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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창인 Oct 08. 2015

2011년 여름

미루고 미루어두던 이야기 _ 출발

  참 오랫동안, 미루고 미루어두던 이야기가 있다. 귀찮다는 이유로 묵혀두던 사진들을 이제와 새삼 들춰본다. 딱히 누가 보여달라던 건 아니지만…… 지금이 아니면 맛보지도 못하고 영영 잊혀 쉬어 버릴 것만 같아서. 사실  그때가 좀 그립기도 하고.



  2011년 8월 29일, 하늘은 구름.


  날짜를 기억하는 건 내 머리가 아니라 촬영 정보다. 가만 보면 첫 기차를 타는 날은 항상 날씨가 흐렸던 것 같다. 용산역 던킨 도넛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 최종 일정 확인…… 이라기보다는 누가 봐도 설정이다. 이 때는 어렸으니까. 뭐라도 남기고 싶었나 보다. 그래도 나름 열심히 계획한 흔적이다. 지금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뭔가 보여주려고 적은 것 같은 느낌은 기분 탓이다. 분명.



  이 맘 때 찍은 사진을 보면 그냥 왠지 마음에 든다. 그리도 열심히 사진 공부에 열중하다 불현듯 탁 놓아버린 시기, 딱 그 맘 때. 흔히들 말하는 리즈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면 바로 이 때가 아닐까 싶다. 뭐 혼자만의 착각이다.


  지금이라면 절대 선택하지 않을 내일로지만 '이 때까지는' 괜찮았다. 적어도 내 기준에선. 언제부터 내일로는 철로를 벗어나기 시작한 걸까.


  기차의 출발을 알리는 안내 방송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심장을 요동치게 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이럴 때 이성에게 고백하면 백발백중일 텐데, 인간에게는 그런 심리가 있다지. 뭐 이딴 생각을 하고 있던 기억이 난다.



  용산역에서 출발한 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하늘의 구름이, 땅의 푸름이, 산의 능선이 만들어내는 풍경에 잠시 넋을 잃는다. 


  얼마 전 술자리에서 어떤 아이가 말했다.


나는 아직 우리나라에서 숨이 멎을 듯한 풍경을 만난 적이 없어요.


  아니다. 틀렸다. 그대들이 보지 못함을, 아니 보지 않음을 난 안다…… 어… 음, 이런 글을 쓰려던 게 아닌데. 그나저나 첫 번째 목적지가 어디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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