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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갑낫을 Aug 08. 2022

월급 3번 받는 여자 (上)

퇴근하고 삼백벌기


재택근무 3년 차에 접어드는 올해, 거리두기가 해제되었지만 근무제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재택근무를 하는 게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나는 우주의 계시를 받아들여 리모트 근무제를 선택했다.


회사와 집을 오고 가는 그 비효율적인 출퇴근 시간이 정말 못 견디게 싫었고, 경기도로 이사를 온 이후에는 출근하느라 두 시간을 운전하고 나면 진이 빠져서 출근하자마자 집에 갈 걱정에 눈물이 앞을 가렸는데..


근무방식을 내가 선택할 수 있고, 원하는 장소에서 일을 할 수 있다니! 진심 온 우주가 나란 존재를 사랑하는 게 확실하다고 느껴지는 일이었다. (물론 풀재택이라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일주일에 한 번씩은 출근하게 된다.)


아무튼 재택을 하게 되니까 하루에 출퇴근으로 버리는 4시간, 일주일로 따지면 영업일 기준 20시간이나 여유가 생겼다. 이 시간을 어떻게든 잘 쓰고 싶어졌다. 비개발자지만 나도 사이드 프로젝트란 걸 해보고 싶어 졌달까.


무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첫 직장 마케팅팀 동기들이 하나둘씩 자기 브랜드를 만들어 스마트 스토어를 운영하는 걸 보고 나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성공을 경험해야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스마트 스토어 창업은 관련 전자책, 유튜브 콘텐츠만 보더라도 단기간에 몇천을 벌었네, 몇억을 벌었네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들은 본인의 노하우를 일부 공개함으로써 스마트 스토어를 홍보하고, 콘텐츠 수입까지 얻고 있다.


나는 그들의 콘텐츠를 보며, 스마트 스토어로 얼마를 벌었느냐 보다 자신만의 노하우를 가지고 제2의, 제3의 콘텐츠를 재생산해내는 그 순환 구조가 더 마음에 들었다. 그야말로 잠을 자고 똥을 싸면서도 돈을 버는 구조니까.


암튼 스스를 시작해야겠다는 결심 이후, 남편과 나는 어떤 아이템을 팔고, 어떤 브랜드를 만들 것인지에 대해 밤낮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단순히 상품을 떼와서 파는 게 아니라 우리만의 브랜드를 만들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1. 우리가 가장 재미있게 하는 활동과 관련이 있어야

2. 밤새 고민을 해도 즐거울 것이다.

3. 술과 골프!


술과 관련된 걸 하면 우리가 마셔버리는 게 반 이상은 될 것 같아 제외하자, 골프가 당첨됐다. 그 이후 골프 용품부터 웨어, 양말, 잡화 등등 온갖 것들에 대한 아이디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머리를 강타한 아이디어가 있었으니.. 바로 사진 찍기 좋은 골프 간식 세트였다. 준비성이 그리 좋지 못한 우리 부부의 특성상 막걸리를 얼려갈지언정 간식을 준비해 가는 적은 없었다는 점.


그래서 매번 골프 가기 전에 편의점을 다 털어버리거나, 골프장 주변에 편의점이 없으면 낙심을 했던 점. 동반자가 간식을 준비해오는 날이면 그렇게 감동스럽고 고마울 수가 없었던 점.


미쳐버린 그린피에 야간 라운딩을 자주 다니다 보니 늦은 시간엔 그늘집 마저 문을 닫는 경우가 많고, 후반엔 배고파 뒤질뻔한 상태로 겨우 치느라 힘들었던 점이 내 아이디어의 뒷받침 근거가 되어주었다.


게다가 라운딩을 나가면 그 대자연 속에서 아무리 사진을 안 찍는 사람일지라도 꼭 몇 컷씩은 사진을 찍게 되는데, 사진 찍기 좋은, 사진 찍고 싶어지는 골프 간식 세트가 있다면 너무 좋을 것 같았다.


오빠와 나는 철저히 우리와 결이 비슷한 골퍼들을 타겟으로 제품을 구성하고, 브랜드 명을 정하고, 이전에 캐릭터 사업을 할 거라면서 오빠가 기획해둔 아이를 전면에 내세우기로 했다.


문제는 포장 박스였다. 기존 구디백과는 확실한 차별화를 두고 싶었다. 그때 또 내 머리를 강타한 아이디어가 있었으니.. 근래 들어 엄청 주문했던 도시락 레터링 케이크와 그걸 매번 행복하게 찍어 올리는 나 자신이 떠올랐다.


도시락 케이크 포장에 컬러풀한 간식을 넣고, 귀여운 우리 캐릭터 띠지를 두른다면? 생각만으로도 짜릿했다. 그냥 뭔가 떠오르는 생각들, 흩어져있던 무언가 들이 퍼즐 조각처럼 맞아떨어지는 느낌..



남의 돈이 아니라 내 돈을 벌려고 하는 고민은 이렇게 하나하나 재미있구나! 직장생활 10년 만에 처음 느끼는 행복감이었다. 이 행복을 왜 모르고 살았지? 작고 소소한 것으로부터 느껴지는 알알의 행복감이 온몸에 스며들었다.


결론적으로 스스를 시작해보니 단기간에 몇천의 매출은 없었다. 한 건, 두 건, 소소하게 들어오는 주문에 아직도 남편과 나는 호들갑을 떤다. 어쨌든 우리는 하나의 브랜드를 세상에 도출했다.


월급 외에 파이프라인을 하나 만들어 두었다는 것, 그것이 이렇게 든든한 지원군이라니! 그렇게 월급이 두 번 들어오게 되자, 세 번, 네 번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바로 다음 작업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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