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의 세월이 전하는 인생 수업
책을 처음 알게된 건 SNS의 광고 때문이었다.
여느 책 광고와 같이 (인상 깊다고 여겨지는) 책의 일부분을 발췌해서
광고를 접하는 자로 하여금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도록 해놓은, 그저 그런, 평범한 광고였다.
그들의 의도대로 나는 '언젠가 읽어봐야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방점은 '언젠가'에 찍혀있었지만.
그후, 나로 하여금 책을 즉시 결제하도록 한 건 편집자의 서평이었다.
사실 고백부터 하자면, 이 책은 만든 이로서는 매우 부끄러운 책입니다. 계산이 다분히 앞섰던 책이었으니까요. 이 책은 멘토가 절실한 시대, 그러나 참된 멘토를 만나기 너무나도 어려운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내 아비의 일기장’과 같은 느낌으로 작가의 소소한 일상 속에서 얻은 통찰을 전하면 의미도 있고 잘 팔리지 않을까, 그저 얄팍한 계산으로 시작한 책이었습니다.
그렇게 김욱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오랜 기간 언론사에서 일하셨고, 일흔이 넘어서야 진정으로 자신이 원했던 ‘작가의 길’을 걷고 계신 분이었기에 애초의 의도와도 잘 어울리는 분이었습니다. 원고 청탁을 드렸고, 원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원고를 받아보고는, 두려움이 덜컥 앞섰습니다. ‘이 책을 우리가 내도될까?’ 싶은 마음과 함께 말이죠. 애초에 기대했던 아버지의 일기장이라기보다는…… 뭐랄까요, 죽음을 앞둔 한 노인의 유언장과도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얄팍한 머리로 상상했던 그런 수준의 글이 아니었습니다. 가슴을 마구 때리다 못해 울리는 그런 글이었으니까요. 마흔이 넘은 제가 감히 범접하기 힘든 세월의 깨달음이 그의 삶 속에서 후회와 반성이라는 큰 이야기 줄기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만드는 과정도 힘들었지만, 이 책을 소개하는 글 역시 매우 고민스러웠습니다. 감히 마흔이 갓 넘은 제가 노년과 죽음, 이상과 꿈, 현실과 일, 아비와 아들, 외로움과 고독, 인간의 욕망과 같은 삶을 관통하는 묵직한 주제들로 이루어져 있는 그의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손에 잡히지 않았으니까요.
이 책을 권합니다. 특히 산다는 것의 재미와 긴장에 무감각해진 저와 같은 많은 이들에게 말입니다.
- 이 책의 에디터
편집자는 글의 첫 문장을
듣는 사람조차 부끄러워지는 고백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책을 읽기 시작한 나는,
왜 그가 부끄러운 고백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 것 같았다.
어설픈 허세와 겉치레를 초라하게 하는 힘이
여든의 세월을 안고 새겨진 문장 안에서 또렷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은 나의 기억 속 그 어떤 얼굴과도 닮지 않았다.
상상으로라도 그려냈던 모습이 아니다.
나는 원하던 삶을 살지 못하였고, 동시에 기대하지 못했던 삶을 보상받았다.
인생은 나를 극단의 좌표들로 이끌었다.
세월은 언제나 낯설었고, 나는 사람들에게 끝내 익숙해지지 못했다.
거기에 계획된 순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생존과 종말이 찰나로 교차하는 치열한 긴장, 그때마다 나의 삶은 조금씩 본래 생김에서 허물어져 버렸다.
누군가의 흉터로 위로를 받는다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누군가의 절망에서 희망을 발견해냈다는 환호는 그 누군가에게는 다시없을 수치가 된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 잔인한 수치를 향해 또박또박 글자를 새겨나가고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에서 이것이 마지막 수치이기를 아무쪼록 간절히 기도하면서 말이다. (중략)
경험이 답이 될 수 없음을 숱하게 겪어온 자로서
내가 원하는 바는 오직 단 하나, 내가 사라진 뒤에도 나의 수치와 절망이
삶이라 불리는 질서 속에서 되풀이되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당신들이 읽게 될 이야기는 어느 오래된 인간이 탐하고 있는
지극히 이기적인 불멸에의 욕망이다.
그 욕망이 늙고 병든 한 인간을 살아남게 만드는 생명의 근원임을 밝혀두는 바이다.
이 욕망의 재물이 된 데에, 나는 일말의 후회도 없다.
(프롤로그 중)
누군가는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고 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50여 년의 세월을 나보다 앞서 살았던 어떤 사람이 고백하고 있다.
'지금도 흔들리고 있다'고.
이쯤되면 나는 '애초에 어른이 된다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라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그 질문은 '어른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혹은 '흔들리지 않는 것은 아름다운가'에 가닿는다.
이 책의 저자가 어느 대학교를 나오고,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들 앞에서 스스로의 치부를 한껏 드러내는 용기를 가졌다는 것이.
그리고 그 용기가 또 다른 자아실현의 욕망에 닿아있다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어디선가 <아름다움>의 어원을 '앓음' + '다움' 에서 찾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아름다움이란 아픔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실컷 앓고 난 상태, 즉 아픔을 이겨낸 상태를 뜻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앞으로도 한껏 흔들릴 것이다.
죽는 순간까지 '처음 만나는 하루'를 반복하며 헤맬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
수없이 흔들리고, 부끄러운 나날을 살았던 당신에게도.
그러므로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