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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상혁 Oct 06. 2024

생태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라

향린공동체 생태정의 공동선언

강남향린교회, 섬돌향린교회, 들꽃향린교회, 향린교회로 이루어진 향린 공동체는 2023년 8월 20일 생태정의 공동선언을 추진하기로 결의한 이후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다양한 실천과 토론 그리고 숙의 과정을 통해 생태정의 공동선언의 초안을 완성하였습니다. 생태정의 공동선언은 1. 전문, 2. 선언, 3. 실천다짐으로 구성되며, 현재 완성된 부분은 전문과 선언입니다. 생태정의 공동선언은 두 가지 면에서 과거의 선언과 다릅니다. 첫째,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실천다짐 부분은 각 교회별로 교회가 처한 상황을 반영하여 완성하게 됩니다. 둘째, 생태정의 실현의 위급성을 고려하여 매년 연말 향린 공동체의 생태정의 공동선언 실천여부를 점검하고 교회 대내외적로 변화된 상황을 반영하여 선언을 갱신합니다. 따라서 생태정의공동선언은 완성된 선언이 아니라 매년 조금씩 진화해 나가는 선언입니다.



향린공동체 생태정의 공동선언


1. 전문


지금 우리 앞에 빈 의자가 있다. 그 의자는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나이가 어린 사람,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 그리고 지구에 있는 인간-너머-존재를 위한 자리다. 목소리가 없는 존재들이 목소리를 갖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생태정의다. 


누구나 좋은 삶을 살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 좋은 삶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주어져야 한다. 성별, 나이, 국적, 피부색, 장애의 여부, 사회경제적 배경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공정한 삶의 조건을 보장받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좋은 삶’이라는 것을 자격이 있는 자, 능력이 있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희소재로 여기고 있다. 소수의 승자를 위해 다수를 패자로 만드는 무한경쟁과 낭비의 체제, 인간의 탐욕을 위해 지구 생태계를 수탈하는 지속불가능한 상황. 이것이 생태정의가 실종된 근본적 원인이다. 

  

생태정의 공동선언은 바로 이러한 경쟁과 낭비의 체제를 걷어내는 전환의 선언이며, 인간과 인간-너머-존재의 공존과 공생을 추구하는 해방과 정의의 선언이다.

  

향린 공동체는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 놓은 물신주의와 경쟁 체제 그리고 약자 소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에 대해 깊이 회개한다. 우리는 생명의 근원인 태양과 바람과 물의 공공성을 인식하는 교회, 기후변화로 인하여 인간과 인간-너머-존재가 겪고 있는 고통과 억압에 저항하는 교회, 그리고 공멸의 산업문명을 반대하고 상생의 생태문명으로 전환하는 교회로 나아갈 것이다. 이에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2. 선언


첫째, 우리는 미래를 빚내어 쓰고 있다. 덜 소비하면서도 더 풍요로운 순환적인 삶과 경제활동으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한다. 


[해설] 2024년 ‘지구 생태용량 초과의 날’은 8월 1일이다. 이는 인류에게 주어진 지구의 자원을 8월 1일 모두 써버렸다는 뜻이다. 8월 1일 이후부터 연말까지는 미래세대가 사용할 몫을 빼앗는 것이다. 향린 공동체는 민중의 해방이라는 관점에서 폭압적인 독재권력에 저항하고 투쟁한 빛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인간 너머의 존재들을 포괄하는 생태적 해방이라는 관점에서 탐욕을 부추기고 착취를 정당화하는 소비 자본주의의 독재에 저항하고 투쟁해야 한다. 이것은 지속가능성의 원칙 속에서 덜 소비하면서도 더 풍요로운 대안적 삶을 탐색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둘째, 우리는 기후위기의 최전선에서 재난을 먼저 맞닥뜨리게 될 기후 약자들과 동행한다. 


[해설] 기후위기의 최전선에서 기후 재앙을 온 몸으로 마주하게 될 기후 약자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폭염/혹한 속에서도 냉방/난방 장치를 켤 수 없는 사람들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노숙자, 장애인, 어린이와 노인은 기후 재난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뿐 만이 아니다. 기후변화로 인하여 삶의 터전을 잃은 난민들과 인간 너머 존재들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열대우림 파괴와 자원개발 및 수탈에 맞선 전세계 토착민들과 민주 정부들, 그리고 해당 지역의 기독교 교회들과 그 밖의 종교인들의 투쟁에 연대해야 한다.


셋째, 우리는 화석연료 중심의 발전부문과 산업부문을 재생에너지 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한다. 


