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28 : 로오 항구
모스크바에서 덴마크 코펜하겐 행 비행기를 탔다.
친구와는 스웨덴 남부지역에 있는 말뫼(Malmö)에서 만나기로 한 상태.
하늘에서 본 덴마크는 청명해 보였다.
빨리 공항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데... (두둥)
입국심사대에 직원이 없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언제 올지 모를 직원을 기다리며 멍하니 서 있다.
몇몇은 이런 광경이 신기한 듯 (나처럼) 카메라를 들었다.
시계를 보니 정오가 지날 무렵, 점심시간이다.
'북유럽의 노동권이란 이런 것인가...!'를 깨달을 때쯤
직원들이 지겹다는 듯, 입국심사대로 들어섰다.
(스웨덴에서 만난 친구 H에게 이 상황을 말하니, 헛헛 웃으며
'얘들은 그게 문제야. 점심때 쉴 거면
손님을 받지 말던가! 다 받아놓고 뭐하는 짓이야!' 하고 나 대신 화내 줬다.)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은 스웨덴의 말뫼 지역.
나라에서 나라를 이동하는데, 비행기가 아닌 기차를 타는 건 처음이었다.
덴마크 공항을 떠난 지 30분 만에 스웨덴에 도착했다.
듬성듬성 보이는 사람들과 탁 트인 하늘.
서울에서부터 짊어지고 간 번잡함과 고뇌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H를 만나 숙소에 짐을 먼저 풀려는데,
한국에서 예약한 숙소는 내가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는 동안
연락이 되지 않아 취소된 상태였다.
부랴부랴 검색해서 다른 곳으로 예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여럿이서 자는 도미토리형 숙박업소를 택했다.
친구는 여행 코스를 내가 선택할 수 있도록 준비해줬다.
하나는 이케아(IKEA)를 중심으로 한 관광 코스,
그리고 또 하나는 스웨덴의 생활을 볼 수 있는 문화 인류학 코스(랄까...)였다.
나는 두 번째를 택했다.
(친구 H는 나와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인데, 그때부터 똑부러진 걸로 유명했다.
나도 나름 굶어 죽진 않을 캐릭터지만 이 친구 앞에서는 순딩 순딩 어린양이 되는 느낌이랄까...)
한 시간이었나.
기차를 타고 향한 곳은 헬싱보리 지역의 로오(Råå)였다.
바닷가에 위치한 조용한 마을.
아름다웠다.
건물들은 동화 속에 나온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뾰족한 삼각형의 지붕들.
눈이 많이 내리는 이곳에선 지붕에 눈이 쌓이지 않게 하기 위해 지붕을 높게 만들어 놓았단다.
건물을 구경하는 사이,
하늘이 무거운 구름으로 채워졌다.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았다.
친구는 가야 할 곳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바닷가,
사람 하나 없는 조용한 항구였다.
하나, 둘 가로등이 켜지고
바닷가 아이들이 뛰어놀았을 놀이터가 보였다.
우리는 조금 더 걷기로 했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카페를 찾아 걷는 길이 반짝였다.
바닷가 맞은편, 문이 열린 카페에 들어가 따뜻한 커피를 시켰다.
그리고 우리는 오랜 이야기를 나눴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어릴 때 알았던 우리는 무엇이 변했고, 무엇이 변하지 않았는지.
어떤 이야기를 하면서는 울었고,
어떤 이야기를 하면서는 웃었다.
경기도 어느 작은 도시, 초등학교 6학년 3반 동창이었던 우리가
스웨덴의 바닷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모든 일이 그랬다.
(이어서 계속)