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반 여자 아이들의 관계 지도가 흔들리고 있다.
학기 초에 맺었던 관계망이 분해되고 다시 연결되면서 커다란 하나의 무리로 모이게 되었다. 이는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다. 보통 학기초에 만들어진 무리가 학년이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무리들 안에서 멤버가 교체되기도 하지만 빈번하게 일어나지는 않는다.
나는 몇몇 친구들끼리만 친하게 지내려는 단결이 다른 친구들과 친해질 기회를 뺏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열린 관계가 될 것을 요구했다. 그래서인지 무리를 짓더라도 여러 친구와 두루 친하게 지내는 마당발 역할을 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런 아이들 중심으로 우리반 모든 여자아이들이 한 무리로 뭉치게 된 것이 아닐까 한다. 한 무리가 된 아이들은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 우르르 몰려다니며 할만한 놀이들을 찾았다. 나는 아이들의 담임으로서 이 상황을 그저 흥미롭게 바라볼 수만은 없었다. 불안한 지점이 많았다.
우선 무리가 커진다는 건 갈등 요소가 많아진다는 뜻이다. 비슷한 성향의 아이들끼리 뭉치더라도 의견 다툼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열명이 넘는 여학생들이 함께 몰려다니면 갈등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또 무리가 커지면 자연스럽게 문제 해결과 의사소통 과정에서 소외받는 친구가 생긴다. 간단하게 어디서 뭐 하고 놀지 정하는 문제도 열 명이 넘어가면 주도적인 아이들 몇 명이 의사결정권을 독식한다. 이 아이들이 의사결정을 마치면 다른 아이들은 분위기에 휩쓸려 수긍하지만 때때로 그것이 불만으로 남는다.
가장 큰 문제는 무리가 커지면 구성원 개개인들의 관계는 약해지는데 반해 전체 무리의 힘은 세진다는 것이다. 더 이상 아이들은 서로가 너무 친해서 같이 다니는 것이 아니다. 무리가 커진 만큼 덜 친한 친구가 많아졌지만 이 무리에서 벗어나면 완전히 외톨이가 되기 때문에 함께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 커다란 무리는 풀로 붙여놓은 듯했다. 소외되고 싶지 않은 불안함은 누구도 소외시키고 싶지 않은 선의와 만나 그저 잠시 있었을 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관계들이 떨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A는 B는 좋지만 B와 친한 친구인 C의 행동에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H는 별로 친하지 않은 Y가 자꾸만 선을 넘는 장난을 치는 게 싫었다. 갈등 하나가 터지면 그 주변의 모든 친구들이 영향을 주고받았다. 여자 아이들 특유의 섬세함과 여린 마음들이 망설이고 좌절하고 상처받고 또 상처를 준다.
나는 아이들의 교우 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 가능하면 빨리 개입하는 걸 선호한다. 빨리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쉽게 해결되는 문제도 있다. (물론 그럴 때조차 섬세해야 한다.) 그러나 교사가 개입할 수 없고, 또 개입해서도 안 되는 문제들도 존재한다. 그냥 뒷짐 지고 지켜보는 게 좋을까? 그럼에도 전체 아이들을 대상으로 친구와 우정에 대한 조언을 해주면 어떨까? 국어 수업을 하는 척하며 내 생각을 제시문으로 읽혀보는 방법도 있다.
관계의 문제는 결국 경험해보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다. 상처 주고, 상처받고, 고민해 보면서 성장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실패 경험은 상처로만 남기도하고, 실패 경험이 반복되어 상처가 쌓이면 좋은 방향으로 성장하기 어려워지기도 한다. 상처를 피할 수는 없다. 나는 우리 어린이들이 적당히 상처받길, 상처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길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