[해설] 대한민국 온실가스 배출 총량 중에서 발전부문과 산업부문에서 배출하는 양이 압도적이다. 2022년 대한민국의 온실가스 배출 총량은 약 육억오천사백오십만 톤(CO2eq)인데, 이 중에서 발전 부문 배출량이 약 이억천삼백구십만 톤(CO2eq), 산업 부문 배출량이 약 이억사천오백팔십만 톤(CO2eq)으로 두 부문의 배출량이 전체 배출량의 70%에 이른다. 개인의 실천을 넘어 우리 사회의 에너지 체계와 산업 시스템 전반을 정의롭게 전환해야 하는 이유다. 


넷째, 우리는 도시를 자동차와 도로로부터 해방시키고 보행 약자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걷기 좋은 도시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해설] 2022년 수송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은 9천 7백 8십만 톤(CO2eq)으로 산업 부문과 발전 부분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수송 부문의 확대는 도로의 확대로 이어져 인간과 인간 너머 존재들의 이동권을 제약한다. 따라서 노인, 어린이, 장애인 등 보행 약자도 걸어서 또는 자전거나 휠체어로 안전하게 문화·의료·교육·복지·여가 시설에 접근할 수 있는 도시를 설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걷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것이 최선이다. 자전거 전용도로 확대가 그다음, 버스 전용차선 확대가 마지막이다. 


다섯째, 우리는 기존 건물은 그린리모델링으로, 새 건물은 제로에너지건축으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한다.


[해설] 제로에너지 건축물은 건물에서 에너지를 사용한 만큼 에너지를 생산해서 에너지 사용과 생산의 합이 제로가 되는 건축물을 의미한다. 이것은 고단열, 고기밀 외벽 및 창호와 같은 패시브 기술을 활용하여 건물의 부하를 줄이고, 태양광 발전, 지열, 연료전지와 같은 신재생에너지 설비, 고효율 냉난방 기기 및 열교환 장치 등의 액티브 기술을 통해 건축물에 필요한 에너지를 충당하는 건축물이다. 향린 공동체 교회는 장기적으로 화석연료와 원자력으로부터 자유로운 태양과 바람과 물의 교회를 지향해야 한다. 


여섯째, 우리는 먹거리 세계화를 반대하고 자급자족과 로컬푸드 운동을 꾸준히 실천한다. 


[해설] 대한민국의 식량 자급률은 23%에 불과하다. 단일 경작 체제를 바탕으로한 식량의 산업화와 세계화는 그 자체로 생물 다양성을 훼손하고 식량의 이동 과정에서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시킨다. 소의 사료를 공급하기 위해서 또는 바이오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 남아메리카의 울창한 숲이 무차별적으로 파괴되는 것도 크나큰 범죄 행위다. 숲을 터전으로 살아온 원주민들과 인간 너머 존재들의 보금자리를 강제로 빼앗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급자족과 로컬푸드 운동을 지속적으로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 


일곱째, 우리는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동물 학대와 공장식 축산을 반대한다. 


[해설] 땅에서 사는 대형 포유류들은 대부분 ‘가축화’되었다. 현재 육지 포유류의 62%는 인간이 키우는 가축이고 34%는 인간이다. 야생 포유류는 4%에 불과하다. 특히 이를 가능하게 한 공장식 축산 시스템은 가축화된 동물들에게는 살아있는 지옥이다. 태어나자마자 엄마로부터 떨어져 어둡고 비좁고 더러운 공간에서 사료만 먹다가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도살장으로 향하는 것이 돼지의 운명이 되어버렸다. “공장식 축산은 역사상 최악의 범죄 중 하나”라는 인식 속에서 향린공동체는 공장식 축산, 더 나아가 동물 학대에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


여덟째, 환경 파괴로 기후 위기를 초래하고 미래를 빚 내어 쓰고 있는 기성세대는, 기후 재난의 가장 큰 피해자인 나이가 어린 사람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들에게 잘못을 고백하고 인정하며, 생태정의 실현을 위한 교육과 행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실천한다.


[해설] 지난 8월 29일 헌법재판소는 국가가 2031년부터 2049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세워 두지 않은 현행법(탄소중립기본법)이 헌법에 불합치한다고 판결했다. 지난 2020년 3월 세계보건기구가 코로나 팬데믹을 선언한 직후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이 "기후위기 방관은 위헌"이라고 외치며 제기한 기후헌법소원에 대하여 헌법재판소가 4년 만에 위헌성을 인정한 것이다. 아시아에서는 최초의 사례다. 이처럼 우리는 미래세대를 가르칠 수 없으며 오히려 그들에게 배워야 하는 처지이다. 기후위기 앞에서 기성세대는 겸손한 학생이 되어야 한다. 생태정의 실현을 위한 교육과 행동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애도 속에서 전환의 축복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희망의 연대를 일구는 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향린교회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tfmwKEYBxX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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