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 내 주변 지인들을 끌어들여 에피소드 넘치게 일했던 알바이자, 예상보다 많은 돈을 벌기도 했던 토익 팔이.
토익 팔이는 학생회와 계약이 성사된 대학교에 찾아가 신입생들을 상대로 일 년 내내 들을 수 있는 토익 인강 프로그램을 파는 알바였다.
당장 그 자리에서 돈을 받고 토익 강의를 파는 건 아니었고, 기본 출장 급여에 학생들의 DB 수집 장수에 따라 돈을 받는 형태였다.
문제는 당장 대학교 입학해서 술 마시고, 미팅할 생각에 들떠 있는 신입생들에게 토익 인강을 들으라고 하면 그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다는 거였다.
내 신입생 시절만 떠올려봐도 이걸 그냥 팔면 절대 안 먹힐 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나는 그나마 관심을 끌 수 있을 만한 스토리를 들려주자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토익 팔이를 위한 각자의 20분짜리 세일즈 대본을 짜고, 알바생들끼리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현장에 투입되었다.
당시만 해도 대학교 입학하면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가 기본 로망이었기 때문에 미리 준비해서 다녀온 친구들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직접적인 예시를 들며 상상하게 만드는 게 나의 세일즈 포인트였다.
그리고 영어 잘하는 내 동기들은 군대도 그냥 가지 않고 카투사 가서 또 얼마나 다른 삶을 사는지, 그 경험이 취업까지 어떻게 이어지는지 썰을 풀었다.
당시 나는 내돈내산 동기부여 강연을 다니며 많은 영감을 받곤 했는데, 그것 덕택인지 비전헬퍼에 빙의해 침을 튀겨가며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끌어갈 수 있었다.
화룡점정은 그럼 이 토익 강의를 왜 지금 꼭 등록해서 들어야 하는지 설득하는 거였는데, 수능을 본 지 얼마 되지 않은 지금이 뇌 효율이 가장 좋다고 설득했다.
제가 대학교 3학년부터 토익 공부하려다가 진짜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요. 신입생 때부터 너무 술 마시고 놀았더니 아무리 공부해도 점수가 그대로인 거야..
이걸 저도 미리 알았다면 그렇게 고생하지는 않았을 텐데.. 저 이제 진짜 취업해야 하는데 지난주에도 토익 보고 왔잖아요.
여기까지 말하면 미래를 고민하는 몇몇 친구들은 이미 미리 나누어 주었던 토익 인강 프로그램 전단지 아래에 본인 이름과 연락처를 적고 있다.
그때 직접 본인의 정보를 적어냈던 수많은 친구들은 토익 공부를 열심히 했을까? 내가 해준 이야기가 도움이 되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그냥 돈을 벌기 위한 알바로만 치부하기엔 아까운 기회라 느껴졌다. 수도권 주요 대학교를 돌아다니면서 이제 막 대학생활을 시작한 후배들에게 내 경험을 들려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해서였을까.
예상보다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고 아직도 가끔 나의 이야기에 눈을 반짝여 주었던 친구들의 눈빛과 분위기가 떠올라 가슴이 뻐렁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