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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데 Jul 03. 2023

상자 속의 고양이를 죽이는 완벽한 방법

“얼마나 남았다고 했지?”

“셋, 다섯, 아홉…… 열두 개.”

J가 성난 손길로 가방을 뒤적였다. 가방 안에 들어있는 폭탄들은 늑대가 그르렁 거리듯 덜그럭거렸다. J는 그 그르렁 거림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아니면 폭탄 자체가 마음에 안 들던지. J는 연신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거 하나가 몇 백억이나 한다는 거지?”

나는 침묵했다. 어두컴컴한 방 사이로 한 줄기 햇살만 들었다. 햇살에 비친 먼지가 이 절망적인 침묵을 깨려는 듯 부산히도 움직였다. 먼지의 노력을 가상하게 여겼는지, J는 내 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나는 잘 모르겠어…… 그러니까, 폭탄이나 총이나, 사람을 죽일 거면 최대한 단순한 게 좋단 말이야. 그게 내 지론이야. 칼로 찌르던가. 화약이 터지던가. 뭔가 일을 벌일 땐 심플하면 심플할수록 좋다고.”

J는 그러면서 폭탄 하나를 가방에서 꺼내었다. 폭탄은 검은색 구체였다. 한 손으로 들기엔 조금 무거운 무게에, 재질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쇠 특유의 차가운 느낌이나, 플라스틱 특유의 매끈한 느낌도 전혀 없었다. 마치 내가 당신에게 레퍼런스를 줘야 할 의무가 있을까?- 하고 폭탄 주제에 나에게 묻는 듯했다.

하지만 그런 특징들은 J의 마음에는 들지 않는 듯했다.

“벌써 내가 설치하고 터트린 폭탄이 백개가 넘어. 사상자로만 치면 거의 한 작은 도시는 될 거라고. 그런 테러에 중요한 게 뭔지 알아? 정확성이야. 안정성이라고. 한 번은 내가 그 잘나신 과학자들이 만든 ‘원격 기폭’ 장치를 설치했는데 말이야 ……”

J는 그러면서 다른 한 손으로 가방에서 다른 폭탄을 꺼내었다. 그리곤 하늘로 던진 다음, 저글링을 해대었다. 미처 내가 저지하기도 전에 말이다. 폭탄이 손에서 미끄러져도 죽을 테지만, 저걸 멈추게 했다간 저 한시도 멈추지 않는 입 때문에 압사할지도 모른다. 소리에 압사하는 게 가능하다면 말이다.

나는 말없이 공중을 날아다니는 폭탄을 바라보고, 다시 세부 조정을 위해 폭탄의 다른 쌍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확히 J가 갖고 있는 것과 같은 모양, 같은 색깔의 폭탄이었다. 제 딴에는 도발이라고 했는데 내가 영 반응이 없자, J는 다시 내게 말을 걸었다.

“자, 거기까지는 이해했어. 내가 들고 있는 이 폭탄이 네가 가지고 있는 이 폭탄이랑 양자 뭐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아니야.”

“양자 얽힘.”

“그래. 얽힘. 그래서 어떻게 된다고?”

나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저런 멍청이에게 더 해줄 말은 없다. 그런다고 입을 다물 것 같지는 않지만.

“뭐라고 했었지. 그래. 대충 기억나. 그러니까 양자 얽힘 되어 있는 폭탄을 설치하면 자동으로 터진다고?”

“아니, 다른 한쪽을 확인해서 ‘터지지 않으면’ 다른 쪽이 ‘터진다’고.”

내가 참지 못하고  한 마디 하자, J는 헤실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굳이 그런 방식으로 터트리는 이유가 뭐야! 굳이 이런 복잡한 양자 폭탄 말고 간단하게 가자고.”

그때, 창 밖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쉿!”

나는 급히 J의 입을 막았다. 손으론 차가운 권총을 든 채였다. 물론 이걸로 저들을 죽일 수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권총의 차가운 금속 느낌이 마음을 달래주는 느낌이 들었다. 경비병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제발 조용히 좀 하라고. 안 그래도 저놈들 귀가 밝은 거 몰라?”

경비병이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고, 나는 J 멱살을 잡으며 말했다.

“알겠어. 알겠다고. 조용히 할 거야. 그래도 이건 좀……”

J는 시무룩해져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의 기분을 신경 쓸 때는 아니다. 나는 가방에서 마스크를 꺼내었다. 놀랄 정도로 사실적인 마스크였다. 나는 마스크의 털을 한번 쓸어내리고, 마스크를 썼다. J도 구시렁거리면서 자기 주머니에서 마스크를 꺼내어 썼다.

