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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데 Feb 13. 2023

미궁

시체들은 생명을 버리지 못하고 꿈틀대고 있었다. 발을 딛는 곳마다 팔다리며 몸통, 머리가 널브러져 있었다. 뇌수와 장기에서 나온 체액들이 질펀하게 발에 들러붙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절대로 생을 놓지 못하겠다는 듯 말이다. 심장은 반쯤 찢겨서도 계속해서 수축하고, 피건 체액이건 구정물이건 상관하지 않고 뿜어 대었다. 손가락은 빠져나가는 생명을 붙잡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어지럽게 허공에서 팔락거렸다. 눈알은 두개골에 간신히 매달려 있었다. 다른 하나는 내용물이 빠져나와 풍선처럼 쪼글아들어 있었다.

모든 것이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지만, 그중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냄새였다. 신발에 스며드는 핏물이나 절단된 사지는 그런대로 적응할 만했다. 하지만 널브러진 변 냄새와 사체의 냄새, 말라붙은 피 냄새는 절대로 적응되지 않았다. 끊임없이 새로운 냄새가 이 빌어먹을 미궁에서 발생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미궁이었다. 사람 대여섯 들어갈만한 통로는 천장이 몹시도 낮아 불편했다. 어쩌면 이 발 디딜 틈 없이 쌓여있는 시체들을 치우면 꽤 높은 천장일지도 모른다. 군데군데 창백한 빛을 내는 등불이 달려 있긴 했지만, 겨우 열 걸음만 떨어져도 보이지 않았다. 미궁의 천정, 벽은 온통 피 칠갑이 되어 있었고, 사람에게서 떨어져 나온 살점들이 뚝뚝 떨어져 대었다. 그리고 아직 죽지 못한 시체들에서 나온 온기와 증기로 덥고 답답했다.

피와 땀을 닦으며,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한 번은 손가락 하나가 내 발을 잡는 바람에 꼴 사납게 넘어졌다. 시체 위라 다치지는 않았지만, 온몸에 설명하기도 끔찍한 더러운 물이 묻었다. 살이 썩어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이라면, 내가 꽤나 괜찮은 등불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쇠로 만든 등불은 무게도 가벼울 뿐만 아니라 제법 밝은 빛을 내었다. 게다가 안의 심지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쉽게 꺼지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절대 꺼지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아냐고?


이런 빌어먹을 곳에서 등불마저 꺼진다면 정말 미쳐버릴 거니까.

그래서 이 등불은 절대로 꺼지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등불이 있어야 걸음을 옮길 수 있다. 등불이 있어야 앞으로 갈 수 있다. 등불이 있어야 살아있을 수 있다. 등불이 있어야……. 등불이 있어야……

등불에 대해 생각이, 그나마 이 미궁에서 유일하게 정상적인 물건인 등불에 대해 생각하는 것,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만이 미궁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정신을 다른데 쏟거나, 멈춘다거나, 뒤를 돌아본다거나 하는 작은 행동만으로도 나는 곧바로 주저앉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지금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처럼 널브러질 것이다. 내 심장은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펄쩍펄쩍 뛰겠지만, 이미 보낼 피는 바닥에 다 흘려버리고 없을 것이다. 척추뼈는 저기 등불 어딘가에 걸려 있을 것이다. 눈알은 다른 시체들 사이에서 흔적도 없이 터져버리고, 혀는 가장 불행한 맛을 느끼며 영겁의 세월을 보낼 것이다. 뇌는 실실이 풀어져 안 그래도 어지러운 시체더미를 더 옭아맬 것이다. 내 영혼도 시체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통받을 것이다.

아냐, 생각하지 마. 등불에 대해 생각해. 등불. 가까이 손을 대면 그래도 온기가 느껴진다. 미궁의 축축하고 습한 온기와는 달랐다. 그것은 삶보다는 죽음에 가까웠다. 등불에 손을 대자 치익하고 손이 타는 소리가 났다. 살이 타는 냄새가 났다. 하지만 이상하게 아프지 않았다. 정신이 조금 맑아진 느낌이다. 게다가 미궁의 냄새보다는 좀 더 맡을 만한 냄새가 났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어떤 한 가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어째서 시체들이 조각나 있는가? 다시 한번 등불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런 생각은 하면 안 돼. 치익. 살타는 냄새가 미궁에 퍼졌다. 나는 모든 정신을 동원해서 그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왜 시체들은 짓이겨져 있는가? 아냐. 안돼. 치익. 다시 한번. 치이익.

더 이상 태울 손이 없어 팔뚝에도 등불을 가져다 대었지만,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아, 누군가 시체를 짓이기고 있구나. 시체를 거칠게 잡아 뜯고, 패대기치고, 쥐어짜는구나. 무언가 미궁에 나 말고도 있구나. 제발 생각하지 마. 미궁엔 나 말고. 아냐. 나 밖에 없어. 나는 미궁을 헤매고 있어. 오직 나만. 하지만 누군가. 생명체일까? 말이 통할까? 아냐. 나밖에 없어.


아냐. 나밖에 없어.


뒤에서 무언가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뒤를 돌아볼 순 없다. 뒤를 돌아볼까? 그러면 이 미궁에 삼켜질 것이다. 하지만 미궁이 뒤에서 나를 쫓아온다. 나를 쫓아서 먹을 것이다. 뒤를 봐, 뒤를 봐.

그러는 사이 소리는 계속해서 가까워졌다. 무언가 두 발로 걸어오고 있었다. 적어도 나보다 훨씬 클 것이다. 발걸음에 시체들이 짓눌리는 소리가 난다. 발걸음 만으로도 시체가 찢어진다. 그리고 무언가 집어 들어 산산조각 내놓는 소리가 들린다. 벽에 금속이 닿는 마찰음이 들린다.

