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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눌산 Sep 03. 2015

'대근한' 하루  

나무 하러 가는 길


'대근하다'는 '힘들다' 또는 '피곤하다'는 뜻의 충청도 방언이지만, 무주에 살면서 가장 많이 듣는 '무주 사투리'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견디기가 어지간히 힘들고 만만하지 않다'라고 나와 있다.

 

무주는 지리적으로 참 독특하다. 무려 4개 도와 맞붙어 있다.  전라도지만 충청남도 금산과 충청북도 영동을 접한 까닭에 전라도 사투리라기 보다는 충청도 쪽에 가깝고. 경상남도 거창과 인접한 설천이나 경상북도 김천과 인접한 무풍지역도 마찬가지로 경상도 억양이 섞어 있어 무주는 지역마다 사투리가 뒤죽박죽이다.



'대근하다'는 우리 동네 이장 님이 자주 쓰는 말이다.  일단 집에 오면 첫 마디가 '대근햐~'로 시작한다. 순두부집을 하면서 고추와 콩 농사를 천평 정도 짓고 있는데, 새벽이면 두부를 만들고, 요즘엔 나무 하느라 정신없다. 어르신들이 자주 쓰는 말 중에 '아이고 죽겠네'가 있는데, 아마도 같은 의미라 볼 수 있다.


붉게 물들었던 나뭇잎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하면 나는 나무 하러 산으로 간다. 군불 지피는 아궁이는 없지만,  벽난로와 모닥불용이다. 요즘 같은 날씨에는 모닥불이 제격이다. 쌀쌀한 날씨에 모닥불 온기는, 보기만 해도 운치 있다. 모닥불은 여행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 중 하나다. 도시에서는 할 수도, 볼 수도 없는, 원초적 본능 같으니까. 사실 매일해야 할 상황이지만 쉬엄쉬엄하고 있다. 여유 있는 느린 삶이 아니라, 사실은 게을러서다. 그래도 할 건 다 한다.

어제는 산에 나무 하러 갔다 이장 님하고 다른 동네 분을 만났다. 대부분의 마을 주민들은 나무보일러를 쓰다 보니 농사철이 끝난 요즘 부지런히 움직일  수밖에 없다. 눈이 오고 더 추워지면 나무 하기는 더 힘들어 지니까. 벌목한 나무를 살 수도 있지만, 산중에 살면서 나무를 사다 뗄 수는 없다. 돈도 돈이지만, 산골 사람들의 나무 하기는, 도시로 치자면 운동이나 놀이 같은 것이다.


나무 하러 가는 곳은 펜션 맞은편 임도가 끝나는 곳이다. 약 3km 거리로 4륜 구동 아니면 갈 수 없는, 길이 아주 험해서 차가 있는 나 아니면 가기 힘들다. 가까운 곳에도 있지만 아무래도 마을 어르신들 눈치가 보여서. 대신, 곱게 물든 낙엽송이 길을 열어 놓고 기다리는 근사한 곳이다. 뒷집 어르신은 지게로 나무를 해오시기 때문에 마을에서 가장 젊은 내가 먼 곳에서 해 올  수밖에 없다. 이제 가장 먼 골짜기는 자연스럽게 나의 전용 나무터가 되었다.




이른 봄 산나물을 뜯으러 산에 가도 각자의 자리가 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나서면 서로  경쟁할 것 같지만 전혀 그런 일은 없다. 불문율이랄까. 시골사람들은 상대방이 가는 곳은 가지 않는 원칙이 있다. 오랜 경험에서 나온 지혜가 아닐 수 없는데, 고사리나 두릅도 어린 순을 절대 꺾지 않는다. 다음 사람을 위해 남겨두는 예의랄까. 하지만 도시 사람들이 한번 지나간 산은 난장판이 된다.(여기서 도시 사람은 개념 없는 무분별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곱게 꺾어만 가도 다행이겠지만 뿌리째 뽑아 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까. 그것은 급하게 많이 꺾으려고 하다 보니 그런 일이 생긴다. 결국은 욕심이다. 가만 놔둬도 어차피 내 것이고, 오늘 꺾지 않는다고 내일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산에 흔하게 널린 게 산나물이라지만 뿌리는 살려둬야 내년에 다시 그곳에서 산나물을 만날 수 있다는 진리도 욕심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되나 보다.

한동안 고요하던 펜션 주변이 가을 한철에는 적상산 단풍 산행을 오는 등산객들로 붐빈다. 특히 주말이면 주차하기도 힘들 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버스만 해도 한 30여 대는 오는 것 같다. 오랜만에 사람 구경 실컷 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사람이 모이다 보니 별별 사람들 다 만나게 된다. 주차문제가 가장 심각한데, 등산을 목적으로 온 사람들이 한 발자국이라도 더 가까운 곳에 주차를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등산로 입구에 펜션이 있다 보니 주변은 늘 등산객들이 세우고 간 자동차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왜 그럴까? 걷는 즐거움을 위해 오는 사람들인데 굳이 주차장을 놔두고 몇 발자국 걷기 싫어서 힘들게 주차하는 이유 말이다. 좁은 인도에 차를 올리고, 교행이 힘들어 뒤엉키게 되고, 서로 먼저 차를 빼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기도 한다. 그것도 다 구경거리가 되긴 하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참 각박해졌다는 느낌 말이다. 이런 산에까지 와서, 단 하루 만이라도 좀 여유 있는 마음으로 즐겼으면 좋을 텐데...



지난 일요일에는 나무를 해다 쌓아 두는 뒤란 주차장 입구를 승용차가 막아버렸다. 전화를 해서 화부터 내고 나니 마음이 안 좋아 다시 문자를 보냈다. 천천히 산행 마치고 내려오시라고. 차 주인에게서 곧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산에 가 있는  사람한테 차 빼라고 해봐야 소용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랬는데, 오히려 내가 민망해진다. 그 후, 펜션 손님이 모두 떠난 일요일에는 아예 주차장을 개방해버렸다.


산에서 가져 온 나무는 톱으로 자르고 장작을 팬다. 나름대로 산골생활 유경험자기에 장작패기는 자신 있다. 내가 장작 패는 모습을 본 이장님도 나름  감탄할 정도랄까.


"잘허네~ 우리 집 장작도 좀 패줘~"


대근했던 하루다. 한꺼번에 할 생각보다는 매일 조금씩 해야지 생각하면서도 마음대로 그게 잘 안된다. 몸은 고단해도 장작이 쌓여 가는 모습에 배가 부르다. 아무리 '대근하다' 해도 장작이 점점 높이 올라 가는 모습을 보면서 또 산으로 간다. 장작이 천장 높이까지 쌓이는 날까지, 나는 산으로 간다.





2008년 5월. 뜬금없이, 서창마을 황토펜션 주인이 되었다.

지금은  펜션 주인이 아닌, 한 사람의 여행자로 여전히 서창마을에 살고 있다.

이 글은 그간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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