거울에 비쳐본 우리는 영락없는 고양이 한 쌍이었다. 심지어 수염도 움직일 수 있었다. 나는 삼색고양이, J는 고등어고양이였다.

“자 이제 장갑도 끼고, 슬슬 설치하러 가자고. 어디에 설치해야 하는지 알지?”

내 말에 J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미덥지 않았다. 이 멍청한 녀석이 무슨 짓을 저지를 줄 어떻게 알겠나?

“그래. 그래도 다시 알려줄게. 지금 나는 양자 얽힘 폭탄을 활성화시킬 거야. 그리고 너는 이곳 궁전을 돌아다니면서  한 개의 기둥마다 폭탄을 하나씩, 최대한 자연스럽게 내려놔. 그리고 나한테 신호를 주면서 멀리 피해. 그럼 쾅!”

쾅-이라는 단어에서 J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물론 이 양자폭탄은 그렇게 작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까지 말해줄 필요는 없겠지.

“이 빌어먹을 코펜하겐 고양이들을 몰살시킬 수 있는 거지.”

침묵 사이에 내 말을 이어 J가 말했다.

“그래…… 그렇지.”

나는 양자 얽힘 폭탄을 가동했다. 나무 상자 어디선가 삐- 하는 소리가 들렸다.

“절대로 열어보면 안 돼.”

폭탄을 건네주며 J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알았어.”

J가 떠나고, 나는 양자 얽힘 폭탄의 다른 쌍을 꺼내었다. 겉으로 보기엔 J에게 건네준 폭탄과 똑같이 생긴 상자였다. 하지만 이 폭탄은 J가 가져간 폭탄과 완전하게 얽혀있다. 이제 J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자, 어디선가 긴 꼬리도 요새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약속했던 신호였다. 나는 재빨리 폭탄의 상자들을 열었다. 상자의 폭탄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일단 양자적으로 얽힌 폭탄의 다른 쌍은, 기폭을 시작했을 것이다. 나는 주머니에서 스톱워치를 꺼낸 다음 시간을 재었다. 앞으로 5분이면 이 왕궁은 쑥대밭이 될 터였다. 그전에 이 상자에서 나가야 했다.

나는 자리를 뜰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J가 돌아왔다.

“어때? 잘 작동했어?”

J가 쾌활하게 말했다. 고양이 탈을 쓰고 말하니 진짜 칭찬받고 싶어 하는 고양이 같았다.

“안 도망치고 뭐 해! 그냥 도망치라니까.”

“5분 남았다면서”

그때, 골목 모퉁이 저편에서 고양이들 소리가 들렸다. 필시 무언가 대단히 흥분한 듯하였다.

“설마 저것들을 끌고 온 거야?”

“아… 아냐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하지만 J의 말이 무색하도록, 경비 고양이들은 우리가 있는 곳까지 바투 다가왔다. 이런 젠장. 여기서 잡혀가는 건가? 이렇게 허무하게?

나는 일단 양자 얽힘 폭탄을 다시 챙겨 가방에 넣었다. 여차하면 도망쳐야 했다.

고양이들이 우릴 발견한 건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고양이가 소리쳤다.

“슈뢰딩거다! 여기 슈뢰딩거가 있다! 우리를 상자에 가둔 원수!”

젠장 - 하고 J와 짧은 눈빛을 주고받은 뒤 우리는 전 속력으로 달렸다. 폭탄이 덜그럭 거렸다. 뒤에는 고양이들이 쫓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대단히 불행하게도 사람은 고양이의 속도를 넘지 못한다. 얼마 안 가 잡히게 될 것이다.

J는 이것마저도 즐거운지, 웃고 있었다.

“이봐, 잘 터지는 것 맞겠지?”

J는 숨도 안 차는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문제…… 헉……. 없어……”

“그래, 나도 잘 확인했어. 잘 터질 거야.”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뭐라고?”

“잘 터질 거라고.”

“아니 그전에.”

“확인했다는 거?”

“열어봤어?”

“어…… 그냥 나는 잘 있나 확인하려고……”

“에잇.”

나는 이제 지척까지 다가온 고양이들에게 가방을 통째로 던졌다. 가방의 상자가 깨지면서 둥근 폭탄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고양이들은 우리를 쫓다 말고 삐져나온 폭탄을 쫓아갔다. 그리고 잠시 뒤, 펑하는 소리와 함께 방금까지 가방이 있었던 자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우리는 무사히 도망쳤다. 다시는 J와는 일을 하지 않을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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