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여행을 추구하는 강원도 양양 김석기 씨
우리 땅은 넓다. 아니, 깊다. 골골 마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 없으니 말이다. 높은 산과 사철 청정옥수가 흐르는 계곡, 사람의 마을이 있는 골짜기들이 한없이 이어진다. 산과 바다를 아우르는 여행지 강원도 양양은 그야말로 자연 그대로가 최고의 가치를 지닌 곳이다. 자연이 준 이 ‘최고의 가치’를 상품화해 모두가 잘 사는 고장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이가 있다. 계곡 물 만큼이나 눈빛이 맑은 청년, 김석기(35) 씨를 만나러 간다.
오전 10시 약속시간에 맞춰 김석기 씨 집을 찾았지만, 이른 아침 계곡 트레킹을 떠난 손님들 맞이하느라 정신없이 바쁘다. 잘됐다 싶어 간만에 찾은 어성전 마을산책을 했다. 어성전은 산 깊은 고장 강원도 양양에서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걸출한 골짜기들이 많은 곳이다. 법수치와 면옥치, 부연동의 들목이 바로 어성전이다. 어성전을 흐르는 남대천 역시 이 골짜기들에서 흘러 온 물이 합쳐진 것으로 물고기魚(어), 이룰 成(성), 밭 田(전) 자를 쓰는 어성전이라는 지명은 ‘물고기가 밭을 이룰 만큼 많다’는 데서 유래했다. 즉 ‘물 반 고기 반’이라는 얘기다.
양양은 김석기 씨의 고향이다. 어성전은 부모님의 고향으로 서당 훈장과 면장을 지냈던 외할아버지와 친할아버지 모두 한 마을 분들이셨다. 양양과 하조대, 강릉에서 학교를 다니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다시 고향으로 내려오게 된 것도 다 이런 배경이 있기 때문이었다. 유명 아웃도어 회사에서 브랜드 마케팅 업무를 담당했던 그가 한창 나이에 사표를 던진 이유는 뭘까.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만 해도 다들 괜찮은 회사라고들 했죠. 그런데 갑이 될 줄 알았는데, 일종의 정치를 하게 되더라고요. 어느 날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다 사표를 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리고 곧바로 팀장 면담을 요청해서 제 생각을 얘기했어요. 회사 사정상 6개월 더 근무하고 어머니가 계시는 어성전으로 내려왔습니다.”
“즉흥적이었나요? 아니면 어떤 계획이 따로 있어서 사표를 내게 된 건가요?”
“회사생활에 대한 염증이 쌓이면서 고민을 하게 되었죠. 서울생활도 힘들었고요. 그런 이유로 시간이 나면 나홀로 여행을 하게 되었어요. 솔로캠핑도 다니고, 제주일주 여행도 하고. 딱히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나이 먹기 전에 내 일을 해보자는 생각이었죠.”
지난 5월 어성전에 내려온 김석기 씨가 맨 처음 한 일은 컨테이너 하우스 제작이었다. 12년 전 태풍 매미 때 버려져 나뒹굴고 있던 폐컨테이너를 재활용한 것이다. 한 달 반 동안 분해와 조립의 과정을 거쳤고 부족한 자재는 고물상을 전전하며 주워왔다. 문과 유리문을 제외하면 모두 재활용인 셈이다.
“어떤 기술도, 경험도 전혀 없었어요. 젊은 나이에 사표를 내고 시골로 내려왔다는 따가운 시선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같은 잡생각을 없애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니까요. 일에 집중하니까 정말 아무 생각도 안 나더라고요. 일단 시작한 컨테이너 하우스를 어떻게 하면 잘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밖에 안 났어요.”
