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길 그림쟁이로 태어났다고 확신했다. 교과서의 작은 여백, 빈 종이를 보면 항상 그림을 그렸다. 위인전에 나오는 삽화를 따라 그리고, 만화영화나 영화를 보고 비행기, 자동차 등을 상상하며 미래에는 이런 게 나오지 않을까? 하며 그렸다. 가족들 사이에선 난 그림 꽤나 그리는 아이였다. 공부는 못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예술중학교에 가고 싶어 미술학원에 갔다. 처음 본 사각형, 삼각뿔, 원기둥 석고상, 온갖 석고상, 물감 냄새, 종이 냄새, 원장님 책상 위에 놓인 에펠탑 배경의 사진이 묘하게 좋은 느낌이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원장님이 그림 그리는 걸 보더니 넌 구성하지 말고 수채화 해야겠다.라고 말씀하셨다. 아, 난 뭔가 멋있는 것 같은 디자인을 하고 싶은데 왜 수채화를 하라고 하시지?라는 생각을 하며 아무튼 그때부터 수채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다 보니 맞는 것도 같았다.
그때부터였다. 나중에 유화로 나만의 그림을 멋지게 그리는 서양화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꾼 게. 1년 정도 그림을 그리다 예술중학교에 지원했다. 떨어졌다. 형편없는 성적 때문이었을 거라 생각된다. 아무튼 그림만 잘 그린다고 해서 원하는 학교에 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첫 번째 큰 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