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여름휴가
4. 여름휴가 (1)
피터가 휴가를 가고 싶어 했다. 부동산경기가 좋지 않아 피터는 벌써 여러 달 수입이 적었다. 게다가 착한 피터는 그동안 사람들에게 도움을 많이 주었는데 그 사람들이 다 어려워지고 있었다. 최근 들어 피터가 환하게 웃는 것을 못 보았다. 이모는 가계부를 뒤져보며 휴가를 갈까 말까 여러 날 고민했다.
지금은 휴가철이다. 이참에 아예 나라를 떠나보겠다는 사람들로 공항은 연일 붐비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산과 바다로 가기 위해 짐을 꾸려 도시를 떠났다.
사실, 휴가의 달콤한 유혹은 여름 내내 사람을 들뜨게 한다. 하루 종일 뜨겁게 달구어지는 아스팔트와 건물 속에서 시멘트 벽을 통해 한겹 걸러 전해져오는 후덥지근한 공기는 스트레스를 가중시켰다. 훌훌 벗어젖힌 채 작열하는 태양열을 머리에 얹고 아무런 여과 없이 뿜어져 나오는 여름의 더위를 만끽하겠다는 욕망을 어느 누가 갖고 있지 않겠는가.
피터는 미칠 것 같다는 표정으로 휴가를 원했다. 이모는 그런 피터가 가엾다는 표정이 반, 어이없다는 표정이 반, 그리고 반과 반을 빼면 남는 퍼센트도 없는데 있는것 같은 뭔가가 있어 그냥 전체적으로 불안한 표정으로 보았다. 이모의 불안한 표정은 집안에 쉽게 전이되어 우리도 덩달아 불안했다.
우리의 불안함을 눈치 챈 이모는 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다. 이모의 결정 이유는 너무 많은 영향력을 가진 엄마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다만 여행을 떠나기 전 이모는 한 가지 조건을 발표했다. 돌아와서 이모가 작성한 독서목록의 책들을 읽는 것이었다. 이모가 독서목록을 만든 이유는 마리 때문이었다.
마리는 그즈음 하이틴 소설에 재미를 붙여서 읽더니 습작 노트를 만들어 소설을 직접 쓰기 시작했다.
글 쓰는 마리를 대견해 하던 이모는 어느 날 습작 노트를 보고나서 이렇게 감각적인 언어를 5학년이 쓰는 것에 대해 걱정을 했다.
나는 이모에게 학교에서 준 학년별 도서 목록표를 주었다. 이모는 그걸 보고 더 걱정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우리의 일그러진 영웅을 중학생이 이해 한다는건 말도 안 돼. 이건 상하좌우 계급으로 본 인간의 본성에 근거를 둔 거야 라고 말했다. 좁은 문도 마찬가지야 라고 소리치면서 이건 마리가 읽는 초등생의 하이틴 소설처럼 수준의 오류라고 했다. 이모는 어른 도서를 어린이와 청소년 도서에 넣는건 무식의 결과라고 분개했다. 아동도서와 어른도서 사이에 읽을 것이 별로 많지 않은 것은 그 나라의 수준이라고 열변을 토 한 후에 직접 목록을 만들었다. 나는 이모의 독서목록이 좋았고 기대되었으며 모두 찬성했다.
우리는 여행을 떠나기로 하였다. 가장 기뻐한 사람은 물론 피터였다.
어디로 가느냐는 질문에 피터는 어디를 가는 것보다 누구랑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 말은 참으로 듣기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