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동네에 서커스가 들어왔다. 할머니는 소문을 들으셨는지 나를 서커스장에 데려가셨다. 낡고 큰 천막 안에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멍석 위에 앉아 있었고 좀 있다 보니 변사가 진행하는 심청전이 시작됐다. 극이 끝나고 약 파는 아저씨가 나와 약 광고를 했다. 할머니는 사지 않고 얼마간 구경하다가 나왔다.
할머니 손 잡고 함께 걸었던 황량한 길이 생각난다. 말씀이 없으셨던 할머니는 묵묵히 걸으셨다. 그래도 나는 할머니와의 동행이 좋았다. 그날 할머니가 나를 서커스장에 데려가지 않았으면 난 여태 한 번도 못 봤을 거다. 손주 놈 볼거리 챙겨 준다고 간 서커스. 그날이 아주 가끔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