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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수없음 Apr 18. 2017

[여행] 러시아 - 모스크바 (2)

20160927 : 도스토옙스키 박물관, 아르바트 거리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흔적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꿈꾸며 좌절하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나 역시도

내 세계를 제약없이 펼쳐내고 싶은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수없이 흔들리고 있으며

소설가 김훈의 말처럼

먹고산다는 것이 지겹고 고단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 전,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글을 썼던 도스토옙스키.

그의 하소연을 들여다 보자.

                                                                                                                                                                            

"나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1년반 동안 앉아 있어야 하고, 그 1년 반 동안 앉아서 글을 쓰기 위해 먹고살 것이  제공돼야 하지만 나에겐 아무것도 없어. 형은 계속해서 무슨 곤차로프가 자기 소설(내 생각에는 쓰레기)에 7000루블을 받았다는 둥, 카트코프(그에게 나는 인쇄 전지당 100루블을 요청하고 있어)가 투르게네프의 소설 <귀족의 보금자리> (마침내 그걸 읽었어. 아주 훌륭하더라고)에 4000루블, 즉 인쇄 전지당 400루블을 지불했다는 둥, 그런 얘기를 해왔어. 사랑하는 형! 나는 내가 투르게네프보다 못 쓴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주 엄청 더 못 쓰지는 않으며 언젠가는 결국 그의 소설에 버금가는 걸 쓸 것이라 희망하고 있어. 농노 2000명을 가진 투르게네프가 400루블씩 받는데 어째서 이토록 궁핍한 나는 100루블을 요청해야 하지? 나는 가난 때문에 서둘러야만 하고 돈을 위해 써야만 하기 때문에 결국 모든 걸 완전히 망쳐버릴 수밖에 없는 거야."
                                                                                          - 1859년 6월. 형 미하일에게 보낸 편지 중
"그렇게 떠맡은 빚이 없었더라면, 그래서 서두를 필요 없이 원고를 인쇄에 넘기기 전에 다시 검토하고 다듬으면서 소설을 썼더라면, 남편은 작품의 예술적 측면에서도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문단과 사회에서는 자주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과 다른 재능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비교하면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이 너무 복잡하고 혼란스러우며 너저분하게 쌓인 잡동사니 더미인 반면, 다른 작가들의 소설은 잘 다듬어져 있다고, 예를 들어 투르게네프의 경우는 거의 보석같이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다고 도스토예프스키를 비난하곤 했다."
                                                                - 도스토옙스키의 아내, 안나 그리고리예브나의 회고록 중
"[백치]를 다시 읽어보니까 훌륭한 부분들도 있지만 너무 서둘러 쓴 대목들이 많소. 개선의 여지가 지대한 대목들이..... 나는 언제나 급히 써야 했소. 그런데 톨스토이는 부자요. 그는 모든 걸 가지고 있소. 그는 내일 어떻게 어디서 돈을 벌어야 할지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오. 글을 쓰고 다듬을 대 충부한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소. 그건 굉장히 중요한 점이오. 그래서 그런 의미에서 그가 부럽소. 그래요, 나는 그가 부럽소."
                                                                                     - 책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중


오직 원할 때, 원하는만큼 쓰고, 퇴고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부러웠던 도스토옙스키.

그는 얼마나 때 되면 찾아오는 허기가 원망스러웠을까.

뒷꽁무니 바짝 쫓아오는 가족들의 생계를 저주했을까.


그리하여, 나는 모스크바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흔적을 찾아보기로 했다.


가고싶었던 도스토옙스키 박물관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었다.

모스크바에서 찾을 수 있었던 건 그가 죽기 전, 잠깐 머물렀던 집 한 채였다.


굳은 표정같았던 날씨


한국의 포털사이트에서 '모스크바, 도스토옙스키'를 검색하며 주섬주섬 길을 떠난다.


모스크바 도스토예프스키 박물관(Dostoyevsky House Museum)
러시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인 도스토옙스키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여 1971년 개관한 박물관.도스토옙스키가 마지막을 보냈던 집인데, 작가가 살던 당시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주소 : Ulitsa Dostoevskovo 2, Moscow
가는방법 : Novoslobodskaya 역에서 하차                                                    - 저스트고(Just go)
도스토옙스키 거리 어디쯤 보이는 박물관
꾸룸한 날씨, 의기소침해진 나는 비가 올까봐 전전긍긍하며 어깨를 움츠리고 걸었다. 아이 추워.

결국 비가 왔고,

부랴부랴 눈에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서 따뜻한 라떼를 마셨다.

종업원에게 "웨어이즈 더 도스토옙스키뮤지엄?" 물어봤는데 모른다고 했다.

친절한 종업원 아가씨가 옆 테이블의 손님들에게도 물어봐줬지만

역시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오직 감으로 찾아낸 도스토옙스키의 생가
나는 스스로를 '길치 중의 최고 길치'라 임명했다
환영한다는 뜻일게다


안으로 들어가니

표 끊는 아주머니와 경비를 서는 아저씨, 두 분이 나를 맞이해주셨다.

두 분 외에는 사람 없이 조용했다.


입장권과 사진 찍을 수 있는 티켓을 구입했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티켓이라기에 '뭐 이런 걸 다 파시나' 싶었지만

아이폰이 찰칵찰칵 요란하게 소리낼 것이 분명했으므로 사지 않을 수 없었다.


(도박판에서) 신중히 고뇌하는 모습의 도스토옙스키


박물관은 아늑하고, 한적했다.

생가를 그대로 복원해놓은 모습.

유리창 안으로 비 그친 후의 햇살이 스며들었다.



여러 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생활 공간.

곳곳에서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보였다.

식탁이라든지, 어린 아이가 타고 놀았을 목마, 조잡한 카드 같은.


구석에 놓인 쇼파에 살짝 엉덩이를 걸쳐봤다. 150년 전의 소설가와 친구하고싶은 마음이었달까
곳곳에 놓인 집필의 흔적. 책에 물든 저 피는 뭘까
뭐라고 썼는지 1도 모르지만, 머릿속이 복잡했다는 건 내가 잘 알겠다
내가 만약 러시아어를 안다면, 이 글씨를 읽을 수 있을까
직접 쓴 서명인가보다
도스토옙스키를 주인공으로 만든 영화의 스틸컷, 그리고 영상물이 있는 공간


도스토옙스키가 살았던 집을 홀로 거닐며

묻고 싶었다.

이생에서 그토록 가난을 억울해 하며, 스스로 만족할만한 작품에 대해 목말라 했던 그.

러시아의 대문호로 불리는 지금, 저승에서 행복하시냐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드디어 나를 알아봤느냐며 웃고 있느냐고.


천국으로 가는 문처럼, 하얀 복도를 지나면 끝이 난다


도스토옙스키의 생가를 나와 모스크바 예술의 거리, 아르바트를 걸었다.

스쳐가는 사람들 모두 각자의 삶에서 나름의 투쟁을 하고 있겠지.




모스크바 안녕.

꿈을 쫓으며 사셨던 분들 모두 평안하시길 -


(이어서 계속)



다음 일정은 덴마크 코펜하겐을 가장한 스웨덴이다.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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