, 그때그때 영화관에서 상영하고 있는 최신작을 보기도 하고, 옛날 영화를 찾아서 보기도 한다. 출근 부담이 없는 느긋한 주말 저녁 시간, 등을 편안히 기댄 채로, 둘이 손잡고 영화를 본다. 지난 일주일 동안 바닥난 에너지를 채우고, 한껏 올라간 스트레스 지수를 낮추는 힐링 타임. 

 

  연애 초반에는 주로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서로에게 보여주었다. 다행히도 겹치는 작품이 없어서 새로운 영화를 보는 재미가 솔솔 했다. 그이는 로버트 드 니로, 톰 행크스, 메릴 스트립의 젊은 시절을 엿볼 수 있는 옛날 영화를 좋아하는데, 특히 알 파치노가 출연한 영화를 좋아했다. 사실 나는 젊은 시절의 알 파치노가 나오는 영화를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이보다는 극적인 사건과 화려한 반전이 있는 영화보다는 잔잔하게 흘러가는 일상을 다룬 영화를 좋아한다. 

 

  서로가 아니었다면 결코 보지 않았을 법한 영화를 같이 보면서, 영화 취향이 다양해지고,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것도 퍽 기분이 좋았지만, 영화를 보면서 나누는 이야기들이 더 좋았다.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에서 시작된 대화는 언제, 어디서 처음 봤는지, 그 시절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ㅡ까지로 이어졌다. 시시콜콜한 이야기지만, 오가는 대화 속에서 지금의 나는 알 수 없는 그의 지난 시간이 생생 해지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 과정이 그를  알아가고 이해하는데 꽤나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호감과 설렘으로 연애를 시작했지만, 그 감정에 신뢰와 믿음의 무게가 더 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나는 돌다리도 두 번, 세 번 두드려보고, 결국엔 돌아가는 스타일이라, 시간 외에 플러스알파가 필요했는데,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내지 <네가 좋아>라는 직접적인 말보다, 그가 좋아하고, 아끼는 영화가 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런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끼는 영화라며 품 안에서 꺼내 보인 영화 속에서 그이와 그이의 마음이 선명해지곤 했다.

 

 이제는 서로의 그림자를 쫒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시간을, 감정을, 생각을 나누기 위해 영화를 본다. 비워내기 위해 혼자 영화를 본다면,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함께 영화를 본다. 앞으로 이어지는 글들은 둘이 같이 영화를 보면서, 함께 채우고 나눈 모든 것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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