그렇게 컨테이너 하우스 제작을 마치고, 7월 말부터는 게스트하우스 문을 열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마을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었어요. 혀를 끌끌 차시며 좋은 직장 버리고 왜 왔냐는 식이셨죠. 어머니가 여기 살고 계시고 다들 아는 분들이다 보니 힘들 수밖에 없다는 것은 미리 짐작은 했지만, 내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는 느낌이랄까요.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지금은 많이 안정이 되었어요. 하나 둘, 뭔가 이루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인정해 주시는 거겠죠.”
김석기 씨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는 운영 방식이 독특하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바로 공정여행. 자신도 여행을 하며 느꼈던, 지역에서의 소비와 지역주민에 대한 배려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런 의미에서 김석기 씨의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어머니 김주향(65) 씨를 통해 양양의 토속음식을 여행자들에게 내 놓는다. 제피가 들어가는 감자만두와 미역 장국, 취나물의 일종인 개미취 밥인 뚜깔 밥 등 일반 식당에서는 맛볼 수 없는 음식들이다. 취사를 하더라도 양양시장에서 장을 본다. 여행자들이 직접 재료를 구입하고 음식을 만든다. 설거지도 당연히 여행자들의 몫.
“제피 만두는 향이 강해서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하지만 제가 먼저 이 지역 토속음식이라는 것을 설명드리고 권하면 자신들의 입맛에는 안 맞을지도 모르지만, 그 지역 토속음식을 먹는 것도 여행의 일종이라는 생각에서 모두들 공감하더라고요.”
금방 쪄 낸 감자로 빗은 제피 만두 맛을 봤다. 제피 향이 필자에게는 익숙해서인지 한 접시를 순식간에 해치웠다. 미역 장국 역시 구수한 강원도 특유의 막장 맛이 가미돼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이러한 양양 지방의 토속음식들은 좀 더 개발해서 상품화할 계획도 갖고 있다. 음식의 재료가 되는 감자도 지역 주민들에게 구입한다. 어르신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지역의 문화를 알리고 주역 주민들에게도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김석기 씨의 바람이고, 계획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공정여행과 연계한 또 하나의 프로그램은 어성전을 기준으로 널려 있는 계곡을 활용하는 것이다. 계곡길을 걷는 백패킹과 옛길을 걷는 트레킹이다. 이러한 천혜의 자연환경은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는 최고의 여행상품이 아닐 수 없다. 게스트들은 새로운 경험에 모두가 감탄하고 행복한 시간을 갖는다. 자연 속에서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불과 3~4개월의 경험으로 성과를 논할 수는 없다. 하지만 김석기 씨는 서울생활에 비해 몇 배는 더 행복하다고 했다. 여전히 지역주민들과의 관계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남아 있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자신감에 탄력이 붙었다. 처음 게스트하우스 간판을 걸었을 때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던 사람들이 오히려 “도대체 뭐야?”하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슬그머니 찾아와 김석기 씨가 운영하는 공정여행 프로그램에 대해 묻곤 한다.
“잠만 자고 가는 숙박업소의 미래는 없다고 봅니다. 이 지역을 한번 다녀간 손님이 다시 오게 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계 형성이 중요하거든요. 그게 공정여행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공정여행은 여행자와 지역 주민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입니다.”
전문가 못지않은 그림 실력을 갖고 있는 김석기 씨는 매일 그림일기를 쓴다. 일상을 기록하고 미래를 그린다. 그만의 방식으로 블로그와 페이스북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그런 그의 능력을 활용한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일종의 재능기부 방식으로 양양 전통시장과 강릉 서부시장의 벽화를 그린 것. 이 또한 그가 생각하는, 지역에서 살아가는 방식이다. 만만치 않은 서울생활보다 어성전의 정착이 두 배는 더 힘들었다는 그는 자연스럽게 지역에 스며드는 방식으로 ‘봉사’를 꼽았다. 머리만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젊어서, ‘겁 없는 청춘’ 아니야? 했던 생각이 인터뷰하는 동안 고향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 차 있는 김석기 씨를 보면서 젊어서, ‘불가능이 없는 청춘’ 임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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