뒤를 돌았다. 저기 등불의 빛이 닿는 어둠 너머로, 흉조가 보인다. 나는 보자마자 그것이 흉조임을 알았다. 흉조가 나를 찾아왔다. 나는 저 손에 찢길 것을 알았다. 흉조는 일말의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손뿐만 아니라 온몸으로 흉조는 나를 능욕할 것이다. 저기 흉조 몸의 흉측한 뿔에 나를 얼마간 매달아 놓을지도 모른다. 흉조가 들고 있는 저 금속 칼 - 하지만 칼이라고 하기엔 너무 컸다 - 로 나를 산산조각 낼 수도 있다.

정신을 차리니, 나는 등불을 허리춤에 끼고, 흉조로 부터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살이 타는 고통에 정신을 차린 것일 수 도 있다. 오직 집중할 것은 앞으로 달리는 것이었다. 저기 흉조를 피해서 말이다. 흉조는 그런 나를 봤는지, 쿵쿵 거리는 소리와 함께 나를 쫓아왔다. 그리고 점점 흉조와 나와의 거리는 계속해서 좁혀진다. 이제 흉조가 시체를 밟을 때 나는 뼈 부러지는 소리까지, 마치 소리가 나를 먼저 잡으러 온 것처럼 들려왔다.

아아, 숨이 턱 끝까지 찼다. 몸은 우리를 쉽게 배신한다. 다리가 시체에 걸려 몇 번이고 넘어질 뻔했다. 하지만 배신을 용인할 수 도 없는 일이었다. 몸이 배신하는 순간, 나는 죽지 못한다.


차라리 죽여줘.


차라리 공평한 죽음을 줘.


차라리 우주의 한 톨 먼지도 남지 않게 죽여줘.


아아아아, 흉조의 숨소리가 들린다. 흉조가 즐거워하고 있다. 어떻게 나를 능욕할 까 생각하는 것이겠지. 나는 달려야 한다. 흉조가 칼을 휘두르는 소리가 들린다. 짧은 시간이지만, 천장에 닿은 흉조의 칼이 돌 부서지는 소리를 낸다. 나는 흉조의 칼을 피하기 위해 몸을 날렸다. 넘어지면 끝일 테지만, 단 1초라도 더 살고 싶다. 아니, 더 살고 싶은 게 맞나?


하지만 나는 넘어지지 않았다. 그대로 몸이 허공에 붕 뜨는 느낌이 나고, 추락했다. 그리고 기절했다.

눈을 떴을 때, 나는 반사적으로 등불을 찾았다. 등불은 멀지 않은 곳, 시체들 사이에서 빛나고 있었다. 시체들은 등불을 가져가려는 것처럼 꼭 붙들었다. 나는 등불에 들러붙은 시체들을 떼어내고, 내 소중한 등불을 들었다.

그곳은 거대한 동공이었다. 동공의 벽에는 내가 통과한 미궁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몹시도 많았다.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동공의 벽이 무한히 많은 미궁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시체가 미궁에서부터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동공을 바라보았다. 동공의 끝에는 거대한 시체가 있었다. 그 시체는 다른 시체들 위에 앉혀져 있었는데, 시체의 몸에선 끊임없이 검은색 구정물이 흘러나왔다. 시체의 어디에나 끔찍하게 생긴 눈알이 달려있었고, 아무 데나 그곳엔 있어선 안될 장기들이 달려 있었다.

아, 죽어버린 왕자. 죽음의 왕자가 저곳에 있다. 아아, 영혼이 죽었지만 육체는 죽지 않은 죽음의 왕자가 미궁의 끝에 있다. 저기 죽음의 왕자가 모든 죽음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곳에 들어오는 모든 시체들은 죽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한 줌의 핏덩이가 되더라도, 죽음의 왕자가 있는 이상 이곳에서 아무도 죽을 수 없다.

그때, 죽음의 왕자의 온몸의 눈이 나를 향하는 것을 느꼈다. 그저 눈빛만으로도 살이 데일 것 같았다. 그리고 죽음의 왕자가 말하기 시작했다. 아니, 말이 아니라 울음소리에 가까웠다. 그 소리에 죽어 산산조각 난 시체들 마저 부르르 떨었다. 동공 전체가 떨렸다. 끔찍한 일이 시작되려고 한다.


죽음의 왕자에 화답한 것은 흉조들이었다. 이제 동공과 미궁이 연결된 끝자락에, 그 셀 수 없이 많은 미궁에 셀 수 없이 많은 흉조들이 울었다. 그들은 찬양하고 있었다. 죽음의 왕자를 위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죽음의 왕자와 흉조가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 죽음을 위한 찬송가를 말이다.


죽음이 다가온다.


아니, 저것은 죽음이 아니다.


나는 그저 영혼만 죽은 채로, 영겁의 시간 동안 매 시간, 모든 존재를 저주하며 죽지도 살지도 못할 것이다.


아아아아아, 죽음의 왕자가 나에게 다가온다.


이제 한 덩어리의 촉수가 되어, 나에게서 죽음을 뺏어가려고 온다. 죽음의 왕자가 온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나는 기필코 죽을 것이다.


나는 등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발등에 아주 세게 던졌다.

등불은 내 발목뼈를 산산조각 내었다. 하지만 등불도 산산조각 났다. 깨진 등불의 유리 사이로 한 줄기 불이 흘러나왔고, 불은 나를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태워갔다. 불이 내 몸을 휘감는다.

불을 보고 흥분한 흉조와 죽음의 왕자가 노도 하며 다가온다. 하지만 나는 이미 한 줄기 불빛이 되었다. 죽음이란 것은 이렇게나 따듯한 것이었다. 나는 그들의 외침을 들으며,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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