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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z Nov 27. 2015

동생

이사하고 나서 얼마 뒤 동생이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다. 동생에게 상황 설명도 할 겸 같이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고, 함께 만나 저녁을 먹었다.


대략의 현재 상황을 말해주면서 동생의 표정을 보았다. 


동생도 나와 같은 표정이었다. 


"엄마가 그렇게 말하면서 나한테 아빠 설득해달라고 하더라."


"미쳤네."


실소와 함께 엄마를 혐오한다는 표정.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엄마가 그렇지 뭐."

"옛날부터 그랬잖아."


동생이랑 어릴 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얼마나 우릴 힘들게 했냐는 내용이 주였다. 아마 옆 테이블에서 우리 대화 내용을 엿들었다면 몹쓸 애들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누나, 나 군대에서 이것저것 해보게 되니깐 오른손보단 왼손이 오히려 편하고 잘되는 게 많더라?"


뜬금없이 동생이 이런 얘기를 했다.

동생은 분명 오른손잡이였다. 부모님도 나와는 다르게 동생은  오른손만 사용했다고 했었다.

현재 나는 글씨를 쓰는 것만 오른손으로 할 뿐 나머지는 모두 왼손으로 한다. 어릴 때 글도 왼손으로 썼다고 하는데 전혀 기억에 없다. 부모님이 오른손을 쓰게 하려고 엄청 때렸다고도 했는데 역시 기억에 없다. 겨우겨우 하나 고친 게 글씨 쓰는 거였다고 했다. 


"아마 나도 원래 양손잡이나 왼손잡이인데 누나보고 내가 왼손을 안 쓴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될 정도로 왼손이 편하더라."


그 얘기를 듣는데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부모님이면 충분히  가능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것 나름대로 슬픈 기분이었다.


나랑 내 동생은 아기 때 무척 순한 편이었다고 한다. 특히 내가 엄마 말로는 배 안에 있을 때보다 배 밖에 있을 때가 더 편할 정도로 순했다고 했다. 혼자 잘 놀고 울지도 않고, 열이 끓어도 울지 않고 가만히 혼자 끙끙 앓기만 하다가 병원에 데려가도 주사를 맞아도 울지도 않고 얌전히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오는 걸 좋아해서 낯도 안 가리고 다른 사람이 놀아줘도 순하게 잘 놀았다고 했다.


처음엔 그 얘기를 들었을 땐 그냥 내가 순했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부터 벌써 내가 부모님의 눈치를 본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집의 분위기는 별로 좋지 않았다고 했다.

할머니는 엄마가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고,

엄마도 막 대하는 할머니가 싫었다.

아이도 딸이었고,

할머니의 시집살이는 더 심해졌다.

엄마는 시집살이가 더 심해진 이유가 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할머니 시집살이에 되받아 쳤고,

할머니는 그런 며느리가 더 미워졌다.

그리고 그 며느리를 빼다 박은 것처럼 손녀딸도 더 마음에 들지 않게 되었다.

아빠는 방관자였다.

엄마가 할머니 때문에 힘들다고 해도 너가 참아라라는 소리밖에 안 했다고 했다.


그 틈에서 어린 나라도 살기 위해서 눈치를 봤을 것 같다.

그래서 더 조용히 하고 더 참고 했을지도 모른다.

왠지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내가 더 불쌍하게 느껴졌다.


한참을 얘기하다 어느덧 내가 고등학생 때 즈음의 이야기까지 넘어왔다.

수능 성적이 나온 날에 대해서 얘기해줬다.

동생은 그 정도로 엄마가 말을 심하게 한 줄 몰랐던 모양이다. 


동생도 부모님한테 그런 얘기를 들은 모양이었다.

"다른 집 같았으면 딸이라서 안 보내줬을 텐데 우리라서 보내주지."

라는 말을.


동생이 내게 말했다.

"누나가 많이 힘들었지. 여자라서 못하게 하는 것도 많고 차별도 많이 받았으니까."


이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나도 모르게 나올  뻔했다.

동생은 아무렇지 않게 툭 뱉은 말이었지만 나에겐 그 말이 너무 고마웠다.

나를 이해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사실 동생은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 뒤에는 내가 떠난 후 셋이서 사는 동안의 일을 말해줬다.

말을 하다 보니 둘이 같은 일에 다른 기억을 갖고 있는 게 몇 가지 있었는데, 좀 더 얘기하다 보니 다 한 사람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엄마가 완전 다르게  얘기했네."


엄마였다.

없는 사실도 더해서 말을 하고 있는 사실을 더 부풀려서 말했던 것이었다.


둘 다 질렸다는 말을 했다.

원래 그런 사람인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더 했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객관적으로 보아도 정말 정말 별로인 사람이라서

내가 엄마를 미워한다고 할 때 생기는 마음의 짐이 좀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차라리 엉망인 사람이라서 더 다행이야.'


아마도 동생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저녁을 다 먹고 식당에서 나와 동생이라 헤어졌다.

웬일로 동생이 내게 배웅까지 해주었다.


아마 동생도 나랑 비슷한 느낌을 느끼고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조금 친해진 느낌.

하지만 딱 이 정도의 관계일 것이다.

이 이상 가까워지지도 않을 것이다.

이미 우린 서로 때문에 상처를 너무 많이 입었고(부모님 때문이었지만) 그것이 평생에 트라우마가 되었다.


좀 더 좋은 남매 관계가 될 수 있었는데 서로를 의지하면서도

너무 절대적으로 부모님의 말을 믿고 따랐던 게 문제였다.

부모님의 말만 믿고, 부모님 마음에 들고 싶어서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만 했었다.

그리고 나는 동생에게, 동생은 나에게 들은 말을 듣고 부모님의 말이 사실이라고 더 확신했고, 서로 제대로 얘기도 하지 않은 체 마음의 문을 닫았다.


이제야 아닌 걸 알았지만

이미 늦어서 아닌 게 아니었다.

이미 상처가 되었고,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집에 혼자 돌아오면서

이제 가족 모두 뿔뿔이 흩어지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넓은 평원에 혼자 덩그러니 던져진 느낌이 들었다.

혼자라고 생각하니 다시금 우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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