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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미잘 Sep 01. 2024

육아는 힘들지 않다

삶이 힘들 뿐

처남의 차를 얻어타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늦은 밤 처남의 차는 쾌적하고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였을까? 처남이 불쑥 물었다.


"육아 하느라 힘드시죠?"

"아냐, 안 힘들어."

"에이, 힘드시겠죠. 애기 보는 게 얼마나 힘든데요."


처남은 능청스럽게 나를 격려해주려 했으나 나는 정말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육아 전문가나 육아 천재가 아니다. 스스로 육아 체질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아이는 이해할 수 없는 말로 이해할 수 없는 요구를 하고 이따금 고집스럽게 떼를 쓴다. 아이를 위한 반찬과 아이를 위한 간식을 준비하고, 청소하고, 아이의 옷을 따로 빨아내느라 집안일이 배로 늘어난다. 그리고 집안일을 하려고 하면 아이는 자꾸 내 곁을 맴돌며 집안일을 방해하기 일쑤다. 육아는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어차피 삶은 날 지치게 만들었으므로 육아를 힘들다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힘들다면 그건 육아가 힘든 게 아니라 그냥 삶이 힘든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키우기 전에는 힘들지 않았나? 아이를 키우기 전에는 시간이 남는 만큼 무언가를 하려고 했다. 생산적인 일을 하든 소비적인 일을 하든 잠자리에 들 때면 항상 피곤했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고 낮잠을 자도 그저 피곤했다. 때로 가만히 누워 이렇게 커다란 몸을 유지하는데 피곤하지 않을리 없다고 생각했다. 몸이 있으면 우리는 피곤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거라고. 


아이를 키우는 축복스러운 일에 꼭 이익과 불이익을 따져야겠냐마는 간단하게 요약하면 아이를 키우는 일은 행복하지만 피곤했다. 어떤 일이 이익만 있다면, 혹은 불이익만 있다면 선택상황에 놓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익과 불이익이 동시에 있다면 그것은 선택할만한 거리가 된다. 그러니까 육아는 내가 선택한 길이다. 내가 선택한 길을 받아들이는 것은 내게 당연하게 느껴졌다. 나는 받아들이는 것이 익숙하므로 애쓰신다고 위로하는 처남의 말이 와닿지는 않았다. 


스스로 선택한 일이면 모두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힘들다고 해도 삶을 거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렵게 생각할 없다. 아이를 낳는 것도, 아이를 낳지 않는 것도 그저 살아가는 뿐이다.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지. 2월에 태어나는 둘째를 기다리는 지금. 스스로에 대한 다짐인지, 응원인지, 위로인지 모를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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